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투쟁 당시 일본 7개 중앙지는 공동사설… 의회주의 따른 수습 강조정치권도 헌법에 따라 새로 총선 치러 민의 반영… 국면전환될까 노심초사 않아
  • ▲ 촛불집회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는 종합편성채널 JTBC의 보도 화면. 빨간 자막으로 광화문이 시민들로 꽉 찼다는 것을 강조하는 가운데, 그 밑으로는 수십만 명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고 인파가 계속 늘고 있다는 내용을 흐르게 하고 있다. ⓒJTBC 보도화면 갈무리
    ▲ 촛불집회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는 종합편성채널 JTBC의 보도 화면. 빨간 자막으로 광화문이 시민들로 꽉 찼다는 것을 강조하는 가운데, 그 밑으로는 수십만 명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고 인파가 계속 늘고 있다는 내용을 흐르게 하고 있다. ⓒJTBC 보도화면 갈무리

    '안보투쟁'으로 일본 국회가 연일 수십만 명의 시위대에 둘러싸여 있던 1960년 6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내각총리대신은 "국회 주변은 시끄럽지만 긴자(銀座)나 고라쿠엔(後楽園) 구장은 평소와 다름이 없다"며 "내게는 소리없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남겼다.

    서울 광화문과 전국 각지에 100만 명의 '촛불' 인파가 몰렸다는 19일 저녁, 경기도 분당 서현동의 로데오거리로 나가봤다. 늦은 시간인데도 상가마다 입점한 식당에는 대기 인원들이 늘어섰고, 일부 유명 요리점은 대기 시간이 1시간에 가까울 정도였다.

    점포 안의 LED 모니터에서는 '내자동 1차 폴리스라인 붕괴' 등의 소식이 붉은 자막으로 타전되는 가운데,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또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순서를 기다리는 등 일상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한편으로 이날도 고양과 전주, 울산에서는 평소와 큰 차이 없는 3000여 명의 관중이 들어찬 가운데 프로농구 경기가 정상적으로 열렸다.

    광화문 시위 현장을 생중계하며 당장이라도 헌정이 전복될 듯 호들갑을 떠는 언론의 모습과 '긴자'와 '고라쿠엔 구장'의 모습 사이에는 위화감이 컸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영위하는 이들 '소리없는 소리'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바보같은 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점포 안에서 식사를 하던 젊은 여성들은 연신 스마트폰으로 촛불시위 관련 뉴스를 확인하며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사람들이 고생을 한다"고 혀를 찼다.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3주 연속 5%로 횡보하는 중이다. "100만 명이 하야를 외친다면, 4900만 명은 지지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말은 현실과 괴리가 큰 궤변이다. '소리없는 소리'들도 박근혜정부에 실망하고, 변화를 원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우리 언론이 아스팔트에 몰려나온 목소리를 경마중계하듯 타전하는데 매몰돼, '소리없는 소리'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1960년 5월 20일 당시 일본의 집권여당이었던 자민당은 중의원에서 사회당과 민사당 의원들을 축출한 가운데 미일안전보장조약 비준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그러자 의회민주주의가 파괴됐다고 여겨, 그 때까지는 좌파 성향의 시위대만 벌이던 '안보투쟁'에 가세하는 일반 국민이 급증했다.

  • ▲ 1960년 6월 이른바 안보투쟁 와중에 수십만 명의 일본 시위대가 국회 경내에까지 침입해 국회의사당을 에워싸고 있다. ⓒ위키피디아 사진DB
    ▲ 1960년 6월 이른바 안보투쟁 와중에 수십만 명의 일본 시위대가 국회 경내에까지 침입해 국회의사당을 에워싸고 있다. ⓒ위키피디아 사진DB

    6월에는 연일 일본 국회의사당 주변을 수십만의 시위대가 포위하는 형국이 됐다. 시위대가 국회 진입을 시도하는 와중에 간바 미치코(樺美智子) 도쿄대 문학부생이 압사했고, 이는 다시 시위의 격화를 불러와 헌정이 마비될 위기에 처했다.

    매우 중차대한 시점이었던 6월 17일, 일본 7개 중앙지는 이 날짜 조간 1면에 "의회주의는 지켜져야 한다"는 공동 사설을 냈다. 이 공동 사설에는 보수 성향이라는 요미우리신문과 산케이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물론 중도 성향의 마이니치신문, 그리고 진보 성향인 아사히 신문도 함께 했다.

    공동 사설은 "의회주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는 기조 아래, 정국의 혼란은 헌법 절차에 따라 국회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그 과정에서 일체의 폭력은 배격돼야 한다는 점 또한 강조했다.

    7개 중앙지의 공동 사설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튿날에는 48개 지방지가 이 공동 사설을 받아 1면에 내걸었다.

    공동 사설 이후 사태는 헌정 질서에 따른 수습 국면을 밟기 시작했다. 전임 총리인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東久邇宮稔彦), 가타야마 데츠(片山哲),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 3인은 기시 총리에게 일본국 헌법 70조에 따라 총리에서 물러날 것을 권고했다.

