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호 향해서는 몸쪽 직구… '운동권' 약점 꼼짝 못하게 찔러가
  • ▲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9일 의원회관에서 회동을 갖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9일 의원회관에서 회동을 갖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정치 9단'이라 불리는 책략가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던진 응수 타진에 새누리당 정진석·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초 박지원 의원이 국민의당 원내대표로 선출됐을 때, 정치권에서는 그가 특유의 협상력을 발휘해 국민의당 몫의 국회직 확보를 극대화하거나 상임위원장을 통상의 몫 이상으로 받아내는 모습을 그려봤다.

    하지만 뜻밖에도 박지원 원내대표는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은 1당과 2당이 나눠가져라" "국회사무총장에 관심 없다" "상임위원장을 3~4개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은 무리"라는 뜻을 선뜻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원구성 협상은 의장단·상임위원장단 나눠먹기가 핵심일 줄 알았는데, 뜻밖에 상임위 분할·통합 카드를 꺼내들었다. 과연 박지원 원내대표의 이러한 언동에 숨은 심모원려(深謀遠慮)는 무엇일까.

    ◆조잡한 발상을 '신의 한 수'라고 평해서 불쾌?

    교문위·환노위 분할론이 거론된 이튿날, 일부 매체에서 이를 현행 18개인 상임위 총수를 늘려 새누리당 8, 더불어민주당 8, 국민의당 2로 예상되는 틀을 깨고 국민의당 몫의 상임위를 늘리기 위한 '신의 한 수'라고 분석하자 박지원 원내대표는 극도의 불쾌감을 내비쳤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현행 상임위 총수 18개를 유지하겠다는 말을) 써드려야 하겠느냐"며 "어떠한 경우에도 상임위원장 하나를 더 차지하기 위한 '신의 한 수' 그런 것은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박지원 원내대표의 발언에 수긍하는 분위기다. 한 야권 관계자는 "박지원 원내대표가 상임위를 3개 가져간다고 해서 칭송받고 2개 가져간다고 해서 비난받을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국민의당 몫을 하나 더 챙기자고 상임위 재편론을 꺼내든 것은 아닐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치적 거래나 흥정을 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말대로, 마치 에누리하거나 잔돈 거스르듯 상임위 하나를 더 가져오고 이런 문제보다도 20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전개될 정국 전체를 리드할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관측이다.

  • ▲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9일 회동을 갖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9일 회동을 갖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환노위 분리, '운동권' 우상호 찔러갔나

    우선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분할 카드는 86·운동권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를 겨냥했다는 분석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이 카드를 일찌감치 꺼내든 것이 아니라,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가 선출된 이후 "교문위를 분할하자"며 나서자, 이를 받으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환노위도 분할하자"고 마치 거드는 척 맞받았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환노위는 국회 내에서 운동권 의원들의 대표적인 근거지다. 노동운동 등을 했던 의원들은 환노위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기업들을 압박하거나 발목에 족쇄를 매다는 규제를 양산하는 등 '입법투쟁'을 전개해왔다.

    이러한 환노위를 분리하자는 카드를 꺼내듬으로써 우상호 원내대표의 약점을 찔러갔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 부의장을 지낸 운동권 출신이다.

    설혹 본인이 9일 SBS라디오 〈전망대〉에서 밝힌대로 "학생운동은 2년 했고, 정치는 17년 했다"고 하더라도 문제다.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에 발을 담궜다가 이후 노동운동·통일운동 등으로 나아가지 않고 사회에 진출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계속해서 운동에 투신한 이른바 '동지'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우상호, '환노위 사랑' 정의당 목소리 무시 못해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상호 원내대표는 정의당 심상정 대표나 노회찬 원내대표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심상정 대표는 서울대를 졸업한 뒤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해 동맹파업을 주동하는 등 노동운동을 계속했다. 노회찬 원내대표도 고려대를 졸업한 뒤 용접공으로 위장취업을 일삼으며 노조 조직 활동을 했다.

    그런데 이들이 이끄는 정의당은 환노위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하다. 심상정 대표는 19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협상 때 환노위에 배정된 비교섭단체 TO가 사라지자 로텐다홀에서 농성까지 해가면서 환노위에 배정해달라고 할 정도였다.

