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원전은 미래부·한국원자력연구원…국내 대형 원전은 산자부·한전·한수원이 담당
  • ‘스마트 원자로’는 분명 대형 원자로에 비해서는 생산성이 낮다. 특히 인구 밀도가 높은 한국이나 일본, 유럽 국가들과 같은 곳에서는 대형 원자로 하나를 짓는 것이 소형 원자로 여러 개를 짓는 것보다 관리하기도 훨씬 쉽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한국, 일본, 유럽과 같은 나라만 있는 게 아니다. 선진국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미국만 봐도 일부 대도심 지역을 제외하면 상당 부분의 국토가 텅 비어 있다. 이로 인해 전력망도 설치되지 않은 지역이 많다. 스마트 원자로가 한국의 ‘미래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SMR 개발에 집중하는 세계 강대국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세계 강대국들은 ‘소형 모듈형 원전(SMR)’을 개발하는 데 상당한 자원을 쏟아 붓고 있다. 일단 겉으로는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부 부처와 정부 연구소들이 지원하고, 필요하다면 정보기관들까지 관련 내용을 수집해 제공한다.

    현재 SMR 개발에 많은 노력을 들이는 나라로는 미국과 러시아, 일본, 중국 등이 있다.

  • ▲ 세계 강대국들이 개발 중인 SMR의 모습. ⓒ美와인버그 재단 홈페이지 캡쳐
    ▲ 세계 강대국들이 개발 중인 SMR의 모습. ⓒ美와인버그 재단 홈페이지 캡쳐


    미국은 빌 게이츠의 ‘테라파워’와 美에너지부가 ‘밥콕 앤 윌콕스’라는 기업을 지원하는 식으로 SMR 개발을 하고 있다. ‘밥콕 앤 윌콕스’는 한국도 시도하고 있는 ‘소듐 고속냉각로’를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업체다.

    빌 게이츠의 ‘테라파워’는 한국 원자력연구원과 함께 ‘소듐 고속냉각로’를 개발하겠다고 밝혀, 국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2014년 8월 ‘테라파워’는 한국 원자력연구원과의 ‘소듐 고속냉각로’ 공동개발 계획을 백지화했다. 한국 측이 원자로 개발 및 설계비용뿐만 아니라 건설비용도 공동부담하자고 제안한 것이 이유라고 했다.

    ‘테라파워’와 한국 원자력연구원의 공동개발이 백지화되기 전, 美소형원전개발업체인 ‘밥콕 앤 윌콕스’와 美에너지부는 “현재 상황대로라면, 향후 최소 3,000억 달러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보이는 소형모듈원전 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하며, 오바마 행정부에 관심을 요구한 바 있다.

    미국이 SMR에 관심을 갖는 것은 사고 위험이 매우 적은 데다 크기도 적고 유지관리에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아, 내륙의 소규모 도시 지역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인구밀도가 낮은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전력망을 유지하고 전력을 공급하는 데 기존의 발전소보다는 SMR이 훨씬 더 적합하다.

    여기다 전통적인 원전 강국인 미국은 SMR을 제공하면, 개발도상국과 산유국들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막으면서도, 원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도 상당한 매력을 느끼고 있다.

    한편 일본은 美웨스팅하우스의 원전 분야를 인수한 도시바를 중심으로, SMR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에서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원전 개발에 대한 반발이 심했지만, “사고가 날 염려가 없는” SMR의 특성 때문에 소형원전 개발 및 수출에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러시아는 한국의 스마트 원자로 개발에 도움을 준 OKBM을 비롯해, 원자력 잠수함용 소형 원전을 만들던 기업들이 주축이 되어 SMR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35MWe 짜리 KLT-40S, 300MWe 짜리 VK-300, BREST 300 등이 관련 모델이다.

    여기에 프랑스 등 유럽국가로부터 원자로 기술을 전수받은 아르헨티나와 이스라엘과 함께 원자로 기술을 수십 년 동안 개발한 남아공도 SMR 개발 및 수출을 위해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인도는 핵물리학자 호미 바바 박사의 지휘 아래 토륨 원전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 ▲ 토륨 원전의 구조와 원리를 간략하게 그린 그림 ⓒ에너지 프롬 토륨 닷컴 캡쳐
    ▲ 토륨 원전의 구조와 원리를 간략하게 그린 그림 ⓒ에너지 프롬 토륨 닷컴 캡쳐


    이뿐만이 아니다. SMR 개발을 위한 강대국 간의 합종연횡도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는 물론 일본과도 함께 SMR 개발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쏟고 있다.

