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문재인은 적지출마 대상 아냐… 원내 재진입 레드카펫 깔아줘
  • ▲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100일 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23일 11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혁신안에는 정세균·김한길·안철수 전 대표 등 잠재적으로 문재인 대표의 당권에 맞설 수 있는 인사들의 적지 출마를 강요하고, 문재인 대표의 20대 총선 원내 재진입은 용이하게 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어 당이 격랑 속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된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100일 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23일 11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혁신안에는 정세균·김한길·안철수 전 대표 등 잠재적으로 문재인 대표의 당권에 맞설 수 있는 인사들의 적지 출마를 강요하고, 문재인 대표의 20대 총선 원내 재진입은 용이하게 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어 당이 격랑 속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된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23일 마무리 기자회견을 하며 발표한 마지막 11차 혁신안이 오롯이 '문재인을 위한 혁신안'으로 구성돼 당내에 격랑이 일 조짐이 보인다.

    김상곤 혁신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세균·이해찬·문희상·김한길·안철수 전 대표의 적지 출마 △하급심 유죄 판결자 공천 대상 제외 △조경태 의원 당적 박탈 등 조치 △문재인 대표 총선서 부산 출마 등을 내용으로 하는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 중 전(前) 대표의 적지 출마 요구는 경우에 따라 불출마·정계 은퇴 요구로 번질 가능성도 엿보인다. 구체적인 실례로, 이날 기자회견에서 실명이 거론된 정세균 전 대표는 전북 무주·진안·장수에서 4선을 한 뒤 '적지 출마' 요구에 따라 19대 총선에서 지역구를 이미 서울 종로로 옮겼다.

    다시 어떻게 적지에 출마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열세 지역에 출마하라는 하나만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당의 전략적인 결정에 따라 본인들이 앞서서 희생 정신으로 판단해주면 고맙겠다"고 밝혀, 사실상 용퇴 요구를 포함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정채웅·임미애 혁신위 대변인도 '당의 전략적인 결정'에 '불출마 요구'가 포함돼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어떠한 결정을 (당이) 내리든 승복해달라는 취지"라고,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반면 문재인 대표의 총선 부산 출마 요구의 기준은 한없이 너그러웠다. 문재인 대표는 지난해 12월 29일, 2·8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며 20대 총선에 불출마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이후 지역구인 부산 사상을 같은 당의 비례대표인 배재정 의원에게 사실상 넘겨주기도 했다.

    이에 따라 문재인 대표를 향한 20대 총선 출마 요구가 부산의 다른 열세 지역에 출마하라는 의미냐는 취재진의 질문이 제기되자, 정채웅·임미애 대변인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대로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에 출마하라는 의미다. 문재인 대표만 적지 출마 대상으로부터 비켜나간 셈이다.

    누가 보더라도 '문재인만을 위한 혁신안'인 것이 분명해 보이자, 한 취재진은 "혹시 (혁신안을 만들 때) 지도부와 교감이 있었느냐"라고 묻기도 했다. 이에 정채웅·임미애 대변인은 "전혀 없다"며 "지도부와 소통해서 혁신안을 만든 적은 없다"고 단호히 부정했다.

  • ▲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23일 발표한 11차 혁신안에 의해 적지 출마 또는 용퇴 대상자로 지목된 정세균 전 대표. 사진 왼쪽으로 원래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 출마를 요청받은 문재인 대표의 모습이 보인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23일 발표한 11차 혁신안에 의해 적지 출마 또는 용퇴 대상자로 지목된 정세균 전 대표. 사진 왼쪽으로 원래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 출마를 요청받은 문재인 대표의 모습이 보인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지도부와 교감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문재인 대표의 뜻을 알아서 헤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편파적인 혁신안이라는 지적이다. 마치 춘추시대에 손을 높이 들고 낮게 드는 손짓만으로 한 쪽에 유리한 편파 증언이 나오게끔 유도한 상하기수(上下其手)의 사례가 떠오른다는 지적이다.

    혁신안을 뜯어보면 당내에서 문재인 대표와 각을 세우거나 잠재적으로 당권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정적들은 모두 적지출마·공천배제·당적박탈 대상으로 전락했고, 정작 문재인 대표는 불출마 선언을 뒤엎고 자신의 지역구에서 재출마해 20대 국회 원내 진입이 용이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당장 문재인 대표는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낸 반면 이날 혁신안에서 이름이 거론된 다른 인사들은 한결같이 불쾌하다는 반응을 드러냈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혁신안 발표 이후 의원회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지금까지 내가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경합 지역들에서 선거를 돕는 게 총선 승리를 위해서 도움 되는 일이라고 판단했는데, 혁신위 안대로 다른 선택을 하는 게 더 도움이 될지 심사숙고하겠다"며 "나는 대표인만큼 솔선수범할 위치에 있다"고,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반면 안철수 전 대표는 "정치인은 지역구민과의 약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노원병은 서민·중산층이 아주 많이 모여서 사는 곳이고 나는 그분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드리겠다고 약속을 드렸다"고, 혁신위의 적지 출마 제안을 일축했다.