    '운동권 동지'들에 대한 개인적인 부채 심리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상호 원내대표는 비록 세력은 미약하지만 원내 최대 우군 세력인 정의당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당장 9일 있었던 양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노회찬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은 제1당이 갖고, 법사위원장은 야당이 갖는 게 맞다"고 밝혔다. 둘 다 '더민주가 가지라'며 손을 들어주는 등 우군 행세를 한 셈이다. 이에 대해 우상호 원내대표도 이례적으로 비공개 회동까지 따로 가지며 6석 비교섭단체 정의당을 극진히 예우했다.

    따라서 정의당의 목소리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우상호 원내대표는 환노위 분리나 해체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 ▲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9일 의원회관에서 회동을 갖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9일 의원회관에서 회동을 갖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환노위 분리, 견해 다르다"는 말에 이례적으로 강한 불쾌감

    우상호 원내대표가 8일 원내부대표단 인선 발표 직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환노위 분할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는 조금 다르다"라며 "상임위를 나누는 것은 최소화가 바람직하다"고 일축하자, 평소 에둘러 말하는 것을 즐기는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례적으로 강한 불쾌감을 토로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튿날 취재진을 만나 "그러려면 협상은 뭣하러 하느냐, 자기(우상호 원내대표)가 정해서 통보하면 될 것을…"이라며 "(우상호 원내대표를 만났을 때) '시키는대로 하겠습니다' 하면 되느냐"고 말했다.

    이는 이 부분을 정치쟁점화하겠다는 의도적인 제스처로 해석된다. 규제를 양산하고 경제 회생의 발목을 잡는 환노위의 존속을 고집하는 우상호 원내대표에게는 자연스레 운동권 이미지가 새삼 부각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4·13 총선 이후에도 더민주의 본질은 친노·친문·운동권 정당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 또한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다.

    야권 주도권 싸움에서 국민의당이 이길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이미 운동장을 기울이고 있는 셈이다. 문희상 의원이 박지원 원내대표를 가리켜 "이번 기회에 친노를 싹 죽여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 한대로, 원구성 협상 과정에서 상임위 분리·통합 논의를 지렛대로 더민주에 한 방 먹이려 할 가능성이 높다.

    ◆"현행 상임위 수 벗어나지 않겠다" 우상호에 잽 날리며…

    한편으로 '거울의 반대면'인 상임위 통합론은 대국민 명분 세우기이자 동시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방망이를 휘두를 수밖에 없는, 아주 유혹적인 유인구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일단 교문위든 환노위든 특정 상임위를 분리하면 물리적으로 상임위 총수가 늘게 된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가장 좋은 것은 상임위 수를 늘리지 않는 것이지만, 도저히 문제가 많다 싶으면 국민의 양해를 받아서 하나 정도는 늘려보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운을 뗐다.

    실착이다.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을 과소평가한 행마다. 연말연초를 떠들썩하게 했던 선거구 재조정 과정에서 농어촌 선거구 문제 때문에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국민들은 의원 정수 증원만큼은 결단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취해왔다.

    상임위 총수를 늘려서 상임위원장을 한 자리 더 만든다고 하면, 당장 국회의원들의 '밥그릇 늘리기'라는 비판 여론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박지원 원내대표는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의원 300명을 국민이 원하기 때문에 증가시키지 않고 (선거구를) 조정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현행 상임위 수를 벗어나지 않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잘 조정하겠다"고 치고나갔다. 졸지에 우상호 원내대표의 모양새만 이상해졌다.

    그런데 상임위 총수를 늘리지 않으면서 교문위 등을 분리하려면 필연적으로 어딘가의 상임위는 없어져야 한다. 운영위와 윤리위, 국방위와 정보위, 안행위와 여가위를 통합하자는 제안은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 ▲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4일 의원회관에서 회동을 갖기에 앞서 서로를 반갑게 끌어안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4일 의원회관에서 회동을 갖기에 앞서 서로를 반갑게 끌어안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정진석 배트 나올 수밖에 없는 유인구 던져졌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생각없이 통합 대상인 상임위가 선정되지는 않은 것 같다. 협상의 다른 쪽 파트너인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의 배트가 반드시 나갈 수밖에 없는, 정교하게 떨어지는 유인구라는 평이 나온다.