    중국 또한 SMR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의 미래 발전망 전략에 따라 NHR-200, HTR-PM 등의 SMR을 개발하고 있다.

    中공산당은 세계적인 탄소 배출량 저감 압력과 에너지 부족 위기론이 대두됨에 따라 새로운 에너지 공급원으로 원전을 선택, 2050년까지 200여 개의 원전 단지를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2011년 3월 日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터진 뒤 자국 내에서도 원전 반대론이 일기 시작하자, 계획을 대폭 축소, 2020년까지 40여 개의 원전을 짓기로 했다. 中공산당은 지금도 27개의 원전을 동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건설 중이다.

    中공산당에게 SMR 개발은 ‘체제 생존’과 맞물려 있는 목표다. 현재 건설 중인 원전들은 동해안 지역에 있는 대도시에 전력을 공급할 발전소다. 반면 많은 물이 필요없는 SMR은 서쪽 내륙 지역을 개발하는 데 매우 적합한 발전소다. 즉 SMR을 개발하게 되면, 中공산당은 서쪽 내륙 지역을 중심으로 건설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SMR 구매에 관심 가지는 나라들


    강대국들은 자신들이 직접 사용하고 수출하기 위해 SMR을 개발하고 있다. 직접 개발이 어려운 나라들의 경우에는 강대국들이 하루 빨리 SMR을 개발해 자신들에게 수출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 즉 마그렙 지역 국가들의 경우, 발전소 기능은 물론 담수화 설비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SMR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2,000년 넘게 유목민으로 살아온 자국민의 성향 때문에 대도시 건설이 어려운 마그렙 지역 국가들은 국민들을 바꿀 수 없다면, 국민들에 맞춰 국가를 개발하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발전 용량은 100~300MWe로 작지만, 인구 5~10만 명 내외의 중소도시를 운영하고, 여기에 담수를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SMR은 매우 매력적인 발전소다.

    이스라엘이나 레바논, 팔레스티나, 이집트와 같은 곳에서 SMR은 황무지 지역을 녹지로 전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 시나이 반도와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가져오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와 폴리네시아 같은 태평양 섬나라들에도 SMR은 매우 매력적인 발전소다. 주변에는 바닷물이 넘쳐나지만, 산림 훼손과 기후변화로 인한 물 부족은 태평양 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게다가 섬나라들은 특성상 도시의 규모가 작다. 여기에 수십억 달러를 들여 대형 화력발전소나 댐을 지을 수는 없는 일. 따라서 담수화와 전력 공급용으로 특화할 수 있는 SMR은 섬나라들의 국가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 ▲ 중국의 원전건설 관련 보도. 中공산당에게 원전 건설을 체제유지에 필수적인 요소다. ⓒ英에너지 투 블로그 화면캡쳐
    ▲ 중국의 원전건설 관련 보도. 中공산당에게 원전 건설을 체제유지에 필수적인 요소다. ⓒ英에너지 투 블로그 화면캡쳐


    브라질과 남미 국가들 또한 SMR을 사용하기에 좋은 지역이다. 지구의 폐 역할을 하는 아마존과 주변 열대 우림지역의 보호가 필요한 상황에서 밀림 속의 산간오지와 해안의 황무지에서 SMR을 이용하면 개발계획을 실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SMR은 심지어 남극과 북극 인접 지역에서도 상당히 쓸모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시설을 다 집어넣은 원전 크기가 5층짜리 소형 아파트 크기인데다 생산 전력은 100~300MWe이니 극지방에서의 연구 및 자원개발 등에도 쓰일 수 있다.

     

    SMR과 경쟁하는 한국의 ‘스마트 원자로’, 문제는?


    SMR은 이처럼 지구상 곳곳에서 사용하기 좋은 원자로다. 모든 시설을 집어넣고도 작은 크기에 방사성 폐기물도 기존 대형 원전에 비해 극히 적게 나오는 데다 핵연료 재처리를 해도 무기용 핵물질을 만들 수가 없다. 여기다 원자로에 문제가 생겨도 원자로 노심이 스스로 꺼지도록 개발 중이어서 사고 위험과 방사능 유출 위험도 극히 적다.

    물론 SMR은 인도가 개발 중인 ‘토륨 원전’ 등에 비해 단점이 많다는 지적들도 있다. 하지만 ‘토륨 원전’은 아직 실용화도 되어 있지 않은 등 갈 길이 먼 반면, SMR은 지원을 많이 하면 개발완료 시기가 더 앞당겨질 수 있다.

