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 경쟁 직전 벌어지는 '의장 선거', 차기 대통령 취임식까지 이어지는 '영예'
  • #.

    9일 여의도 한 고급 중식당에 친박계 의원 40여명이 모였다. 친박 의원들의 모임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다. 해양수산부 장관에서 최근 국회로 돌아온 유기준 의원이 회장이며, 대통령 정무특보를 지낸 윤상현 의원이 간사를 맡고 있다. 이날 현장에는 친박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도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분열 직전의 야당이 워낙 아비규환이라 여당내 주류로 자리 잡은 친박계 의원들의 얼굴에는 웃음꽃만 필줄 알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민생'을 명분으로 국회를 강하게 압박하는 청와대. 다가오는 총선에서 공천을 두고 비박계와 일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 이날 모인 친박계 의원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략'을 짜는데 분주한 모습이었다.

    비박계와 맞붙을 공천권 혈투에 대한 말이 주로 흘러나왔지만, 의외의 또다른 재밌는 얘기도 새어나왔다.

    내년 총선 이후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당 지도부 구성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하반기를 함께 할 국회 원구성에 대한 구상들이다. '형님이 의장 하셔야죠. 그럼 제가 당 대표(선거) 나가보겠습니다'는 식이다. 중진 의원들이 많은 만큼 선거 이후 구상에 대해서도 꽤 심도 있는 말들이 오고갔다는 후문이다.

    여당 관계자는 "그만큼 내년 국회 의사봉의 주인(국회의장)과 당대표의 역할이 크다는 의미 아니겠나"라고 했다.

  • ▲ 20대 전반기 국회의장은 국회 중진의원 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레임덕의 위험성이 잠재된 가운데, 당·청 간 조율을 훌륭히 해낼 적임자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뉴데일리 DB
    ▲ 20대 전반기 국회의장은 국회 중진의원 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레임덕의 위험성이 잠재된 가운데, 당·청 간 조율을 훌륭히 해낼 적임자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뉴데일리 DB

    ◆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그가 가지는 무게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할 20대 전반기 국회의장 자리를 놓고 벌써부터 누가될지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국회선진화법을 앞세운 '무조건적인 합의'만 강요하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몽니에 지난 19대 국회 후반기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던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차기 의장의 향배가 총선결과만큼이나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특히 20대 전반기 국회의장은 후반기와는 달리 무거운 책임만큼이나 영예로운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많다.

    국회의장은 20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는 6월1일을 기점으로 7일 이내에 본회의를 열어 무기명 투표로 선출된다. 전반기-후반기로 국회의장을 뽑기 때문에 전반기 의장의 임기는 2016년 6월부터 2018년 6월까지다.

    때문에 20대 전반기 국회의장은 2018년 2월 국회에서 열릴 새 대통령 취임식을 주최하는 영예를 얻는다. 또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도 3부요인 중 한 명으로서 개막식과 폐막식에 모두 함께한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본인의 임기와 동계 올림픽 일정이 겹침에 따라 개막식 '개회선언'만 하고 폐막식 진행은 차기 대통령에게 넘겨줄 것으로 보인다.

    많은 중진의원이 기왕이면 20대 국회의 '전반기'를 우선 노리는 까닭이다.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이 무게감은 이뿐 아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가 임기 내 계속되면서 국회의장의 정치적 역량에 따라 얼마든 국회의 퍼포먼스가 달라질 수 있다.

    우선, 차기 국회의장은 박근혜 정부의 임기 하반기 국정을 함께 손 맞추게 된다. 박근혜 정부 레임덕 위험성 속에서도 중심을 잡는 노련함이 요구된다.

    아울러 새 정부의 첫 내각 조각 과정에서도 청문회나 장관 임명동의안 등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돌발상황을 컨트롤 하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예컨대 정의화 국회의장이 중요한 고비마다 들고 나온 '여야 합의처리론' 몽니가 그것이다. 실제로 청와대도 정의화 의장에 대해 많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서도 20대 전반기 국회의장에 대해서 세심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일 것으로 관측되는 이유다.

    뿐만아니라 20대 국회에서 개헌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여당은 국회선진화법에 민생법안들이 줄줄이 가로막히면서, 이를 개정할 수 있는 의석수인 180석을 총선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개헌저지선인 200석에 무척 근접 한 숫자로 만일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크게 승리하고 유력 대권주자가 부각되지 않는다면 내각제를 염두에 둔 개헌론이 되살아날 가능성도 있다.

    개헌특위 등이 구성된다면 개헌론을 이끌 국회의장의 역할과 권능, 정치적 비중은 대한민국 역대 최고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 ▲ 20대 전반기 국회의장 자리를 두고 벌써부터 하마평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 중 새누리당 정갑윤 국회부의장이 차기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20대 전반기 국회의장 자리를 두고 벌써부터 하마평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 중 새누리당 정갑윤 국회부의장이 차기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친박-비박, 치열한 머리싸움… 왕관을 얹을 자 누구?