    하급심 유죄 판결자 공천 심사 배제 조항이 발동될 경우 적용 대상이 되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혁신안 발표 직후 취재진에 문자메시지를 통해 "검찰에 우리 당의 공천권을 맡겨서는 안 된다"며 "(무죄 추정의 원칙을 규정한) 헌법 정신에도 어긋난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혁신위에 의해 '강력한 조치'의 대상으로 실명을 거론당한 조경태 의원은 "당을 찢어놓고 분열시키는 혁신위원들이야말로 해당행위자"라며 "이게 무슨 민주정당인가"라고 반박했다.

    이날 〈뉴데일리〉와 통화를 한 새정치연합 의원 및 관계자들도 혁신안의 내용에 대해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 ▲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23일 발표한 11차 혁신안에 의하면 공천 심사 자체가 배제되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적지 출마 또는 용퇴 대상자로 지목된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23일 발표한 11차 혁신안에 의하면 공천 심사 자체가 배제되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적지 출마 또는 용퇴 대상자로 지목된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전 대표들을 향해 적지 출마 또는 용퇴를 요구한 것에 대해 호남권 재선 A 의원은 "전직 대표 중에서 지금 편한 선거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라며 "지금 있는 곳 자체가 적지 아니냐"고 반문했다.

    호남권의 다른 재선 B 의원도 "충격적인 이벤트적 조치보다는 당원들과 국민들이 판단하고 결정하도록 하는 게 호흡을 길게 할 수 있는 진정한 혁신"이라며 "인위적인 조치는 민주정당으로 가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꾸짖었다.

    전날 탈당을 단행한 박주선 의원은 "문재인 대표와 대립각을 세울 수도 있고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다 나가버리라는 것"이라며 "문재인 대표에게 고언을 했거나 경쟁이 가능한 분들을 제거하는 내심의 의사가 포함된 사이비 혁신"이라고 꼬집었다.

    하급심 유죄 판결자를 공천에서 배제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A 의원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는데 위헌적 요소가 아니냐"며 "위법 그 자체"라고 성토했다.

    B 의원도 "정상적이고 원칙적인 방향에서 (공천 심사가) 운영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라며 "무죄 추정의 원칙도 있는데, 적어도 당내에서 민주적인 운영 원칙에는 배치가 되는 것이고 공감을 받을만한 일이 아닌 것 같다"고 비판했다.

    박주선 의원은 "혁신도 헌법과 법률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며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나라에서는 기소가 됐더라도 확정 판결로 무죄가 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나는 세 번 구속됐지만 세 번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공천관리위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공천 심사를 허용하는 예외 조항을 향해서도 "정치 탄압 받는 사람은 친노고, 나머지 희생이 되는 사람은 비노로 하기 위한 것"이라며 "비노는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고 다른 친노들은 순전히 편향적인 검찰 수사의 결과고 정치 탄압이라고 하면 국민이 웃을 소리인데, 역시 친노당답다"라고 조소했다.

    조경태 의원에게 당적 박탈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혁신위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 ▲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23일 11차 혁신안을 발표하면서 당적 박탈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 조경태 의원이 지난 16일 중앙위 회의의 비공개 전환에 앞서 자리에서 손을 들고 일어나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23일 11차 혁신안을 발표하면서 당적 박탈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 조경태 의원이 지난 16일 중앙위 회의의 비공개 전환에 앞서 자리에서 손을 들고 일어나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A 의원은 "조경태 같은 사람도 당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그 사람이야말로 적지에서 계속 출마해 온 사람"이라고 혀를 찼다.

    B 의원도 "조경태 의원을 해당행위라고 규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한 취지에서 쓴소리를 한 것인데, 해당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박주선 의원은 "이 당이 잘 돼가고 지도부가 잘한다면 조경태 의원이 왜 그런 말을 했겠느냐"며 "혁신위원장이 저런 말을 했다는 게 내 귀가 의심스럽고, 해당행위는 혁신을 제대로 못한 혁신위원들이 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도 "바른 말을 했다고 내보내라는 것은 독재적 발상"이라며 "당이 무슨 공산당이 된 것인지, 그야말로 유신 때 했던 짓이랑 똑같다"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으로 지난 6월 12일 출범한 혁신위의 100일 간의 활동이 마감된 가운데, 〈뉴데일리〉와 통화한 새정치연합 의원 및 관계자들은 혁신위 활동에 대한 극도의 실망감을 피력했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김상곤 혁신위는 내가 당 생활 20년을 하면서 지켜본 각종 혁신위 중에 사상 최악의 혁신위"라며 "실제로 국민과 당원이 요구하는 혁신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고, 권력의 눈치만 보며 실상 친노들이 주장한 것만 다 관철시켰다"고 비판했다.

    A 의원은 조국 혁신위원이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표의 백의종군을 요구했던 것을 가리켜 "그래도 마지막에는 문재인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는 말도 넣을 줄 알았는데…"라고 개탄했다.

    이어 "(혁신안은) '다 나가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며 "당이 이렇게 되면 깨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