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로고

[르포] "서울시 조례 때문에 지하 상인들 다 망했다"

지하상가 3000곳 임차권 양수ㆍ양도 금지... 권리금 못받아 '공황' 상태

입력 2018-08-01 16:36 수정 2018-08-02 13:38

▲ ⓒ사진=뉴시스

"목 좋아 금방 본전 찾는다는 말에 속았다. 장사는 하나도 안되고, 권리금 회수 길도 막혔으니 영세업자들만 죽어난다."

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 지하상가 일대. 10년 가까이 7평 남짓한 안경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 씨(61)는 직원이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간 동안 가게를 직접 보고 있었다.

"장사가 안되도 너무 안된다. 임대료는 월 300인데, 한달 벌어 들이는 수익은 그 이하"라고 쓴웃음을 지은 김 씨는 "지하상가로 사람이 안다닌다. 가게를 빼고 싶어도 들어올 사람이 없다. 그나마 나는 권리금을 걸지 않은 편이라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지하상가 임차권 양수양도 금지' 서울시 조례에 상인들 공황 상태

서울시는 지난 19일자로 '서울특별시 지하도상가 관리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공포했다. 서울 전역 지하상가 25곳 점포 2,788개 임차권 양수 및 양도를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명동ㆍ을지로ㆍ강남ㆍ영등포 등 서울의 주요 지하상가가 포함된다. 

지난 20년 간 허용됐던 '지하도상가 임차권 양수 및 양도'가 금지되면서 임차인이 입주 당시 내고 들어온 권리금을 회수할 길이 막혔다. 임차인이 점포에 입점하며 내는 관행상의 금전인 권리금은 쉽게 말해 장사가 잘 되는 경우를 가정해 그 대가를 미리 지급하는 관행적 자금이다.

서울시는 "그동안 임차권 양수ㆍ양도 허용으로 인해 불법 권리금이 발생했고, 이는 사회적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어 조례를 개정했다"며 "지자체 조례로 임차권리를 양도ㆍ양수하는 것은 상위법(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위반된다는 행안부 유권해석도 있었다"고 배경을 밝혔다.

▲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사실상 '권리금' 인정했던 서울시, 돌연 '원칙' 강조

실제 서울시내 지하상가 대부분은 민간이 도로를 개발해 조성한 상가를 장기간 운영한 뒤 서울시에 되돌려주는 기부채납 형태다. 상가 자체의 소유권은 서울시에 있고 서울시설공단이 관리하는 방식이다.

서울시는 1996년 지하상가가 반환되자 1998년 임차권 양도 허용 조항이 포함된 지하도상가 관리 조례를 제정해 운영해왔다. 시는 임차인들에게 임차권 자율권을 허용했고 권리금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시가 이제껏 권리금을 사실 인정한 것이나 매한가지라는 비판에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서울시는 돌연 원칙을 강조하고 나섰다. 지난해 6월 지하도상가 권리금을 전면 금지하는 조례안을 입법 예고한 뒤 서울시의회에 제출했다. 불법 권리금 등의 부작용을 이유로 임차권 양수·양도를 금지해야한다는 것이다.

원칙을 기준으로 보자면 지하상가는 소유권이 시에 있는 '공유재산'이 맞다. 그에 따라 매매대상이 될 수 없고 당연히 권리금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수억의 권리금을 주고 상가에 입점한 상인들이다. 이들은 "현실을 외면하고 갑자기 불법 권리금만 명분으로 내세우는 서울시의 입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안경점을 운영하는 김 씨는 "불법 권리금 주장은 말이 안되는 소리다. 그렇다면 지난 20년간은 어떻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 1일 오후 서울 을지로 상가 일대에는 곳곳에 빈 점포가 보였다.ⓒ뉴데일리 임혜진

"장사 안되는데 경쟁입찰 무슨 소용"

기존 상인들의 권리금 문제를 제외하고도 문제는 또 있다. '공유재산인 지하상가는 매매 대상이 될 수 없고 그에 따라 계약이 만료된 빈 점포는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새 점포주와 임대차계약을 맺어야한다'는 시의 주장은 원칙적으로는 옳으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공개경쟁입찰을 원칙대로 진행했을 때 상인들 간에 오가는 권리금은 규제된다. 그렇다면 더이상 '목이 좋다는 이유로' 권리금을 낼 필요가 없는 일반 서민들도 지하상가에 입점해 자영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생긴다.