    상임위 분배 과정에서 이른바 '젖과 꿀이 흐르는 상임위'라 불리는 곳들이 있다. 국토위·교문위·산자위·복지위가 그것이다. 지역구 관리에도 용이하고 피감기관과 법안 등에 얽힌 이익단체, 이해관계자가 많은 곳들이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 네 곳의 상임위를 가리켜 "의원들 출판기념회하면 잘 되던 곳"이라고 회상했다. 반면 정당 차원에서 확보하지 못해 안달인 법사위는 "가면 (의원 살림이) 적자"라며 "검사가 (후원금을) 내겠느냐, 판사가 (후원금을) 내겠느냐"고 평가절하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19대 국회에서는 이 네 곳의 상임위원장이 하나도 빠짐없이 야당 몫이었다. 여당이라고 바보거나 장님이 아닐진데, 왜 야당에 '젖과 꿀이 흐르는 상임위'를 다 내줬을까.

    여당은 집권당이라는 특성상 위원장을 맡거나 위원이 된다고 해서 딱히 이렇다할 실익은 없지만, 청와대와 정부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반드시 가져와야 하는 상임위들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운영위·외통위·국방위·정보위·예결특위 등이 그것이다. 여당 입장에서 청와대를 소관으로 하는 운영위를 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예산안과 관련한 예결특위를 내줄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외통위·국방위·정보위 등에서는 국가안보와 관련한 정보와 법안들을 다루기 때문에 위원장직을 여당이 지켜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야당도 그걸 알고 억지로 양보하는 척 하면서 쓸데없는 상임위를 패키지로 떠넘긴다. 이를테면 예결특위 위원장을 가져가려면 윤리특위도 덤으로 가져가야 한다. 중요치 않은 상임위들이 대거 여당 몫으로 전락해버린 사연이다.

    ◆손 안에 카드 부족한 정진석, 받아들일 수밖에

    새누리당은 19대 국회 들어서 18대 국회보다 줄어든 10장의 상임위원장 카드로 이곳 저곳을 사수하려다보니 '젖과 꿀이 흐르는 상임위'는 속절없이 다 눈뜨고 야당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20대 국회에 들어와서는 의석이 더 줄어들면서 다시 2장의 상임위원장을 토해내게 됐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손에 들고 있는 상임위원장은 이제 8장 뿐이다. 세계 정상의 포커 플레이어라고 해도 3장의 트럼프 카드만 들고서는 상대를 이길 도리가 없다. 손 안에 카드가 없는데 운영위·국방위·정보위·예결위 등 온갖 상임위를 다 막아낼 방법이 없는 셈이다.

    이런 국면에서 박지원 원내대표가 제안한 운영위와 윤리위, 국방위와 정보위, 안행위와 여가위의 통합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국방위와 정보위가 통합되면 상임위원장 카드 2장을 써서 막아야 할 곳을 1장만 써서 막을 수 있다.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몫이었던 윤리위가 없어지면, 쓸데없는 곳에 카드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이러한 제안의 이면에 어떠한 노림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외견상 새누리당을 편하게 해주는 듯한 이러한 제안을 받기 위해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어떠한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할까.

    누차 "2개의 상임위만 가져가겠다"는 박지원 원내대표는 과연 어떠한 상임위 2개를 가져가려는 것이며, 이를 통해 향후 국회 운영에서 어떠한 모습을 부각시키려는 것일까. 또, 이는 "캐스팅보터가 아닌 리딩 파티, 선도 정당이 되겠다"고 공언하며 정국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박지원 원내대표의 구상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정치권 관계자는 "박지원 대표가 말하는 '거래나 흥정을 하지 않겠다'는 말에는 '소소한'이라는 말이 생략돼 있다고 봐야 한다"며 "소소한 거래나 흥정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그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을 구현하기 위한 과정에서는 당연히 협상력이 발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