    SMR을 개발하는 세계 강대국들이 ‘토륨 원전’보다 더 경계하는 소형 원전은 바로 한국의 ‘스마트 원자로’다.

    SMR만큼이나 작은 크기는 기본이고, 원전 용기 내에 모든 시스템을 집어넣어 사고 발생 시에 스스로 냉각이 되고, 수소폭발이나 방사능 유출 위험이 거의 없는 등 SMR과 같은 장점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이미 개발이 완료된 상태라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 방문 당시 한국의 ‘스마트 원자로’를 구매하겠다고 나선 이유도 이런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장점을 가진 ‘스마트 원자로’가 한국에서는 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국내에서 원전 건설을 담당하는 부처와 기관’에서는 검토한 적도 없다고 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스마트 원자로의 사우디아라비아 수출을 맡고 있는 특수법인(SPC) ‘스마트 파워’,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들과의 통화를 통해 ‘스마트 원자로’를 한국에도 건설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미래부가 주도하고 있는 ‘스마트 원자로’ 관계자들은 “제주도와 같은 섬에 사고 위험이 적은 스마트 원자로를 건설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반면 산업통상자원부와 그 관리감독을 받는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스마트 원자로를 한국 내에 건설하는 계획은 검토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유는 이랬다. 미래부가 주도하는 ‘스마트 원자로’의 수출 및 건설은 ‘해외’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국내에서 원자로 건설과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 공급을 맡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국토가 좁고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에 걸맞는 대형 원전 건설만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담당 부처가 다르고, 산하 기관들이 다를 경우 ‘훌륭한 기술제품’을 생산했다 해도 ‘상급기관’의 특별한 지시가 없으면, 이를 자발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정부 부처들의 무관심과 관료주의 때문에 ‘인내심’이 극에 다다른 사람들은 ‘스마트 원자로’ 생산 및 판매에 힘을 보탠 중견기업 관계자들이었다.

    ‘스마트 파워’ 관계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의 수출 직전 단계인 ‘PPE’가 곧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사가 나간 뒤 ‘스마트 파워’에 참여하는 기업체 관계자는 “혹시 언제쯤 PPE가 시작된다는 말은 없더냐”고 되물어왔다.

    이런 반응은 현재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들은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 ‘스마트 원자로’ 수출 계약을 맺은 것을 홍보하는 데만 여념이 없었지 이후 수출을 위한 실질적인 작업은 모두 특수목적법인에게만 맡긴 채 이들을 지원하는 데는 별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었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진행했던 ‘자원외교’에 대해 ‘철저한 감사와 수사’를 하고 있다. 당시 상황을 취재할 때 관련 부처와 실제 일을 했던 기업들 간에는 여러 가지 목소리들이 나왔었다. 특히 기업들에서는 “정부 부처는 대통령이 이뤄낸 성과를 가져다 보도자료를 뿌리며 변죽만 올렸지, 실제 기업들이 현지에서 자원개발을 하는 데는 별 다른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지적들이 많이 나왔었다.

    혹시 ‘스마트 원자로’도 이명박 정부의 자원개발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 ▲ 과학예술가들이 그린 화성의 '테라포밍(지구화)' 장면. 우주개발에서 SMR은 필수적인 요소다. ⓒ美디바이언트 아트넷 캡쳐
    ▲ 과학예술가들이 그린 화성의 '테라포밍(지구화)' 장면. 우주개발에서 SMR은 필수적인 요소다. ⓒ美디바이언트 아트넷 캡쳐


    ‘스마트 원자로’의 기술이 현실이 되기까지,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하기까지는 한국 원자력연구원 관계자들의 노력과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의 전폭적 지원, 이를 수출하겠다고 발 벗고 나선 중견기업 관계자들의 결단이 있었다.

    이런 많은 노력이 들어간 ‘스마트 원자로’가 정부 부처들의 관료주의와 무관심 때문에 다음 정권에서 ‘자원외교 비리’처럼 취급이 된다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원자로 수출과 건설에는 최소한 10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떠올렸을 때 현재 관련 부처의 모습은 ‘스마트 원자로’ 수출은 물론 엄청난 규모로 성장할 미래 에너지 시장 선점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美에너지부가 향후 전 세계적으로 3,000억 달러 이상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내다봤던 SMR 시장에서, 가장 빨리 실용화한 기술과 제품을 제대로 판매, 건설하지 못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간 ‘스마트 원자로’는 결국 미래 에너지 시장에서 도태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