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치’(協治)? 개(犬)나 주라 그래!
    생존의 문제가 타협·양보 대상이라고?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얽히고 설킨 세상사를 겪고 살아가다 보면, 여러 일을 만나게 된다.
    이런저런 일 중에는 서로가 ‘타협해야만’ 할 경우가 있고,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양보해야만’ 할 일도, ‘양보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결코 ‘양보해서도, 타협해서도 안 될’ 일들이 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래도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生存) 아니겠는가.

  •  = ‘협치’ 첫발을 떼다 / 첫발 뗀 協治... / 가능성만 남긴 협치 / “협치 차원의 진전”... =
      국군 통수권자와 신임 여야 원내지도부가 ‘북악(北岳) 산장’ 회동을 마친 다음날
    여러 언론 기사와 사설[논평]의 제목과 본문에 실린 말들이다.
      ‘협치’(協治)라... 20대 총선 결과, ‘여소야대’(女小野大)가 된 이후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 뭔 의미인지 궁민(窮民)들은 다 안다.

      국군 통수권자와 여야 원내 지도부의 만남이 약 90분이나 계속되었고,
    여러 주제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고 한다. 6개 항의 합의 사항도 발표되었다고...
    물론 서로간에 이견(異見)들도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화기애매’(和氣曖昧)한 분위기였었나 보다.

      그동안 언론과 배워처먹었다는 작자들이 총선 결과를 이리저리 찧고 까불어대며,
    국군 통수권자를 절대 불통자·패배자로 낙인 찍어 씹고 뜯고 맛보던 며칠 전과
    사뭇 달라진 것만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슨 ‘협치’라는 게 글쎄...

      과연 될지 말지 모르는 노동개혁과 구조조정,
    배를 건지고 나서도 세월아 네월아 할 진상규명,
    당장 부르겠다는 님인지 넘인지를 위한 행진곡,
    시작과 끝을 두고 말도 탈도 많을 가습기 살인[살균이 아니다]제 등등...
    아주 ‘중요하고 당면한 국정 현안’이 맞다.
    그래서 궁민(窮民) 개개인들도 그렇고, 집단·정파·지역 간에 갈등과 마찰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조정도 타협도, 더 나아가 ‘협치’도 필요하다. 그러나...

      = 야당 원내대표들은 “대화가 우선”이라고 했다. 국민의당 박 원내대표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하고 창조경제와 신산업의 성장동력도 북한에서 찾는 게 좋다”고 했다. 더민주 우 원내대표는 회동 후 브리핑에서 “남북관계의 해법을 찾는 문제 등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 
      이건 현 시점에서 이 나라와 궁민(窮民)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 간의 ‘실질적인 전쟁’, 또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끝판 게임’은
    각기 다른 방법론을 갖고 타협·양보하거나, 무슨 담론(談論) 삼아 다루거나,
    ‘그저 중요한’ 정치적 쟁점의 하나가 될 사안이 결단코 아니다.
    근본과 원칙의 문제이다.

  •   핵무기[다른 무기도 아니다]로 무장하고 실전(實戰)에서 쓰겠다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치기(稚氣) 어린 흉악한 세습독재자와 “대화가 우선”이라고?
    경제의 신성장 동력을 그곳에서 찾아야 한다고?
      그 시절의 ‘굴종’(屈從)과 무조건 ‘퍼주기’도 모자랐다는 말씀인가?
    유엔으로 대표되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서 이 나라는 발을 빼자고?
    자유통일은 아예 포기하고, ‘비굴한 평화’를 위해 돼지새끼에게 무릎을 꿇자고?

      생존을 건 싸움에서 자신의 굴종으로써 도발자[敵]를 사실상 고무·격려하는 것은
    제 무덤을 파는 ‘이적행위’(利敵行爲)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이적(利敵)의 의지와 비겁함을 머리와 가슴에 담고 있는 무리들과
    ‘협치’(協治)를 한다고?

      위에 열거한 ‘중요한 국정 현안’들의 해결 방향과 방식에서 서로 간에 심각한 이견(異見)과
    심지어 코피 터지는 다툼이 계속되는 근본·근원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이 바뀌지 않는 한 이 나라 정치는 결국 말 그대로
    ‘狹治’[좁을 협, 다스릴 치 : 좁은 정치]에서 뱅뱅 돌기만 할 것이다.
    아니 서로 간의 깊은 갈등과 무조건 반대·질시가 앞으로도 쭉일 게 뻔할 뻔 자다.

      “총선에서 승리했다”(?)는 그들이 ‘협치(協治)’를 입에 올리려면,
    우선 이 근본의 문제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놔야 할 것이다.

      “핵 보유국을 고집하는 ‘세습독재’에 무릎을 꿇어야만
    이 나라가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가?”

  •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저서[JAPAN INSIDE OUT 일본의 가면을 벗기다]에서
    교훈을 얻는다.
      “1차 대전이 종식된 후 독일과 일본, 이태리 3국은 이 다음의 전쟁 준비에 몰두하게 되었다.
    불란서는 마지노선이 난공불락임을 과신하고는, 영국은 자기들 함대의 우세에 안심하고는,
    다른 나라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국토방위를 위해
    국민들을 동원·조직·무장할 생각을 하는 대신에 하찮은 논쟁과 의회에서 머리 빠개지는 토론만
    하면서 허송세월했다. 그들의 적국이 전면전을 개시할 준비가 다 되었는데도, 그들은 당면한
    문제를 파악하기에는 너무나 무식하여, 오직 충돌을 피하려고 온갖 종류의 유화정책에 매달렸다...”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