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청, 회의 참석자 명단 공개 거부...교육감 취재요청에 ‘무응답’
  •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뉴데일리 DB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뉴데일리 DB

    "교과서의 국정화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힘겹게 일궈온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원칙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퇴행적 방침입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28일 발표한 국정교과서 반대 성명서 일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던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정작 정부 방침에 맞춰 국정 역사교과서를 사용하려던 지역 내 19개 중학교 교장들을 불러, 사실상 ‘사용 거부’를 종용해 논란을 빚고 있다.

    조희연 교육감은 30일 오후 내년도 중학교 1학년 과정에 ‘역사’ 과목을 편성한 19곳의 중학교 교장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는 17명의 학교장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조희연 교육감은 교육부가 공개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사용 불가’ 입장을 참석 교장들에게 전했다. 

    조 교육감은 “다양한 자료와 토론을 통해 비판적 역사의식을 길러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는 그 자체로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사용의 최대 피해자는 학생”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구체적 사실의 적시 없이 “교육부 역사교과서의 친일·독재 미화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등 많은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 교육감은 “국정 역사교과서는 편찬 추진 과정도 비민주적이었다”며, “학교 현장에 배포돼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자로서 학생들을 위해 머리를 맞대 달라”고 당부했다. 

    서울교육청이 이날 오후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교육감의 ‘당부’를 받은 교장들은 약 1시간 정도 토론을 한 끝에, 중학교 1학년 과정에 ‘역사’ 과목을 편성한 19개 학교가 모두 계획을 철회했다. 

    교장들은 교육감의 당부대로, 내년도 1학년에 편성된 ‘역사’ 과목을 2학년이나 3학년에 재편성하기로 결정했다. 나아가 이미 주문한 교과서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주문취소 절차를 밟기로 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서울교육청은 보도자료를 내고 “내년도 서울지역 중학교에서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한 곳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홍보했다. 

    이날 교장들의 결정은 여려 면에서 상당한 문제를 남겼다. 교육부가 지난달 28일 현장검토본을 공개한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해서는, 현재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교육부는 의견을 취합해, 국정 역사교과서를 내년 신학기부터 사용토록 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현장검토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고, 의견 수렴 절차가 진행 중이란 사실을 고려한다면, 조희연 교육감의 행위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국정 교과서 현장검토본에 대해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조희연 교육감의 행위는 정당성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교육의 자주성과 중립성’도 크게 훼손했다.

    조희연 교육감의 직권 남용 여부에 대한 조사도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교원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교육감이 교장들을 불러 놓고, 특정 교과서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면서 사용을 거부하도록 사실상의 압력을 행사한 사실은, 지방교육자치법을 위반한 측면이 있다. 

    학교장 중임(重任)이나 전보 등 인사에 관한 교육감의 권한은 거의 절대적이다. 학교에 대한 재정지원, 각종 우수학교 선정 등에 있어 교육감이 갖는 영향력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지역 내 ‘교육과 학예에 관한 모든 사항’을 통할하는 사람이 바로 교육감이기 때문이다. 교육감이 교장들 앞에서 특정 교과서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데, 그 뜻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학교장들이 불과 한 시간 만에 교육과정 편성을 변경한 사실도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대목이다.

    교육과정 편성이나 변경은 그 영향이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미치기 때문에, 해당 학교의 교직원은 물론 학부모대표, 학교운영위원들의 의견을 충분하게 수렴한 뒤 결정할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불과 한 시간 만에 변경키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상식 밖이다.

  • ▲ 교육부가 28일 공개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교육부가 28일 공개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교육부는 30일 오후, 조 교육감과 중학교 교장들이 ‘역사’ 과목을 2018년 이후 편성토록 변경한 조치에 대해, “시정명령과 특정 감사 등 교육현장의 정상화를 위한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교육부는 “교육과정의 편성 및 운영에 관한 권한은 학교장과 학교운영위워회에 있다”며, 조희연 교육감과 서울교육청의 행위가 안고 있는 법적 하자를 지적했다. 

    서울교육청은 1일 오후, 해명자료를 내고 “조 교육감의 행동은 적법했다”고 강변했다.

    “교육감과 교장이 협의해 교육과정을 조정한 것은 학교 현장이 교과서 국정화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한 가장 온건하고 합리적인 조치이다. 교육부의 시정명령이나 특정감사 대상이 아니다.”


    교육청은 실정법 위반 논란을 의식했는지 “조 교육감과 교장들의 회의는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뤄진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교육청은 ‘교육감은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에 대해 학교장과 협의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교육청의 해명은 또 다른 의문을 낳고 있다. 

    먼저 조 교육감과 교장들의 회의가 ‘국정화의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은,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전교조와 야권 지지성향 국민들의 입장만을 대변한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 국정 교과서에 대한 국민 여론은 찬반이 갈리고 있다.

    30일 오후 ‘한국사립초중고법인협의회’는,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을 분석한 결과 “학교 현장에서 사용하는데 적합하다고 판단된다”며, 내년 3월 예정대로 국정 교과서를 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교과부에 입장을 전했다.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조 교육감과 서울교육청의 ‘국정화로 인한 피해’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회의에 참여한 교장들의 발언을, 30일 보도자료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가, 논란이 되자 ‘참석자들의 발언 일부’를 뒤늦게 공개한 사실도 의문이다. 

    서울교육청은 1일, 해명을 통해 불과 하루만에 입장을 번복했다.

    교육청은 30일 보도자료 통해 “내년 서울지역에서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중학교는 없다”고 선언했지만, 1일에는 “교육과정 조정이 실체 이뤄지려면 학교운영위 심의 등 학교구성원의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며, 30일 있었던 교육감과 교장단 회의의 효력을 사실상 부인했다. 

    김동석 한국교총 대변인은 “조희연 교육감이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했다”고 평가했다.

    "교육과정 편성권과 교과서 선택권은 학교에 있다. 인사권과 재정권을 가진 교육감이 교장들을 불러 강요 내지 방향을 직접적으로 제시한다면, 당연히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이는 학교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

    - 김동석 한국교총 대변인


    김동석 대변인은 조희연 교육감의 이중적 행태도 꼬집었다.

    그는 "교육부의 일방적인 교과서 추진 방식을 비판하더니, 자신들이 똑같은 행위를 했다. 이런 행위가 계속된다면, 교육감이 학교운영에 대해 하나하나 간섭하는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경균 한국사립초중고법인협의회 사무총장은 "교육감들이 자기모순에 빠져있다. 교육과정은 학교장이 (자율로) 편성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교 자율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뉴데일리는 당시 회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서울교육청에 중학교 19곳의 명단 공개를 요구했지만, 교육청은 “내부적으로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거부했다. 

    본지는 조희연 교육감의 입장을 듣기 위해 비서실과 대변인실에 취재를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다만 교육감 비서실 관계자는 “회의에 참여하지 않아 내용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