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천우희(29)는 수채화 같은 파스텔보다는 본디의 제 빛깔을 내는 강렬한 원색의 매력을 지녔다. 영화 '써니', '한공주', '손님', '뷰티 인사이드', '해어화'… 그리고 '곡성'까지, 매 작품마다 쉽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하며 독보적 존재감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일부러 힘든 역할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왜 이런 길을 가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그만큼 잘 해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욕심을 부렸다면 '한공주' 이후 내가 돋보일 수 있는 작품을 골랐을 것이다."

    6일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천우희는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영화 속 모습과 달리 온화하고 때로는 소녀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인터뷰에 응했다.

    2011년 영화 '써니'로 주목을 받은 천우희는 집단 성폭행 피해 학생의 이야기를 그린 '한공주'에서 섬세한 감정이 돋보이는 열연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을 비롯해 무려 13개의 상을 휩쓸었다. 이에 대해 "상은 연기를 잘 했다고 주는 부적인 것 같다"며 겸손함을 보였다.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사연 많은 역할을 소화한 천우희는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방법이 모두 달랐고,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며 연기파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11일 개봉을 앞둔 영화 '곡성'에서 사건을 목격한 여인 '무명' 역을 맡았다. 사건 현장에 불쑥 나타나 '종구'(곽도원)에게 목격한 내용을 들려주며 홀연히 사라졌다, 한참이 지나서 다시 등장하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무명을 어떻게 연기해 나가냐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어떠한 한 실체처럼 보여야 하는데 그 에너지를 감추고 발산하는 것을 어느 정도 해야할지, 완급 조절이 어려웠다. 차라리 광기를 내보였으면 쉬웠을 수도 있다. 감정을 드러내기 보다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연기에 임했다. 종구와 관객 입장에서는 모호함이 있을텐데, 내 입장에서는 그 모호함을 즐겼다. '무명은 누군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종구의 딸을 살리려는 여자다. 단순하면서도 가장 잘 표현한 답인 것 같다."

  • 영화 '곡성'은 '추격자', '황해'를 통해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아온 나홍진 감독의 6년만의 신작이다. '곡성'은 외지인이 나타난 후 시작된 의문의 사건과 기이한 소문 속 미스터리하게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무엇보다 배우 곽도원, 황정민, 쿠니무라 준, 천우희의 만남, 나홍진 감독과의 새로운 조합으로 강력한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영화가 시나리오대로 잘 나와서 만족스럽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혼람스러움 그 자체였고, 흡인력이 엄청 났다. 첫 느낌이 속된 말로 '쩐다'였다. 단숨에 홀릴 만큼의 강렬함이 좋았다. 음악이 입혀지니 느낌이 풍부하고 상상했던 것 이상이다.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영화가 있다면 '곡성'은 불친절하다. 영화를 본 이후 분명 답답하고 궁금해하는 관객들이 있을 것이다. 공약이요? 영화가 잘 되면 그때 하겠다."

    총 121회차 촬영 중 97회차의 분량이 로케이션으로 진행된 '곡성'은 함양, 철원, 곡성, 구례, 순천, 장성, 해남, 화순, 고창, 장수, 진안 등 전국의 각 지역을 오가는 촬영 끝에 완성될 수 있었다. 특히, 생생한 비주얼과 현장감을 담아내기 위해 실제 영화 설정에 부합한 시간, 흐리거나 비오는 날을 기다려 촬영하는 등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다. CG와 후반작업에 기대기보다 현장에서 대부분의 소품들을 직접 준비해 촬영하는 방식을 택하며 리얼리티에 완벽을 기했다.

    "할리우드에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있다면 한국에는 '곡성'이 있다. '레버넌트'가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영하 30도의 눈밭과 물속에서의 촬영하며 실제와 똑같은 환경을 조성했다고 한다. '곡성'도 자연 그대로를 담았다. 구더기가 나오는 장면은 CG가 아니다. 스태프들과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내 고생은 고생이 아니다. 스태프들은 무거운 촬영 장비를 짊어지고 산길을 오르내리길 반복했는데,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 영화 '곡성'이 제69회 칸 영화제 공식 섹션인 비경쟁부문에 초청됐다. 한국영화로는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이어 두 번째다. 더불어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가 '올드보이', '박쥐'에 이어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칸 영화제의 공식 섹션은 경쟁부문, 비경쟁부문, 비경쟁부문 내의 심야상영인 미드나잇 스크리닝, 주목할 만한 시선, 특별상영, 시네파운데이션, 단편영화 부문으로 나뉜다.

    "칸 영화제의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는데, 기쁘고 설렌다. 분명 우리 영화를 좋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가서 많은 자극을 받고 경험하고 싶다. 한국의 무속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아가씨'와 함께 칸에 가게 돼 좋다. 한국영화가 해외에 많이 소개되길 바란다."

    이날 천우희는 차기작 '마이 엔젤' 촬영을 위해 상큼한 단발머리로 변신해 있었다. 그는 2015년 영화 '손님'부터 최근 개봉작 '해어화'까지 쉴 새 없이 작품을 이어오고 있다. 천우희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주지 못한 영화도 있지만 앞으로 채워나갈 필모그래피가 많기 때문에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는다.

    "개봉이 이어져서 쉬지 않고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지금 개봉한 영화 모두 1~2년 전에 촬영했다. '곡성' 6개월, '해어화'는 10개월이 걸렸다. 그러다 보니 2년이 금방 지나갔다. 한편으로는 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작품이 한정적인 현실에서 계속 불러주셔서 감사하다. 드라마는 항상 할 의향이 있다. 그간의 이미지가 있다보니 밝고 웃긴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