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차별 참회·사과, 시정하겠다"… 정기국회서 '예산 수소폭탄' 예고
  •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첫 호남 출신 보수정당 당대표인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데뷔전에서 호남을 향해 진정성 있는 화해의 손짓을 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3선·전남 순천)는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새누리당과 새누리당의 전신, 지금과 이전의 보수 정부가 호남을 차별하고 호남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측면이 없지 않았던 점에 대해 참회하고 사과한다"며 "새누리당이 새롭게 변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세계적으로 골이 깊은 갈등의 치유 사례에서 보듯이, 화해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잘못의 인정과 참회, 사과와 시정에서 비롯된다"고 덧붙였다. 지난 시기의 '호남 정책'에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이를 참회함과 동시에 향후 강력한 '시정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예고한 것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 호남이 한 줌 친노·친문패권세력의 '표 식민지'로 전락했던 아픔을 목도했음에도, 절제된 감정으로 '호남정치 복원'의 비전을 제시한 것 또한 돋보였다.

    이정현 대표는 "호남 출신 당대표로서가 아니라, 보수 우파를 지향하는 새누리당 당대표로서 호남과 화해하고 싶은 것"이라며 "호남이 변방 정치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으며, 호남도 주류 정치의 일원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이정현 대표는 과거 한국민주당(한민당)의 사례를 거론했다. 한민당은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보수 우파 정당으로,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큰 획을 그었다. 전남 담양 출신의 고하(古下) 송진우(宋鎭禹) 선생과 전북 고창 출신인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선생이 한민당의 '투 톱'이었다.

    "과거 한민당은 호남 지주들이 주축이 된 정당"이었다며, 대한민국이 건국되는 과정에서 엄연한 주류 정치의 일익이었던 '호남정치 전성시대'의 기억을 상기시킨 이정현 대표는 "(다시 호남이 주류 정치의 일원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하겠다"며 "호남과 새누리당이 얼마든지 연대정치·연합정치를 펼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고, 노력 또한 계속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이정현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 말미에서 특히 호남을 겨냥해 방점을 찍은 것에는 여러 가지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막 개회한 20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가 이념에 매몰된 정쟁으로 흐르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 민생·경제와 지역 발전을 둘러싸고 정당 간에 건전한 경쟁을 벌이는 방향으로 물꼬를 트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화해는 잘못의 인정과 참회, 사과와 시정에서 비롯된다"고 언급한 점이 눈에 띈다. 이 중 '참회와 사과'는 이날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미 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시정이다. 이 '시정'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냐가 관건인데, 예산을 다루는 정기국회가 개회했다는 점에서 이미 답은 나와 있는 셈이다.

    그간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보수 정부가 호남을 차별하고 호남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측면을 일거에 불식시킬 만큼 통크게 호남에 '예산 수소폭탄'을 무차별 투하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새누리당은 어느 한 지역도 포기 않고 온 국토를 폭넓게 발전시키겠다"고 콕 찝어 언급한 것에서 이러한 의도가 뒷받침된다.

    △보성~임성리 남해안철도 △광주~순천 경전선 선형개량 및 전철화 △SRT 전라선 배치 및 KTX 전라선 증편 △KTX 호남선 2단계 무안국제공항 경유 노선 조속 완공 등 호남 권역의 숙원 사업이 예산 편성 과정에서 배려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민감한 사안인 인사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정현 대표는 "인재를 널리 구해쓰는 명실상부한 전국정당, 온 국민을 아우르는 실질적인 집권여당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이날 교섭단체 대표연설 직전 발표된 당직 인선에서 당 재정위원장에 지난 20대 총선에서 전남 무안·영암·신안에 출마했던 주영순 전 의원이 임명됐다. 수석부대변인은 전북 남원·임실·순창에 출마했던 김용호 변호사가 맡았다.

    물론 이 정도의 당직 인선이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뒷받침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인사에 관해서 청와대와 모종의 사전 교감이 있었는지 여부에 촉각이 쏠리는 까닭이다.

    8·9 전당대회에서 이정현 대표가 선출된 직후 이뤄졌던 8·16 개각에서는 호남 출신 인사가 장관급으로 입각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다음 개각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호남 출신 인사가 장관급으로 새로 중용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평소 '바람론'을 내세울 정도로 눈에 보이지 않게 청와대와 유형·무형의 교감을 나누는 것으로 알려진 이정현 대표이기 때문에, 머지 않아 인사·예산과 관련한 '시정'의 흐름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정현 대표가 집권여당의 '전가의 보도'인 '예산 편성권'과 '인사 발탁권'을 각각 양손에 쥐고 "호남은 진보도, 과격도, 급진도 아니고, 특정 정당의 전유물도 아니다"라며 "호남은 호남"이라는 사자후를 교섭단체 대표연설 첫날에 토하는 바람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는 분석이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이른바 '호남 민심'을 둘러싸고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그들의 싸움은 '호남 민심'을 진보·과격·급진의 틀 속에 가둬놓은 채로 전개되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문제 등을 둘러싼 좌클릭 경쟁 등이 그 예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그간 야당 정치인들은 말로만 '호남정치의 복원'을 줄기차게 외쳐오면서도, 구체적으로 호남을 어떻게 주류 정치의 일원으로 다시금 끌어올릴 것인지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공리공담의 이념 논쟁을 넘어 예산과 인사 차원에서의 '시정'을 통해 호남에 진정성 있게 다가가겠다고 차별화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이정현 대표의 연설의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