毛澤東이 두려워한 李承晩
중국 정부, "미국의 약점을 철저히 이해하는 李承晩을 견제하기 위하여 미국과 협력해야"
趙甲濟
1953년 6월18일 李承晩 대통령은 유엔군이 관리하던 포로수용소의 문을 열어
휴전협상의 최대 쟁점이던 반공포로 2만7000 명을 석방, 합의 직전에 있던
미국과 중국을 경악으로 몰고 갔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한때 李 대통령을 잡아넣는 공작까지 구상한다.
1950년 7월4일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유엔사령관에게 넘겨준 이후 戰局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소외되었던 이승만은 반공포로 석방이란 일생일대의 승부를 통하여 미국의 멱살을 잡고
한미상호방위조약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갈 수 있었다.
포로 석방 직후인 7월3일 중국 정부는 북경주재 소련 대리 대사에게 현 상황의 분석 자료를
건네준다. 냉전이 끝난 후 공개된 이 자료를 통하여 우리는 李承晩에 대한 중국의 높은 평가를
엿볼 수 있다. ('소련 자료로 본 한국 전쟁의 전말'에서 인용, 열림).
<이승만이 전쟁 포로를 석방하고 휴전 반대 운동을 확대한 지난 12일간,
조선 전쟁에 묶여 있는 미국은 이승만의 휴전 반대 운동을 약화시키고
그와 타협을 모색하고 있음. 그러나 이승만은 미국을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음.
미국은 이승만에게 압력을 가하려 하고 있음. 미국의 약점을 철저히 이해하고 있는 이승만이
타협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됨. 그러나 조선전쟁의 主 행위자는 미국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미국은 아마도 특정 시점에서 이승만에 대하여 압력을 증대시킬 것임.
휴전 문제에 관하여 미국과 이승만 간에 매우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휴전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고수할 것을 제안함.
'휴전을 성사시킴에 있어 주도권을 장악하고, 휴전 문제에 관하여
미국과 동일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이승만을 고립시키고, 그에게 타격을 가하여
미국으로 하여금 이승만에게 압력을 가하도록 하고 미국 내외의 불협화를 심화시킴.
휴전 협정에 서명하기 전에 이승만 괴뢰 군대에 타격을 가함.'
중국 정부는 미국이 이승만에게 제한된 원조를 제공할 것으로 믿고 있음.
미국으로서는 극동에서 대규모의 모험적 행동에 끌려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음.
이승만은 앞으로 개최될 정치회담에서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회담을 포기하고 북조선에 대한 대규모 공세를 재개하여 中朝 국경인 압록강까지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음. 중국 정부는 평화를 위하여 휴전 협정에 동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함. 이러한 경우 미국과 중국이 함께 이승만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오학겸은 농담조로 언급하였음.>
중국은 '미국의 약점을 철저히 이해하고 있는 이승만'이 미국을 끌고 들어가 휴전협상을 깨고 北進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하여 '미국과 중국이 함께 이승만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분석하였다.
미국과 중국이 손을 잡아야 할 만큼 李承晩을 다루기가 힘들었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李 대통령은 몇 달 뒤 찾아온 닉슨 미국 부통령에게
"공산주의자들에게는 내가 무엇을 할지 모르는 사람이다,
미국 말도 듣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어야
미국의 협상력이 강해진다"고 말하였다.
李承晩이 이런 승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한국군과 국민들이 李 대통령의 北進통일 의지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덕분이다.
지금 한국의 지도부는 62년 전보다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國力을 보유하고 있으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승만과 같은 승부를 생각도 하지 못한다.
풍요와 민주주의가 자주국방 의지와, 생존투쟁을 위한 정신력을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
소련도 두려워한 李承晩
이승만의 공격을 피하도록 김일성에게 판문점 휴전협정 서명 불참 명령
趙甲濟
1953년 7월27일에 있었던 휴전 협정 서명식에 김일성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소련의 지시를 따른 것임이 소련 붕괴후 공개된 외교 문서로 밝혀졌다.
그 이유도 재미 있다. 李承晩 진영이 김일성을 공격할까 걱정되어
그렇게 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7월24일 소련 공산당 중앙 위원회 간부회의는 북한주재 소련 대사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하였다.
<김일성과 조선 동무들에게 다음 사항을 전해줄 것.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수상 1명과 팽덕회가
휴전협정에 서명하는 것을 지지함. 현재 김일성이 판문점을 방문하는 것은
김일성 동무에 대하여 모종의 도발을 가할 수 있는 이승만 진영의 행태로 인해
상당한 정도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
이 때문에 김일성이 직접 판문점을 방문, 협정에 서명하여서는 안 됨.
우리의 큰 목적을 살려나가기 위하여 사소한 도발 가능성도 회피하여야 함.
이 문제에 관하여 소련 공산당 중앙 위원회는 여하한 주장에도 굴복하지 말도록 조언함.>
이 지시에 따라 김일성은 7월27일 밤 1 0시에 평양에서 휴전협정에 서명했고,
중공군의 팽덕회는 7월2 8일 오전9시30분에 개성에서 서명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6월18일 반공포로를 석방, 미국 중국 북한 지도부를 혼란에 빠트리는 것을
본 소련은 '이승만은 뭘 할지 모르는 사람이다'는 공포감을 가졌던 듯하다.
이승만 정부가 과연 김일성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소련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일단 한국에 유리하였다.
상대로 하여금 우리가 뭘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은
외교적으로나 전략적으로 優位에 서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電文을 통하여 우리는 김일성이 소련의 꼭두각시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소련과 중국이 두려워하였던 이는 미국에도 대어드는 이승만이었다.
그런 이승만을 親美사대주의로 몰고 그런 김일성을 自主라고 칭송하는 무리가
지식인 행세를 하는 곳이 한국이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