    기시 총리는 이에 응해 6월 23일 사의를 표명한 뒤, 7월 15일 내각총사퇴를 단행했다. 통상산업대신이던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가 19일 새로운 내각을 조각했는데, 그는 신속하게 민의를 반영하기 위해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치를 뜻을 밝혔으며, 자신이 조각한 내각은 그 때까지의 과도 내각이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약 3개월 뒤인 10월 24일 일본국 헌법 7조에 의해 중의원이 해산됐고, 11월 20일에는 총선거가 치러졌다. 헌정이 중단될 뻔한 위기 국면이 헌법 절차에 따라 수습됐다. 그것도 총선거를 다시 치른다는, 민의를 십분 충실히 수렴하는 방식에 따라 해결된 것이다.

    이것이 헌정 중단의 위기 국면에서 언론과 책임 있는 정치인이 가져야 할 자세의 정도다.

    "12일·19일에는 100만 명이 나왔고, 26일에는 300만 명이 나올 것"이라고, 되레 상황을 앞서가며 신이 나서 무책임하게 필봉을 휘두르고 있는 언론도 헌법 제21조 1항에 따라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가 붕괴되고나면 언론의 자유도, 무엇도 없는 것이다.

    정치인들 또한 아스팔트에서 당장 울려퍼지고 있는 외침을 따라가는 데만 급급한 대중추수주의(大衆追隨主義)로 일관해서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국민이 아스팔트에 다시 쏟아져나올 근원을 제거할 방책을 찾아야 대의대표가 아닌가.

  • ▲ 안보투쟁이 격화돼 헌정 마비 사태가 우려되던 1960년 6월 17일, 산케이신문·마이니치신문·도쿄신문·요미우리신문·도쿄타임즈·아사히신문·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진보·중도·보수를 망라한 일본 7개 중앙일간지가 이 날짜 조간에 공동으로 게재한 사설. 일체의 폭력을 배격하고 의회주의에 따라 사태를 수습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사진DB
    ▲ 안보투쟁이 격화돼 헌정 마비 사태가 우려되던 1960년 6월 17일, 산케이신문·마이니치신문·도쿄신문·요미우리신문·도쿄타임즈·아사히신문·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진보·중도·보수를 망라한 일본 7개 중앙일간지가 이 날짜 조간에 공동으로 게재한 사설. 일체의 폭력을 배격하고 의회주의에 따라 사태를 수습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사진DB

    이 사태의 발단은 일개 사인에 불과한 최순실 씨가 오로지 대통령과의 친분 하나를 근거로 전방위적 비리를 저지른 데에 있다. 그 딸인 정유라 씨는 명문 여대에 부정입학을 해서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이 분노에 차 거리로 쏟아져나오는데 일조했는데, 이러한 부정입학이 가능했던 것도 역시 대통령과의 친분 외에는 원동력을 찾을 길이 없다.

    정작 국회는 이미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정당들이 과반 의석을 차지해, 설혹 대통령이 남은 임기 1년여를 버틴다 하더라도 어떤 정책도 추진될 수 없게 됐다. 국정 동력은 없고 비리 동력만 있는 이상한 '제왕적 대통령제'다. "대통령 잘못 뽑아 고생한다"는 '소리없는 소리' 속에는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의문과 개헌의 필요성이 깔려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15일 "지금 개헌을 논의하게 되면 국면의 전환이 초래된다"며 "개헌을 논의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은 하야하라"고 외치는 지금 국면이 유지되면 혹시 대통령이 정말 하야할지도 모르고, 그러면 60일 뒤에는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국면이 전환되기를 원치 않는 것이라면 파렴치다.

    그게 아니라 정말로 광장의 외침밖에 듣지 못하고 '소리 없는 소리'를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라면 무능이다. 어느 쪽이라 해도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는 역량 미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 언론이 해야 할 일은 1960년 6일 헌정 중단의 위기 국면에서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일본 최고 권위의 중앙일간지들이 공동 사설을 냈던 것처럼, 헌법 절차에 따라 이 위기 국면이 수습될 수 있도록, 나아가 위기 국면이 재현되지 않도록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개헌은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당장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고 그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국정 추진 동력은 없고 친인척·측근의 비리 추진 동력만 가득한 '제왕적 대통령제'가 현존하는 한 불행한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1960년 '안보투쟁' 속에서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헌정 상의 위기가 발생해도 최대한 신속하게 민의를 수렴해서 국면을 매듭지을 수 있는 통치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정치인들도 정말로 대의대표(代議代表)를 자처한다면 아스팔트 속의 'n분의 1'이 되는 데 자족할 일이 아니다. 국민이 아스팔트로 몰려나올 일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소리없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1980년 헌법 부칙 제3조는 "이 헌법 시행당시의 대통령의 임기는 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이 선출됨과 동시에 종료된다"고 규정했다. 보다 선진적으로 민의를 수렴할 수 있는 새로운 통치구조를 고민하면서, 동시에 헌정 중단의 위기 국면을 헌법과 절차에 따라 해결할 수 있는 슬기로운 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