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총 늦춘 정진석, 이정현 대응할 '골든타임' 벌어
  • ▲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이정현 대표(왼쪽)과 정진석 원내대표(오른쪽).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이정현 대표(왼쪽)과 정진석 원내대표(오른쪽).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누리당 내 결전이 벌어질 오는 4일 의원총회를 앞두고 비박계가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친박계의 대응방안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된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3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당 대표직에)책임과 소임, 소명의식을 갖고 다 할 것"이라면서 "제가 너무 존경하고 좋아하는 김무성 대표께서 당 대표를 중심으로 뭉치자고 해주실 것을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비박계의 당 지도부 사퇴 주장에 맞서 정면돌파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지난 2일 분당설까지 주장하는 비박계에 친박계가 정면승부를 예고한 대목이다.

    친박계는 현재 겉으로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내심 여러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은 3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불이 났는데 불을 끄고 봐야지 뭘 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냐"면서도 "의원총회에서 따로 발언하고 싶지는 않다"고 언급했다. 여론이 나쁜 상황에서 자칫 기름 부은 격이 될 수 있음을 의식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 이정현의 '버티기' 왜 이어질까

    이렇듯 악화 일로를 걷는 가운데서도 친박계는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친박계는 이정현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비박계의 노림수가 계파색이 옅은 친박 의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제스쳐로 보고 있다. 이정현 대표가 당 대표를 놓지 않고 있는 첫 번째 이유다.

    만일 이정현 대표가 물러난다면 차기 비대위원장을 의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비박계가 주도권을 틀어쥐게 되고, 이 과정에서 계파색이 옅은 친박계 의원들이 비박으로 돌아서기를 기다린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20대 총선 이후 줄곧 친박계가 주도권을 쥔 채로 흘러갔다. 때문에 계파색이 뚜렷하지 않은 초·재선 의원들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성향을 드러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비박계로서는 당내 주도권을 가져가면서 비박 성향 의원들을 다수 확보한다면, 향후 대선 경선 과정에서 더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친박계는 당장 뚜렷한 반격의 카드는 없지만 일단 시간을 지연시키면서 상황을 관망하는 것을 보인다. 친박계 사정에 밝은 한 여권 관계자는 "지금 당장 비박계가 분당하거나 탈당을 한다면 친박계로서 대응할 방법은 없다"면서도 "그래도 생각해본다면 지난 2일보다는 여론이 나아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분석으로는 이정현 대표가 어느 정도 지지율이 회복되는 국면에서 사퇴해야 향후 역할이 다시 주어질 수 있다는 설명도 있다.

    이정현 대표는 당내 몇 안 되는 호남 출신으로 내년 대선에서는 호남에서 지지를 끌어내는 임무를 맡게 될 것이 분명한 위치에 있다. 때문에 이 대표가 주저앉으면서 당 대표생활을 마감하면 당장 여론을 끄는 데 나을 수는 있지만, 길게 보면 당 전체의 손실이자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당내 몇 안되는 호남 인사다. 그는 내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호남 지지를 끌어내는 임무를 맡을 것이 확실시 된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당내 몇 안되는 호남 인사다. 그는 내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호남 지지를 끌어내는 임무를 맡을 것이 확실시 된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정진석의 '인공호흡'으로 위기 넘긴 새누리… 의총에서 비박에 역공 나설까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달 25일 대국민 사과 이후 끝없이 추락했다. 거국내각을 수용키로 했지만, 협상이나 논의에 진전이 뒤따르지 않으면서 비난 여론은 거세졌다.

    1일을 거치며 박 대통령을 향한 비난 여론은 절정에 달했다. 야권은 기세등등하게 새누리당이 수용키로 한 거국내각에 반대표를 던졌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지난 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거국내각을 제안하시려면 적어도 제1야당 대표에게 사전에 이런 제안을 하려 한다고 전화 한 통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이런 태도의 변화 없이는 야당이 협조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 국민은 '하야'와 '탄핵'을 외치며 전국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면서 "국면전환용 인사 거국내각으로 민심을 돌릴 수는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친박계는 지난 2일 야당과 협의 없이 '김병준 총리'를 지목하는 카드를 냈다. 여기에는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역할을 했다.

    여태까지 진행된 그림을 보면, 2일에 의원총회를 개최해달라는 비박계의 계속된 요구에 정진석 원내대표는 건강상의 문제를 들어 "이번 주 까지 하겠다"면서 오는 4일로 미뤘다. 이 사이 청와대에서는 총리와 비서실장, 그리고 정무수석이 야권성향 인사로 정해졌다.

