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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의 국회 임명동의 과정이 순조로울지 정치권에서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지난해 6월 국회에서 황교안 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가결시키고 있는 모습. 당시 가표는 156표, 부표는 120표였다. ⓒ뉴시스 사진DB
청와대가 '김병준 국무총리' 카드를 꺼내들었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조차 놀라게 한 전격적인 지명 수순이다. 정치권에서는 국회의 임명동의를 받는 과정이 순조로울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온다.
헌법 제86조 1항은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전임 황교안 총리까지는 원내 과반 의석을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점하고 있었다. 따라서 검증과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다소 간의 잡음은 있었지만, 일단 이 과정을 통과하면 임명에 어려움은 없었다.
4·13 총선의 결과로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된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청와대가 총리 내정자를 발표하더라도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면 자동 낙마한다.
이것은 지난 정홍원 전 총리 시절에 자주 있었던, 단순히 내정을 했다가 철회를 하는 것과는 다르다. 기존 총리는 이미 경질했고 신임 총리는 임명이 되지 못하는, 미증유의 정국 아노미(Anomie)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내 121석을 보유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벌써부터 김병준 총리 내정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총리 내정 직후 밝힌 논평에서 "야당과 협의가 전혀 없어 거국내각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포장지도 내용물도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개각 발표를 수용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될 경우, 부(否)표를 던질 것임을 확실히 하는 태도다.
새누리당에서조차 반란표가 나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청와대에서 김병준 총리 내정자를 지명한 2일 오전 9시 30분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새누리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가 한창 진행되던 도중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중진의원들이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기 위한 방안을 놓고 갑론을박을 하고 있던 와중에 전격적으로 총리 지명이 이뤄졌다. 그 전까지 "여야 합의로 총리를 추천해야 한다"고 토론을 벌이던 사람들을 모두 벙찌게 만든 조치였다.
회의 도중 총리 내정자가 전격 발표되자 정병국 의원은 이정현 대표에게 "지금 보니까 대통령께서 총리를 발표하셨던데, (이정현 대표는) 사전에 그걸 알고 있었느냐"고 따져물었다. 이정현 대표가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자, 정병국 의원은 "중지를 모아서 대통령께 건의를 드리자는 것인데, 이런 식이면 백날 떠들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격노했다.
이 시점에서 몇몇 비박계 중진의원들도 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를 먼저 떴다. 그래도 자리를 끝까지 지킨 정병국 의원은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 종료 직후 본지 취재진을 만나 "소 귀에 경 읽기"라며 "자기네들끼리 다 하겠다면, 우리가 이야기를 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허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회법 제112조 5항은 "인사에 관한 안건은 무기명투표로 표결한다"고 규정한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지도부의 일방통행에 불만을 느낀 비박계 의원들이 부담없이 '반란표'를 던질 수 있는 구조다. 총리 임명동의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을 더욱 어둡게 하는 전조다.
변수는 국민의당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지난달 27일 김병준 총리 내정자를 당의 비상대책위원장 후보로 천거했었다. 아주 훌륭하고 좋은 분이라 비대위원장으로 모시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총리 내정자가 되자 돌연 '부적격 인사'라고 몰아붙이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2일 "김병준 (총리)도 좋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탈당하고 영수회담해서 합의되면 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곤혹스런 처지 속에서 나온 고육지책으로 여겨진다.
△영수회담 △박근혜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이라는 선결조건이 갖춰진다면, 국민의당이 총리 임명동의안에 가(可)표를 던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셈이다.
하지만 총리 임명동의를 받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당적을 이탈할 가능성은, 평소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로 보건데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이렇게 될 경우, 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불투명을 넘어 불가능에 가까운 구도라고 볼 수 있다.
최악의 경우는 이 때문에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뒤를 이어 새롭게 경제사령탑을 맡아야 할 임종룡 경제부총리조차 임명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 장악 능력을 상실한 대통령에 이어, 총리와 경제부총리가 모두 공석이 되는,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국정의 공백 상태가 빚어질 수 있다. 사실상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다.
헌법 제87조 1항은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임종룡 경제부총리의 내정에는 김병준 총리 내정자의 추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총리 내정자가 먼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총리로 임명된 뒤 국무위원을 제청해야 한다. 총리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국무위원을 임명하는 게 헌법적 절차다. 총리의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 제청권자가 없어지기 때문에 설혹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국무위원인 경제부총리를 임명할 수가 없게 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경질된 상황에서 임종룡 경제부총리를 임명하지 못하면, 경제의 사령탑 자리는 졸지에 공석이 된다.
물론 편법은 있다. 경질된 황교안 총리가 물러나기에 앞서서 임종룡 경제부총리를 먼저 제청하고 물러나는 것이다. 그러면 박근혜 대통령은 황교안 총리의 제청을 바탕으로 임종룡 경제부총리를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할 수 있게 된다. 총리와 달리, 경제부총리는 청문회만 거치면 국회의 동의가 없어도 임명할 수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1998년 김대정정부 출범 당시 이른바 'DJP 연립'의 대가로 국무총리직을 약속받은 김종필 총리 내정자에 대해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한나라당이 부결 의사를 분명히 한 적이 있다"며 "그 때 김대중정부는 김영삼정부의 마지막 총리였던 고건 전 총리로 하여금 물러나기 전에 1기 내각의 모든 국무위원을 제청하고 물러나도록 했다"고 귀띔했다.
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지 못할 듯 하자, 전 정부 마지막 총리의 제청을 바탕으로 국무위원을 임명해 1기 내각을 출범시켰던 것이다.
다만 이러한 편법적 선례(先例)를 따르게 되면, '책임총리'의 모양새를 띄고 출범해야 할 김병준 총리 내정자의 스텝이 첫걸음부터 꼬이게 된다는 문제다.
임종룡 경제부총리가 김병준 총리가 아닌, 황교안 총리의 제청을 근거로 임명되게 되면, 국민 여론도 곱지 않을 뿐더러 야당으로 하여금 '역시 김병준 내정자는 '책임총리'가 아니다'라는 명분을 만들어줘 부결 가능성을 심화시킨다는 게 고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