그러나 이날 직접 찾은 을지로 일대 상가는 빈 점포가 수두룩했다.
 
명동 일대 지하상가에서 신발 점포를 운영하는 오모 씨(35)는 "경쟁 입찰은 얼어죽을 소리다. 장사가 안되고 서울시 조례 개정안으로 인해 점점 더 빠져나가는 추세인데 누가 오겠냐"고 황당해했다.

오 씨는 "지금 지하도를 한번 돌아보라. 하나 걸러 하나 꼴로 빈 상가들이 있다. 나도 나가고 싶은데 들어올 사람이 없어 억지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근에서 전자부품 가게를 운영하는 박모 씨(55)는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직원 1명 월급주기도 힘들다. 정부정책도 그렇고 서울시 정책도 잘못된 게 너무나 많다. 사실상 지금은 서울시가 건물주고, 우리가 임차인인데 권리금 한푼 못 돌려받고 나앉은 셈"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최근 몇년 간 지하도상가의 임차권 양도·양수는 줄어드는 추세를 기록해왔다. 양도·양수 건수는 2012년 360건, 2013년 217건, 2014년 180건, 2015년 164건, 2017년 112건 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인대 전국지하도상가 상인연합회장은 이날 통화에서 "장사가 안되는 문제 여부를 떠나서 법과 원칙이 있다는 것에는 당연히 공감한다"면서도 "그러나 개별 입찰을 해도 들어올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 정도로 장사가 안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상인들의 거센 항의에 서울시의회는 권리금 금지에 따른 충격 최소화를 권고하고 있다. 시의회 조례 심사보고서에는 "임차인의 입장을 고려해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양도양수 금지를 실현할 합리적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 ⓒ박원순 서울시장 페이스북 캡처

을(乙) 위한 정책 추진한다던 서울시가 이번에는 갑(甲)?

서울시는 지난 25일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서울페이' 정책을 내놨다. 결제 수수료를 0원으로 만들어 소상공인들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낮추겠다는 것이 목적이다.

통상적으로 카드 결제 수수료가 2~3%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상공인들의 부담은 비교적 낮아진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 폭이 워낙 크다는 점 △국내 민간 소비 70%가 카드 결제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 △은행과 카드사가 많은 부담을 떠안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지적되기도 했다.

이런 현실에 서울시가 지하도상가 조례를 개정하면서 서울시의 소상공인 정책 진위도 의심을 받고 있다. 특히 항상 '서민, 임차인 등 을(乙)'의 편에 서겠다던 박원순 시장이 이번에는 '건물주, 이른바 갑(甲)'의 위치가 됐다는 점에서 상인들은 "지금까지 시가 내놓은 정책이 진짜 영세업자를 위한 것이었나" 의구심을 느끼는 실정이다. 

박 시장은 최근 최저임금 인상 논란 당시 지속해서 건물주를 비판하는 듯한 발언을 일삼아왔다. 지난 12일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말이 유행어가 되고 높은 임대료를 받는 건물주들이 젊은이들의 선망이 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이는 전적으로 불공정한 임대차 관계를 방치한 정치의 책임"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그는 17일에도 "언제까지 최저임금 탓만 하고 있으실 겁니까. 프랜차이즈 본사의 각종 갑질을 제거하고, 조물주 위 건물주라는 신화를 걷어내고, 수익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카드수수료를 제로화한다면 지금의 최저임금 인상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는 글을 올렸다.

뉴데일리 댓글 운영정책

뉴데일리 경제

대전·충청·세종

메인페이지가 로드됩니다.

로고

뉴데일리TV

칼럼

특종

미디어비평

제약·의료·바이오

선진 한국의 내일을 여는 모임. 한국 선진화 포럼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