    이정현 대표가 위기에 처하자 청와대가 이틀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여론 진화에 나선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정진석 원내대표는 도저히 건강이 좋지 않아 의원총회를 열 수 없다고 했지만, 다음날 최고 중진 연석회의에는 등장해 거의 내내 회의장을 지켰다. 실제 이전부터 건강상의 문제를 토로해온 정 원내대표가 의원총회를 미루기 위해 꾀병을 부렸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건강상의 문제라면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대신해 여는 방안도 있었다는 것이 비박계 측 주장이다.

    물론 여론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친박계로서는 최소한 4일 의원총회를 앞두고 최소한의 방어선은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이정현 대표를 구하기 위해서 의원총회를 미룬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정 원내대표가 버틴 2일의 시간이 새누리당과 청와대로서는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는 시간을 벌 수 있는 '골든 타임'으로 작용한 셈이다.

    더 나아가 이정현 대표가 의원총회에 앞서 박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을 요구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이 경우 "전례 없이 박 대통령까지 직접 수사를 받는 등 성역없는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더 이상의 당 흔들기를 그만둬야 한다"고 역공세를 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3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의원총회가 오후 4시로 연기됐는데, 이 사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조사를 받겠다고 말하는 시나리오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문자를 보내다가 한 언론사의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 ▲ '국무위원 식사파동'당시 국회 본회의장 풍경. 이날 정진석 원내대표는 김재수 농림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애를 쓴 바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무위원 식사파동'당시 국회 본회의장 풍경. 이날 정진석 원내대표는 김재수 농림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애를 쓴 바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비박과 뭉쳐 야당에 맞설 반격의 실마리는 '김병준 청문회?'

    이정현 대표는 3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김병준 총리가 야권 인사라는 점을 부각하며 야당의 협조를 '읍소'했다.

    이 대표는 "한마디로 이 두 인사를 보면서 제가 느낀 것은 대통령께서 얼마나 현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는지, 야권이 요구하는 부분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응답을 하고 있는지 하는 부분"이라며 "다른 인사들도 국정운영을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협조를 요청하고 도움을 받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야당 대표가 만나자고 한다면) 당장에라도 뵙고 싶고 시간·장소를 가리지 않겠다"면서 "야당을 존중해서 인선하는 내용이고 인물인 만큼 야당에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좀 받아주셨으면 감사하다"고 몸을 낮췄다.

    그는 같은 자리에서 야당이 그간 '불만 사항'으로 거론해 왔던 이야기를 긍정적인 관점에서 쏟아냈다. '영수회담' 가능성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 안 드려도 대통령님께서도 여러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했고, "절차를 무시했다고 하면 이 부분은 큰 아량으로, 정치력으로 양해해달라"고 간청했다.

    이정현 대표 특유의 말투가 묻어나는 고도의 언론플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새누리당이 김병준 총리 등 인사를 청문회에서 통과시켜달라며 저자세로 나오면서 동정 여론을 끌어내는 한편, 거대 야당이 국정 공백을 주도하면서 패권을 휘두르는 모양새로 비치게 만드는 효과를 동시에 보려 한다는 지적이다. 총리직은 대통령이 고유권한으로 임명하게 돼 있다.

    특히 이 대표는 야당이 절대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수를 쳤다. 친노·친문 세력을 향해서는 "적어도 자기들과 집권 내내 함께했던 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높게 평가할 것이란 생각 개인적으로 가졌다"고 했고, 국민의당을 향해서는 "국민의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천되고 검토된 것으로 안다. 이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정현 대표가 야당의 딜레마를 찌른 것이다. 친박계 사정에 밝은 한 여권 관계자는 "지금이야 박근혜 대통령이 거국내각의 진정성을 의심받으며 비판 여론에 직면해 있지만, 막상 김병준 총리 인선을 위한 청문회가 열리게 되면 야권의 거부로 인해 거국내각이 무산되는 그림이 펼쳐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 역시 야당이 반대할 것으로 내다봤다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야당 입장에서 김병준 총리를 청문회에서 통과시키면 '최순실 사태'가 수습국면으로 접어들게 돼 호기를 놓치는 셈이 되고, 김병준 총리를 청문회에서 낙마시키면 자신들이 추천했던 인사를 차버리는 '모순'에 처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야당의 거부로 거국내각이 무산되려고 하는 이 지점에서는 새누리당이 야당을 상대로 "패권을 휘두르며 국정 공백을 조장한다"며 반격할 타이밍을 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최악의 경우인 김병준 총리 카드가 무산되는 상황에서도 새누리당보다는 두 야당에 타격이 크리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새누리당으로서는 김병준 총리 외에 다른 야권 인사들을 얼마든 계속해서 발탁할 수 있지만, 야당 입장에서는 자신들과 합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거부만 한다면 국정 공백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야권은 김병준 총리 카드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청문회를 거절할 태세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대변인은 "일방적으로 김병준 교수를 국무총리로 내정한다는 기습 발표를 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또 불통 인사를 단행했다"면서 "이런 식의 인사로 어떻게 국정 파행을 수습할 수 있겠는가"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