[96회 이승만포럼] 김명섭 연대 교수 "이승만 독립정신과 3·1 독립정신' 맥' 같이 해"
  • 김명섭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이기륭 기자
    ▲ 김명섭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이기륭 기자
    "오로지 백성들의 정신 속에 독립의 의지를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기 때문에 이 책을 황급히 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 그는 자신의 저서 <독립정신>를 쓴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독립정신>은 백성들에게 독립 의지를 심어준 3·1독립운동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정치적 공과(功過)를 떠나 이승만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일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 아펜젤러관에서 열린 '제96회 우남 이승만 포럼: <독립정신>의 역사적 의미와 3·1 독립운동과 세계사'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독립은 백성이 깨어있어야 한다'는 이승만의 '독립정신'은 3·1독립운동 기본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며 3·1독립운동 100주년은 맞아 이승만의 <독립정신>을 재조명했다.

    3·1독립운동 출발점, 이승만의 <독립정신>

    김 교수는 "이승만과 그의 저서 <독립정신>이 3·1 독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일본 동경 YMCA 건물이 건립된 배경을 들었다. 1912년 3월 이승만은 일본 동경에서 <독립정신>에 바탕을 둔 연설을 했다. 김 교수는 "이승만이 연설하니 당시 돈으로 1300엔 정도가 모였고, 이는 동경 YMCA 건물을 짓는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어 "이 건물은 3·1운동의 계기가 된 2·8 독립선언의 모태가 된 건물"이라고 덧붙였다.

  • 김명섭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이승만의 '독립정신'과 3·1운동의 의미 등에 대해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강연하고 있다ⓒ이기륭 기자
    ▲ 김명섭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이승만의 '독립정신'과 3·1운동의 의미 등에 대해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강연하고 있다ⓒ이기륭 기자
    김 교수는 <독립정신> 내용은 3·1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당시 이승만의 연설장에는 독립운동가 조소앙·안재홍·김정식·김성수 등이 함께 있었다. 김 교수는 "이런 분들이 모여 <독립정신>을 안 읽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독립정신> 내용을 연설로 들었던 것"이라고 했다.

    실제 우남 이승만의 회고록에는 '<독립정신>을 구해달라는 사람들이 많으나 상대가 일본 밀정인지 알 수가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3·1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승만, <독립정신>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김 교수는 "우리들은 무엇을 했는지 처절한 반성이 필요하다"며 "3·1운동이 대단한 역사라는 사실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이승만의 외교 독립 노선은 선택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것 밖에 없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만이 친일 사관을 가졌다는 일각의 의견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이승만이 친일 사관을 가졌다면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을 때 즐거워해야 한다"며 "그러나 이승만은 우리의 독립을 걱정했다"고 했다.
  • 김명섭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이기륭 기자
    ▲ 김명섭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이기륭 기자
    김 교수는 군사정권 시절 '금서'였던 <독립정신>과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60년 4월 29일 이승만이 대통령직에서 내려온 뒤, 1993년이 되어서야 <독립정신>이 재출간됐다. 군사정권 시절 정치적 금서와 같았다"며 "군사정권이 이승만을 비판하고, 4·19 의거를 계승했던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제라도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진·순한글 <독립정신>…'혁명적 편집'

    3·1운동에 영향을 준 <독립정신>은 이승만이 한성감옥소에서 집필, 완성한 책이다. 이승만은 1899년 일본에 있던 박영효의 정계 복귀를 도모했다는 이유로 투옥됐다. 탈옥 실패 뒤 무기징역형을 받은 이승만은 러일전쟁이 발발(勃發)한 1904년 2월 감옥에서 <독립정신> 집필을 시작했다. 1910년 이 책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순한글로 처음 나왔다.

    김 교수는 시각적 자료가 많이 포함된 <독립정신>의 편집 방식이 당시 기준으로 볼 땐 '혁명적'이라고 했다. 그는 "<독립정신>에는 많은 시각적 자료가 삽입됐다는 점에서 당시 혁명적 편집"이라며 "순한글로 된 점 등 언어학·독립운동사 다양한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이 책에서 이승만은 '백성이 스스로 깨어 있어야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김 교수는 "(이승만은) 조선인이 자주적으로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독립정신>에는 백성이 이루는 △독립의 중요성 △한국이 중립국 지위를 얻으려면 확실한 국제적 보장이 있어야 한다는 점 △황제와 백성이 협력하는 헌법정치 △이를 통한 외세로부터의 대외적인 독립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한편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은 올해 이승만 전집 출간 등을 계획하고 있다. 제97회 이승만포럼은 오는 3월 19일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