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확한 보도, 부실한 정부 대응, 정치인 자극적 언행이 공포심 유발
  • ▲ 메르스 확진자 대규모 발생으로 부분 폐쇄된 삼성서울병원의 모습.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메르스 확진자 대규모 발생으로 부분 폐쇄된 삼성서울병원의 모습.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정부의 부실한 대응과 언론의 부정확한 보도가, 국민들을 메르스의 진실에서 눈멀게 했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위험을 과장하여 사회 혼란을 조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의 행태가 국민들에게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더 큰 폐해를 끼치고 있는 것 같다.

       - OO대병원 A교수

    지난 한 달간 전국을 공포에 몰아넣은 중동호흡기증후근(MERS, 메르스)이 조금 진정기미를 보이면서 보건당국과 의료진들이 한숨을 돌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트위터를 비롯한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메르스를 둘러싼 각종 괴담과 루머가 무차별적으로 퍼지고 있다.

    특히 최근 인터넷에서는, 메르스 확산을 계기로 현 정부의 실정과 무능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댓글들이 유독 늘고 있다. 반면 ‘과잉대응’을 강조하면서 메르스 구원자를 자처하고 나선 박원순 시장을 비롯한 일부 좌파 정치인들은 영웅과 같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가지 긍정적인 변화는 괴담과 루머가 확산되면서, 여기에 반발하는 양심있는 지식인들의 쓴소리도 조금씩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인터넷에서는 “치사율 40% 메르스를 지사율 0.2%에 불과한 신종플루와 비교할거면, 아예 교통사고와 비교를 하라”든가, “전문가니 교수니 내세워 정부의 실정을 어물쩍 덮지 말라”는 게시글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지만, 무책임한 루머 확산을 비판하는 일부 누리꾼들이 전문가들의 직언을 SNS 등에 올리면서, 작지만 의미 있는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문가들이 하나 같이 지적하는 것은 메르스 바이러스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험보다, 메르스에 대한 국민들의 막연한 공포가 더 큰 해약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은 메르스 공포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정부의 부실한 초기 대응과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행태, 일부 정치인의 자극적인 언행 등 세 가지를 꼽았다.

    취재 중에 만난 서울 대원병원 내과학교실 A교수는, “정부의 부실한 대응과 언론의 부정확한 보도가, 국민들을 메르스의 진실에서 눈멀게 했다”고 진단했다.

    예방의학 전문가인 A교수는 “메르스 바이러스의 위험을 과장해 사회 혼란을 조장하고 있는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의 행태가, 국민들에게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더 큰 폐해를 끼치고 있는 것 같다”며, “건강을 위협하는 이슈에 대해 국민들의 불필요한 공포심을 자극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본지는 메르스를 둘러싼 국민들의 지나친 불안을 해소하고, 신종 전염병 메르스에 관한 진실을 바로 알리기 위해, 국내 최고의 예방의학전문가 중 한 사람인 A교수의 인터뷰 전문을 싣는다.

  • ▲ 메르스 확산 소식을 다룬 기사들. ⓒ네이버 화면 캡처
    ▲ 메르스 확산 소식을 다룬 기사들. ⓒ네이버 화면 캡처


    메르스 확산세는 진정기미를 보이지만, 국민들의 불안감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메르스 문제를 대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어떻게 보는가?

    사람들은 자신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위기에 대해서는 무감각하지만, 잘 모르거나, 불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위기에 대해서는 실제보다 훨씬 과장된 공포심을 갖는다.

    아직 메르스의 특성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 이유에서 국민들이 공포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불확실하고, 잘 모른다는 이유로 메르스의 실질적인 위험보다 더욱 큰 공포에 휩싸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메르스의 실질적인 위험이 걱정하는 것보다 높지 않다는 말인가? 아직 메르스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지 않은가?

    메르스가 어떤 병인지지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은 건 맞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어떤 실질적인 위험이 있는지 정확하게 분석되지 않은 것이지,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런 곳에서는 어느 정도 자료가 정리된 것으로 안다.

    그런 자료들을 다 빼고, 지금까지 메르스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온 상황만을 단순 비교해봐도, 1일 평균 5,000명이 감염되고 5명이 사망한 신종플루와, 1일 평균 100명이 감염되고 6~7명이 사망하고 있는 결핵에 비해, 메르스가 더 위험하다고 볼 수는 없다.

