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로 규제 방향 변화…폭 넓은 규제완화 예고
  •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5일 관훈토론회에서 자신의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5일 관훈토론회에서 자신의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경제정책 방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서는 안 될 일'을 정해놓고, 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허용하겠다는 고강도의 규제 완화가 핵심이다.

    이른바 '블랙리스트' 규제를 하겠다는 의미로, 4차산업 혁명을 이끌 중소기업이 육성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한다는 설명이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은 25일 오후, 서울시 프레스센터에 열린 관훈클럽토론회에서 "일자리 마련과 4차 산업 협력에 투자하고 인력을 키우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정부개혁·교육개혁·재벌개혁·노동시장 유연성의 4대 중요한 틀을 빨리 잡아야 한다"면서 "그걸 잡아야 내수도 진작되고 기업도 발전하고 자연히 일자리가 생성되는 선순환의 기능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몇 년간 청년실업 증가는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약점'이었다. 새누리당에서도 추경예산 등을 국회에 호소할 때마다 매번 '청년실업 해소'를 첫 번째 이유로 꼽을 정도였다. 물론 박 대통령이 이를 방관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날 취재진은 "이 정부에서 10조 원을 일자리에 쏟아부었지만, 돈을 쓰고도 청년 실업을 줄이지 못했다"고 질문했다. 문제는 예산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반 전 총장이 '규제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해답을 내놓은 셈이다. 그는 "어마어마하게 투자하고서도 경제가 안되는 이유로 글로벌 경제의 영향을 받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우리나라의 기업구조나 노동시장은 어땠냐"고 반문했다. "계속 노·사간 대치를 하고 특히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OECD에서도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반 전 총장이 내놓은 규제개혁안은 '블랙리스트'규제를 하는 것이 핵심이다. '안 되는 것'들을 지정한 뒤 이를 제외하면 모두 허용하는 방법이다. 기존에 명시된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규정해놓은 '화이트리스트' 규제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각자 장단점이 있지만 블랙리스트 규제는 새로운 산업에 대한 제약이 없는 셈이어서 개인의 창의성이 발현되기 좋은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기존 화이트리스트 규제방식에서는 새로운 산업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법을 개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은 또한 "대기업·중소기업 간 차이, 정규직·비정규직 차이가 상당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돼 있다"면서 "대기업 정규직 급여를 100으로 볼 때 비정규직 급여는 37이라 하니 누가 대학을 졸업하고 비정규직에 가려 하겠느냐"고도 했다.

  •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25일, 블랙리스트 규제를 통해 4차산업혁명에 중소기업이 뛰어들 수 있도록 여건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사진공동취재단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25일, 블랙리스트 규제를 통해 4차산업혁명에 중소기업이 뛰어들 수 있도록 여건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사진공동취재단

    다만, 그는 이같은 큰 격차를 공공부문에서 해결하는 데 반대했다. 경제위기 때마다 일자리 창출을 핑계로 공무원을 늘려온 행태에 선을 그은 것으로 풀이된다.

    반 전 총장은 "기본적으로는 정부가 내수를 북돋아야 하는데,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렇지 않아도 큰 정부를 작게 줄이라는데, 그렇게 되면 악순환"이라고 했다.

    아울러 반 전 총장은 재벌 개혁에 대해서는 "중소기업이 활기를 가지고 '내가 만드는 게 최고의 제품'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납품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많은 기업이 재벌 사슬 구조에서 제품을 만드는 구조가 돼 있으면 동기가 부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주어진 스펙대로 물건을 찍어내면 회사가 돌아가고 월급이 나온다는 것은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이 독자적인 투자를 하고 신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날 반 전 총장이 내놓은 경제정책은 중소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도 시장경제체제의 근간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자유'와 '인권'을 강조해온 반 전 총장이 경제정책에서도 보수진영 후보로서의 모습을 확고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반 전 총장은 '최순실 사태'를 고려한 듯, 준조세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그는 "조세처럼 돈을 갖고 오라, 기금을 내라고 하면 힘껏 벌어서 권력에 돈을 주게 되면 그것도 기업의 힘이 빠지는 것"이라며 "아주 공익적인 부분에서 제한적으로 쓸 수 있게 제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