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서울시 10개 산하기관에 적용...역기능 목소리 커
  • ▲ 박원순 서울시장이 17일 '근로자이사제 조례 제정 기념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박원순 서울시장이 17일 '근로자이사제 조례 제정 기념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근로자이사제 도입을 넘어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경영협의회'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박 시장은, 근로자이사제 도입이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지만, 제도가 노사갈등을 더 심화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만만치 않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17일 시청에서 진행된 '근로자이사제 조례 제정 기념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근로자이사제가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도입된다. 앞으로 산업계에서 노사간 평화를 이루고 새로운 경제 번영을 이룩하는데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박 시장은 "우리 사회의 갈등 지수가 OECD 27개국 중 2번째로 높고, 특히 노사갈등은 매우 심각하다. 갈등으로 인한 비용손실은 최대 246조원이다. 이는 서울시의 10년 예산으로, 국공립 어린이집 10만 개를 지을 수 있고, 임대주택 90만호를 지을 수 있는 수준"이라며, 이런 갈등을 치유하는 데 있어 근로자이사제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서울시가 근로자이사제를 제대로 정착시킨다면 전국적으로, 또한 공공을 넘어 민간으로 확산되리라고 믿는다"며, "서울시는 연구를 통해 노동이사제 뿐만 아니라 노조가 참여하는 '경영협의회' 도입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원순 시장의 주도로, 서울시 산하기관에 근로자이사제 도입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학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박 시장이 근로자이사제를 확대 발전시키겠다는 발상에 대해, 학계는 “시대를 역행한 퇴행적 발상”이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실제 근로자이사제의 발상지인 독일은 물론이고 유럽 상당수의 국가는, 이 제도가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려,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근로자이사제가를 도입하기에는 유럽과 한국의 국내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현실적 지적도 많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유럽의 노사관계와 달리, 경영진을 ‘민중의 적’ 또는 ‘혁명의 대상’으로 여기는 강성노조가, 노동운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국내 현실을 고려할 때, 근로자이사제 도입은 노사갈등을 더 심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

    근로자이사제가 공기업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비판적 시각도 많다.

    막대한 적자에도 불구하고 규정까지 어겨가며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방만한 경영으로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공기업 구조조정에 이견을 다는 국민은 거의 없다. 공기업 노조와 민조노총, 친노조 성향의 정치인 등 ‘특수관계자’들을 제외한다면, 공기업 군살빼기와 경영합리화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로자이사제가 도입되면, 공기업 구조조정은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노조가 추천한 근로자이사가, 노조의 반발을 무릅쓰고 구조조정에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 박원순 서울시장이 17일 '근로자이사제 조례 제정 기념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박원순 서울시장이 17일 '근로자이사제 조례 제정 기념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서울시가 진행하는 근로자이사제는 근로자를 대표하는 1~2명이 이사회에 참여해 경영에 간섭하는 제도다.

    서울시 산하 공사·공단이 그 대상으로, 근로자 100명 이상인 13개 기관인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 ▲시설공단 ▲농수산식품공사 ▲서울주택도시공사 ▲서울의료원 ▲서울연구원 ▲서울산업진흥원 ▲서울신용보증재단 ▲세종문화회관 ▲서울디자인재단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문화재단 등이 해당된다.

    해당 기관에 1년 이상 재직한 자는 이사가 될 자격을 갖게 되며, 공개모집과 임원추천위원회 등의 절차를 통해 선정된다. 이들은 일반 비상임이사와 동일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는다. 임기는 3년이다.

    서울시는 지난 2014년 11월 '노사관계 모델 도입'을 발표하면서 본 제도를 추진해왔다. 이후 올해 9월 서울시의회가 '근로자이사제 운영 조례안'을 의결·공포했으며, 12월부터 본격 시행된다.

    서울시는 근로자이사제를 통해 근로자의 주인의식을 강화하고 투명한 경영과 대시민 서비스 개선을 이루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통해 경제성장 동력이 창출되는 선순환 경영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 ▲ 박원순 서울시장이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박원순 서울시장이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제도 시행과 관련해 바른사회시민회의 박주희 사회실장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박원순 시장이 말하는 근로자이사제는 정치투쟁과 거리투쟁 일변도의 노조가 주류인 우리 현실을 고려하면 도저히 맞지 않는 제도"라고 진단했다.

    박주희 실장은 "근로자이사제는 노사간 소통이 아닌, 노조의 목소리만 대변하는 창구가 될 것"이라며 "강성노조의 정치적 권력만 키워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숭실대 법학과 전삼현 교수는 지난 3월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노동이사제(근로자이사제로 변경되기 전 명칭) 관련 토론회에서 "노동이사제는 1970년대 독일을 중심으로 처음 도입됐지만 지금은 시장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신속한 의사결정을 가로막고, 결과에 대한 책임의 주체도 모호하게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했다.

    전삼현 교수는 "독일을 보면 경영효율성이 보장되기 어려운 단점들이 나타난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기업은 경영효율성 저하로 경쟁력을 상실할 우려가 매우 높다"며, "독일은 글로벌 경쟁이 심화된 1990년대 이후부터 기업들의 경쟁력이 하락하자, 근로자 경영참여를 제도적으로 개선했다"고 소개했다.

    전 교수는 "독일식 근로자 경영참여 제도에 대한 맹신은 국내시장에 대한 투자를 억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자리 창출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