    과연 '왕관의 무게'를 견뎌내고 국회의장으로서 존재감을 뽐낼 중진의원으로는 누가 있을까.

    선수별로 8선에 도전하는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 7선에 도전하는 이인제 최고위원, 6선에 나서는 황우여 교육부총리 등이 후보군에 거론된다. 비박계 쪽에는 내년에 다시 당선되면 6선이 되는 이재오 의원이 있다.

    ① 친박 유력 후보 서청원

    선수에서 가장 앞서는 서청원 최고위원은 '친박 좌장'으로 불리며 박 대통령과 가깝다는 점이 강점이다. 본인의 의지도 가장 강하다. 서청원 최고위원 측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지난해 김무성 대표와의 당권 경쟁에서 밀려난 이후 다시 당대표 선거에 나오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서청원 의장론에 힘을 싣는다.

    김무성 대표와의 경쟁에서 밀린 점이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노쇠했다'는 일각의 평가는 박근혜 정부 국정 하반기를 함께 할 파트너로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강력한 리더십과 국회의 협조를 이끌어 내야 하는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서 최고위원에게 여전히 '당권'에 대한 미련이 있다는 것도 변수다. 하반기 의장을 역임하는 것으로 계획을 미루고 전당대회에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회의장 투표는 20대 국회가 시작되는 6월 초순 이뤄질 전망이며, 김무성 대표의 임기는 내년 7월까지다. 다만 새누리당이 당헌당규로 정하는 대권 도전을 위한 당대표 사퇴 시점은 내년 6월 20일이기 때문에 당대표 선거가 의장 투표 직후에 이뤄질 공산도 크다.

  • ▲ 20대 전반기 국회의장 자리를 두고 벌써부터 하마평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 중 새누리당 정갑윤 국회부의장이 차기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② 다소 세 약한 이인제, 공천 확보가 더 급한 황우여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의 경우는 이미 대권후보를 해봤고 자기 정치를 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작용한다. 이인제 최고위원을 지지하는 당내 세력이 약한 것도 가장 큰 약점이다. 최근 다소 무뎌지긴 했으나 무엇보다 이 최고위원이 여전히 대권에 방점을 찍는다는 부분은 의장 출마의 걸림돌이다.

    황우여 의원은 교육부총리 역할을 수행하면서 보여준 미지근한 태도가 박근혜 대통령의 '실망'으로 이어졌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는 '국정교과서' 정국에서 조차 머뭇거리는 모습으로 현 정권에 큰 실망을 안겼다는 지적이다. 이런 평가 속에서 나오는 인천 연수 공천 불가론(황우여 지역구)은 황 부총리가 국회의장 꿈을 꾸는데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과제다.

    ③ 이재오? 비박은 당권 확보에 주력할 듯

    비박계 최다 선수가 예상되는 이재오 의원은 특유의 돌출 행동이 비박계 조차 부담스러워 한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차기 대권을 노리는 김무성 대표와 비박계 입장에서는 당권 확보가 최우선 목표"라며 "국회의장 자리를 친박에 양보하고 자연스럽게 당권을 가져오는 전략을 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재오 의원이 평소 주창하는 적극적인 개헌론도 여권 내에서는 불편한 문제다. 특히 여당 최고중진연석회의 등에서 보여준 이 의원의 직접적인 화법은 '개헌'을 위한 여론전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 ▲ 정갑윤 국회부의장은 탄탄한 지역구를 바탕으로 박 대통령과 두터운 신뢰를 얻은 점이 강점이다. 김무성 대표에게도 나쁘지 않은 카드로 제시되면서 유력한 후보군으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정갑윤 국회부의장은 탄탄한 지역구를 바탕으로 박 대통령과 두터운 신뢰를 얻은 점이 강점이다. 김무성 대표에게도 나쁘지 않은 카드로 제시되면서 유력한 후보군으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④ 5선 대세론, 정갑윤

    선수에서는 밀리지만, 정갑윤 국회부의장도 유력한 후보로 급부상 하고 있다. 탄탄한 지역구를 바탕으로 야당세가 강한 울산 중구(정갑윤 지역구)에서 일어나는 '와룡 승천'에 대한 기대감도 들려온다.

    국회 예결특위 위원장과 국회 부의장 등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은 경력과 박근혜 대통령의 두터운 신뢰가 가장 큰 장점이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시절 빚어진 국회법 개정안 파문 당시 정 부의장이 사태수습 선봉에 나서면서 얻은 박 대통령의 '신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울산에 방문할 때에 일부러 일정과 동선을 바꿔 정갑윤 부의장의 지역구를 들러 함께 동행한 적도 있다. 대구를 방문했을 때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동행을 엄격하게 금했던 전례로 비춰보면 각별히 챙긴 행보다.

    대표적인 친박계 서청원 최고위원이나 황우여 부총리가 아닌 정갑윤이라는 카드는 당권을 원하는 비박계나 대권을 노리는 김무성 대표도 부담스럽지 않은 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