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대응 적법성 논란에 선관위 책임론 확산선관위 내부 지침 앞세웠지만 법적 근거 부재 지적법조계 "과한 독립성에 책임 공백" 제도 개편론 제기
  • ▲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집회가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지난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시민들이 재선거를 외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집회가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지난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시민들이 재선거를 외치고 있다. ⓒ정상윤 기자
    제9회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단순 행정 착오를 넘어 명백한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비판으로 번지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용지 추가 송부와 일련번호 수기 작성이 "실무상 업무 관행"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법조계에서는 법적 근거 없는 내부 매뉴얼이나 관행으로 상위 법률 위반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투표용지 부족으로 실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유권자들의 국가배상 청구 가능성에 더해 서울 송파구 잠실7동 투표소에서 발생한 선거인 명부 대조전표 유출 사태까지 겹치면서 선관위의 법적 책임 공방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 ▲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이 사퇴를 표명한 지난 5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앞에서 선관위 해체를 주장하는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이 사퇴를 표명한 지난 5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앞에서 선관위 해체를 주장하는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당일 추가 송부 및 수기 번호 작성 … 선거법 위반 논란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은 선관위가 선거 당일 투표용지를 추가로 송부한 행위와 일련번호가 공란인 예비 투표용지에 일련번호를 손으로 기재한 행위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다.

    공직선거법 제151조 제1항은 "투표용지와 투표함은 구·시·군선거관리위원회가 작성해 선거일 전일까지 읍·면·동선거관리위원회에 송부하고, 이를 송부받은 읍·면·동선관위원장은 투표용지를 봉함해 보관했다가 투표함과 함께 투표관리관에게 인계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는 투표용지가 선거일 전에 확정된 절차에 따라 작성·송부·보관돼야 한다는 취지로, 선거 당일 임의로 투표용지를 추가로 조달하거나 배부하는 상황을 막아 투표용지 조작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절차적 장치다.

    그러나 선관위는 이번 지방선거 당일 투표용지가 부족해지자 전국 67개 투표소에 투표용지를 추가로 송부했다. 이 가운데 50개 투표소에서는 추가 송부된 투표용지가 실제 투표에 사용됐고, 22개 투표소에서는 투표가 일시 중단됐다 재개됐다.

    공직선거법 제150조 제10항 위반 여부도 쟁점이다. 해당 조항은 "투표용지에는 일련번호를 인쇄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태 당시 선관위는 일련번호가 공란인 예비 투표용지에 일련번호를 손으로 적어 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문에서 '기입'이 아닌 '인쇄'라는 표현을 명시하고 있는 만큼 수기 작성은 조항의 문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관위는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사무편람상 절차였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공직선거법이나 공직선거관리규칙에 선거일 당일 투표용지를 추가 송부하거나 일련번호를 수기로 작성할 수 있도록 한 명시적 근거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더해 투표용지 작성·인계 과정의 관리 부실 여부도 추가 쟁점으로 거론된다. 

    공직선거법 제152조는 투표용지 인쇄소의 명칭과 소재지를 공고하도록, 공직선거관리규칙 제83조는 투표관리관이 투표용지의 매수 및 청인 날인, 일련번호, 인쇄 상태 이상 유무 등을 확인한 뒤 봉인하도록 규정한다.

    투표용지 작성 관리록에는 수령 매수와 일련번호 범위도 기재되는 만큼 인쇄소에서 구·시·군선관위, 읍·면·동선관위, 투표소로 이어지는 각 단계의 인수인계 내역을 확인하면 용지 부족이 어느 단계에서 발생했는지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 투표자 이름과 성별 등이 담긴 선거인 명부 대조전표가 외부에 노출된 사건과 관련해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별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개인정보보호법 제29조의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아니하도록 안전성 확보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규정 위반 여부가 거론된다. 투표소 내 개인정보 문서를 제대로 수거 및 보관하지 못했다면 관리 부실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선관위가 투표용지 부족의 원인을 사실상 투표율 예측과 용지 배분 실패로 설명한 점을 두고 국가배상 책임 가능성 또한 언급된다.

    선관위는 지방선거 투표율과 사전투표율 증가 추세를 고려해 투표용지 인쇄 하한선을 낮췄지만 투표소별 편차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앞서 법원은 선거 과정에서의 수형인 명부 관리 부실 및 장애인 투표 보조 거부, 투표 마감 전 도착자 투표 거부 등 공무원 과실로 참정권 행사가 제한된 사건에서 30만 원에서 최대 600만 원의 위자료를 인정해 왔다.

  • ▲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집회가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지난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시민들이 재선거를 외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집회가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지난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시민들이 재선거를 외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정부도 합수본 지시 … 법조계 "독립기관도 책임 예외 아냐"

    정치권과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 압박도 커지고 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번 사태를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국민의 불가침 권리인 참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하며 특검이나 국정조사 등을 포함한 실효성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정 장관은 이번 사태를 부정선거 음모론이나 과격 시위로 연결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참정권을 침해당한 국민의 정당한 분노를 망상과 혐오로 치환하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검찰과 경찰이 참여하는 합동수사본부 구성을 지시했다. 경찰은 선관위 간부들에 대한 직무유기 등 고발 사건과 관련해 고발인 조사를 시작으로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결국 이번 사태의 본질은 부정선거 의혹이 아니라 선거 관리 기관의 법 위반과 참정권 침해 여부에 있다. 선관위가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법조계에서도 선관위의 법적 책임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선 어떤 사정으로 투표용지가 부족해졌는지 사실관계가 확인돼야 한다"며 "투표소별 배분 기준과 실제 송부량, 송부·인계 과정에서 고의나 중대 과실이 있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장 교수는 "기준을 지키지 않았거나 고의성이 확인된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유권자에게 손해가 발생했음이 확인된다면 국가배상 청구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황도수 변호사는 선관위의 '업무상 관행' 해명이 법적 책임을 피할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황 변호사는 "투표용지는 인쇄소에서 출고되는 순간부터 선관위를 거쳐 투표소에 인계될 때까지 일련번호를 통해 추적·관리돼야 한다"며 "투표용지 당일 추가 배부나 일련번호 수기 작성은 명백한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의 참정권이 침해된 심각한 사안인 만큼 이번 선거는 취소가 검토돼야 한다"며 "선관위는 손해배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 변호사는 선거무효나 재투표 가능성도 거론하며 "공직선거법 제12조는 상급 선관위가 하급 선관위의 위법·부당한 처분을 취소하거나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선관위가 스스로 위법·부당한 선거 사무를 바로잡을 권한과 책임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참정권이 침해된 심각한 사안인 만큼 손해배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중앙선관위를 없앨 수는 없지만 독립성이 과도해지면서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가 된 것이 문제"라고 했다.

    황 변호사는 "선관위원장과 주요 위원 일부를 상임화하는 등 책임 있는 운영 구조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선거 관리의 독립성은 보장하되, 그에 상응하는 책임성도 강화해야 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