    메르스의 치사율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그러나 매년 2천명이 넘는 사망자를 기록하는 결핵과 비교할 때, 그 위험성이 더 높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신종플루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젊은 사람들과 학생들이 많이 죽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메르스와 신종플루, 결핵을 비교하면서 이런 의견을 여러 차례 냈는데도, 공포에 휩싸인 대다수의 국민들이 “결핵과 신종플루는 치료제가 있지만, 메르스는 치료제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마녀사냥식 비난을 퍼붓는다.

    사실 신종플루 치료제로 알려진 타미플루를 추적해보니, 실제 큰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나왔다.

    결핵도 몇 가지 약을 섞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 딱히 치료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치료제가 없다고 해서 치료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종플루나 결핵과 같이 메르스도 치료제가 없지만 완치자들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람들이 공포심을 갖는 이유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지금 상황은 메르스의 실질적인 위험성보다 사람들 심리 속의 ‘공포 바이러스’가 더 큰 위력을 떨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언론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메르스와 관련된 자극적인 보도를 내보내며, 적극적으로 ‘메르스 공포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있다.

    WHO에서 아무리 공기 전염 안 된다고 발표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사실 전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말을 믿고 맡겨야 한다. 그런데 국민들의 비난여론이 워낙 거세다보니 전문가들이 다 숨어버렸다.

    정부의 초기 대응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국민들 불안하지 않게, 차분히 잘 대응을 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정부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메르스 2차 확산 논란과 관련돼, 삼성서울병원이 부분 폐쇄됐다. 병원이 폐쇄되면서 암 환자와 장기 이식 환자 등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중증환자들이 위험에 빠졌다는 지적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도 병원에 속한 사람으로 뭐라 말하기 참 조심스럽다. 그런데 삼성서울병원 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000병원도 환자가 대폭 줄었다.

    문제는 가령 암에 걸린 환자를 예로 들었을 때, 항암제를 맞으면서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메르스 때문에 항암제를 맞으러 오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제대로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이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메르스를 통해 입는 손해보다 더 큰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에 대해 지적하셨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달라.

    언론에는 소위 말하는 재난보도지침이라는 것이 있다. 재난을 어떤 태도로, 어떻게 국민들에게 전달한 것인가를 정한 것이다.

    국가가 메르스 사태를 재난으로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국민들의 공포심을 본다면 심리적 재난상태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의 공포심이 높아지면서 심리적 재난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에, 언론은 재난보도지침에 따라 과장된 표현을 지양하는 보도를 해야 한다.

    그런데 모 언론에서 ‘뚫렸다’ 이런 표현을 쓰며 자극적인 보도를 하는 것을 봤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유해한 바이러스가 병원을 가득채운 것도 아닌데, 그런 자극적인 말들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공중보건에 대한 보도는 국민들 심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에 무엇보다 신중을 가해야 한다. 지금 흑사병이 도는 게 아닌데, 마치 흑사병이 도는 것처럼 보도하니 심각한 문제다.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만 위험하다고 했는데, 건강한 사람도 숨졌다. 예상에서 빗나간 것 아닌가?

    의료 정보 해석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똑같은 자료를 가지고도 어떻게 해석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문제로 인식된다.

    예를 들어 말기 암 환자의 생존기간이 10주라고 가정할 때, 10주보다 더 오래 살거나 더 빨리 숨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자기 가족이 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가령 8주 만에 사망했다고 의사를 비난하고, 오진을 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절대 오진이 아니다.

    사람의 몸은 기계가 아니다. 개인차이가 있다. 전문가들이나 WHO에서 발표하는 보편적인 정보를 믿어야한다.


    그래도 예외적인 사항, 가령 ‘잠복기가 14일이 아니다’, ‘젊은 사람도 위험하다’ 그런 말들이 나오니, 국민들의 불안이 더 크다.

    앞서 말했듯 개인차라는 게 있다. 젊은 사람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게 아니다. 보편적인 사실에는 분명 개인차나 예외적인 변수에 의해 젊은 사람이 숨질 수 있다는 점도 포함돼 있다.

    예외적인 사항이 하나 나왔다고 해서, 보편적인 사실을 무시해도 되는가?

    그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한 논리가 지배를 하고 있다. 메르스에 대한 보편적 사실들이 다 틀린 것처럼 여겨지는 이상한 상황이 됐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의료 정보라는 게 공장에서 기계 찍듯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몸은 어떤 기계보다 정교하고 복잡하다. 굉장히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 국민들이 예외적인 변수 하나를 놓고, 보편적인 자료 전부를 불신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전문가들을 믿고 잘 따라 주셨으면 좋겠다. 더불어 언론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이슈에 대해 불필요한 공포심을 자극하지 말아주길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