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비대위원장 옹립설'로 당내 갈등 격화, 행동 반경에 제약 생겨과감히 원내대표 던지고, 보다 자유로운 지위에서 반기문 위해 나설 가능성
  •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위한 정수(正手)인가.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의 전격 사퇴 선언에 대해 반기문 총장과 연관짓는 정치적 해석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도중 원내대표직 사퇴를 선언했다. '이정현 지도부 퇴진론'을 둘러싼 의원들의 격론이 오가던 도중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사퇴 선언이었다.

    도중에 의총장을 나선 이종구 의원은 "정진석 원내대표가 빠른 시일 내에 사퇴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며 "12월 2일 예산안 처리만 끝내면 바로 사퇴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의총장을 나선 장제원 의원은 "(12월 2일로) 시한을 못박은 것은 아니고, 예산안 처리를 끝내고 원내대표에서 사퇴하기로 했다"며 "본인 가슴 속에는 사퇴하겠다는 결심이 확고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부연했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사퇴 선언이 나오기 전까지 새누리당 의원들은 한창 편을 갈라 '이정현 지도부'의 거취를 논의하고 있었다. 어느 한 쪽으로 세(勢)가 쏠리지 않은 채 양측의 세력이 팽팽해, '즉각 사퇴론'과 '선(先)수습 후(後)사퇴론'은 쳇바퀴 돌 듯 반복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 정진석 원내대표가 전격적으로 원내대표직을 던졌다. 이완영 의원이 "워낙 갑작스런 이야기"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따라서 원내대표 사퇴 선언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인지 벌써부터 여러 갈래의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일단 정진석 원내대표의 사퇴 선언은 어떤 식으로든 반기문 총장과 연결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반기문 총장과 같은 충청권 출신으로 '충청 대망론'을 띄우고 있었던데다, 지난 추석 연휴에는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를 방문해 반기문 총장에게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말까지 전하며 대권 도전을 진지하게 권유하는 등 깊은 교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객관적으로 물러나야 마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정현 대표가 '버티기'에 나선 것은, 반기문 총장이 귀국하는 내년 1월 중순까지 시간을 끌다가 그를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옹립하려는 친박계의 '꽃가마 작전'이 아니냐는 의심이 있었다.

    지난 2012년 대선을 보면 대선이 열리는 연말연초에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로 직행한 뒤 결국 대권까지 거머쥐었던 선례(先例)에 따른 학습효과다.

  •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반기문 비대위원장 꽃가마' 설은 그 실체 여부에 관계없이 정치권에 파다했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그런 설이 있다더라"며 "반기문 총장이 (새누리당의 쇄신을 할) 카리스마와 추진력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입장을 밝혔을 정도다.

    이러한 설은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매우 부담이 됐을 수밖에 없다. 당 지도부가 붕괴될 경우 비대위 구성을 주도할 수 있는 원내대표인 자신이 마치 당내 친박계와 짜고 '반기문 꽃가마 작전'을 결행하고 있는 것처럼 비치는 모양새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실 지난 5월 3일 선출된 정진석 원내대표는 여소야대(與小野大) 원내 구도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처신을 잘해왔다. 친박과 비박 중 어느 계파와도 유착하지 않으면서 정론(正論)만을 펼쳤다.

    정진석 원내대표 스스로도 이날 의총 도중 취재진과 만나 "원내대표로 선출된 뒤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지만 지금까지 헤쳐왔다"며 "편견이나 경도됨이 없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고, 취해야 할 입장을 취했다"고 자평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호하지 않고 일관해서 경질론을 제기하며, 국회 운영위원회 증인 출석을 권유하고, 출석하지 않자 국회 차원의 고발을 강행했던 것이 그 일례다.

    이처럼 그동안 중립적으로 잘 처신해왔는데 정체불명의 '반기문 비대위원장 옹립설' 때문에 친박계와 영합한 듯이 비쳐지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설이 반기문 총장에게 미치는 정치적 악영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반기문 총장은 내년 1월 중순에 귀국한 뒤 정치적 중원을 장악하며 폭넓은 행보를 펼쳐야 하는데, 정진석 원내대표를 매개로 마치 친박계와 어떤 '딜'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자체가 정치 행보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가뜩이나 반기문 총장은 친박계 후보처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최순실 게이트' 이후 차기 대권 주자 조사에서 지지율 폭락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기문 총장과 교감이 있는 자신이 지도부 붕괴 시에 후임 비대위 구성을 주도할 수 있는 원내대표 자리에 있음으로 인해 당내 계파 간의 갈등과 내홍이 격화되고 있다는 판단도 했을 법하다.

  •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과 유승민 전 원내대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 이른바 비박계 잠룡(潛龍)들도 귀가 있는 이상 '반기문 비대위원장 옹립설'을 듣지 못했을 리 없다. 이는 이들로서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안이다.

    이러한 계획이 추진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있는 한, 비박계 대권 주자들은 현재의 지도부를 빠르게 무너뜨리는데 사활(死活)을 걸 수밖에 없는 국면이다.

    반드시 이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더라도, 비박계 중진 의원, 초·재선 의원 회동에 이어 지난 1일에는 비박계의 이른바 5룡이 모여 지도부 총사퇴를 촉구함으로써 지도부의 거취를 둘러싼 당내 갈등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이날 의총에서도 비박계 의원들의 날카로운 '지도부 퇴진론'이 이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황영철 의원은 "밀려서 사퇴하는 게 올바른지, 아니면 스스로 결정을 해서 사퇴를 하는 모습이 좋은지 판단을 내려달라"며 "오늘 대표가 사퇴를 하는 것이 가장 명분 있는 모습"이라고 단언했다.

    이종구 의원은 "당정청(黨政靑)에 충신이 없고 간신들만 많아 사태가 이 지경이 됐다"며 "나라가 흔들리고 당 지지율이 떨어지는 책임은 지도부가 져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일갈했다.

    장제원 의원은 "가장 고급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할 당 지도부가 최순실 씨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막지 않았나"라며 "새누리당이 국민의 눈을 가렸다고 난리인데, 현재의 지도부로 어떻게 사태를 수습하느냐"고 압박했다.

    결국 지도부의 거취를 둘러싼 내홍이 차기 대권 주자를 둘러싼 전선(戰線)으로까지 번져 분당(分黨) 등 당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히기 전에, 자신이 원내대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정진석 원내대표가 이날 취재진을 만나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라며 "버리고 비워야 국민들이 다시 채워주지 않겠나"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비대위 구성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원내대표직이 이 시점에 와서는 오히려 정진석 대표의 큰 행보를 가로막는 족쇄가 된 측면이 있다"며 "원내대표를 버리고 가벼운 몸으로 반기문 총장의 대권 행보를 도우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정치 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