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사장 시절 의혹 조사해야 하니 출석" 직원들에 문자… KBS "위법 활동 아냐"
  • 지난해 9월 법원 판결로 활동에 제동이 걸렸던 KBS 진실과 미래위원회(위원장 정필모, 이하 진미위)가 최근 다시 직원들의 '과거'를 캐묻는 등 조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BS 공영노동조합(위원장 성창경, 이하 공영노조)은 16일 성명을 통해 "KBS판 적폐청산위원회인 진미위가 다시 활동을 재개한 듯하다"며 "진미위가 최근 다수의 직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과거 사장 시절 '부당노동행위 의혹'과 관련해 조사할 것이 있으니 출석해 달라는 통보를 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고 주장했다. 공영노조는 지난 11일에도 진미위 활동 재개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KBS판 적폐청산위원회'인 진미위는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인 지난해 6월 만들어진 산하 조직으로, KBS 직원들의 이메일을 사찰하는 등의 활동으로 인해 일부 직원들과 마찰을 빚었다. 이에 공영노조는 지난해 9월 진미위를 상대로 효력정지 등 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이 일부 인용하면서 진미위는 사실상 활동을 중단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영노조는 "진미위가 법원으로부터 활동중지 가처분을 받은 것은 KBS 내에 기존의 징계관련 부서와 절차가 있는 데에도 새로운 부서와 절차를 만들어 징계를 하는 것은 취업규칙 위반으로, '불법'이라는 법원의 판단 때문이었다"며 "징계를 목적으로 하는 진미위 조사 등 그 어떤 활동도 불법적이라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했다.

    이어 "과거 언행을 근거로 '부당노동행위 의혹'을 내세워 출석에 협조해 달라는 진미위의 문자나 메일 등 진미위의 일체 조사 활동은 법원의 판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불법행위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공영노조는 "진미위가 강제조사할 권한이 없고 더구나 징계 등을 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내려짐에 따라 이같은 진미위의 소환 요구에 응하는 직원들은 거의 없다"며 진미위의 위세가 사내에서도 많이 꺾인 상태임을 전했다.

    "KBS, 진미위 막히자 감사실 통해 '반대파 숙청' 시도"


    공영노조는 "최근엔 진미위 추진단이 과거 특정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결과를 문제 삼아, 여기에 참여한 심의위원들까지 소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며 "방송법에서 보장된 독립된 심의기구인 심의실 위원의 정상적인 심의활동까지 조사하겠다니 도대체 제정신인가"라고 되물었다.

    또한 "김영헌 감사도 지난 이사회에서 앞으로 6개월 동안 일상의 감사보다는 과거사에 대한 감사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또 진미위가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감사실의 추가 조사를 통해 정리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면서 "법원의 불법성 판단으로 진미위의 활동이 중지되자, 이제는 감사실을 통해 반대파 등을 보복하려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공영노조는 "KBS가 정규직원 15명 정도를 진미위 조사역으로 발령내 놓고, 3억 원의 예산까지 배정해 놓았는데 불법성 판단을 받아 활동이 중단됐으니 연간 인건비를 포함하면 십 수억 원의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라며 "그렇다고 가처분 결정으로 불법 판단을 받은 조직을 재가동해 직원들을 억지로 조사하는 것은 또 다른 불법을 불러오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法 "진미위 운영규정, 절차상 위법" 지적


    공영노조는 지난해 9월 17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진미위의 운영규정과 활동 일부가 법에 저촉된다는 판결을 내리자 같은 해 10월 1일 양승동 KBS사장과 정필모 KBS부사장, 김상근 KBS이사장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앞서 서울남부지방법원 제51민사부(부장판사 김도형)는 공영노조가 진미위를 상대로 낸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판결에서 "진미위가 사내 구성원들을 상대로 징계 등의 인사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기존의 취업규칙상 인사규정에 있는 징계와는 다른, 새로운 징벌조항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에 따라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하지만 진미위는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받지 못해 절차상 하자를 안고 있다"고 지적하며 "본안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진미위 운영규정의 효력을 정지하고, KBS는 진미위가 징계 등 인사조치를 권고하는 등의 활동을 하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판시했다.

    또한 "KBS 직원들에 대한 조사와 징계는 사내 인사규정이 정한 2년 이내의 사안으로 한정해야 하는데, 진미위 운영규정은 조사대상 시기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아 실질적으로 징계시효가 지난 사안에 대해 근로자가 징계를 받을 위험에 처해질 수 있다"며 "진미위의 활동 및 효력을 중단시켜달라는 공영노조의 가처분 신청은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KBS진미위' 진상규명 활동, 오는 6월까지 계속

    한 KBS 관계자는 1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진미위가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는 공영노조의 성명과 관련, "실제로 진미위 측에서 일부 직원들을 재소환했다는 얘기는 전해들었다"면서 "지난해 법원 판결은 진미위의 설치 자체가 위법하다거나 활동을 전면 중단하라는 내용이 아니고, 주어진 권한 이외의 것을 행사하지 말라는 것이기 때문에 조사 활동 자체를 막을 명분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지난해 법원 판결 이후 진미위의 실무를 맡고 있는 진실과 미래추진단 측이 누구를 불러 조사하는 일만큼은 자제를 해왔는데, 자기들이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다시 직원들을 소환하고 있는 모양"이라며 "진미위는 운영규정상 오는 6월까지만 활동하고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진미위는 별도 운영규정에 의해 존재하고, 직제규정을 바꾸면서까지 존치시켜야 할 조직은 아니기 때문에 새로 꾸려지는 조직도에선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진미위는 향후 5개월까지만 한시적으로 조사 활동을 벌일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