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조작 의혹에 침묵하지 않았던 두 사람김희철을 '짝퉁 후보'라 공격했던 정태호, 그 이유는…
  • ▲ 지난 20일 새정치민주연합 관악을 보궐선거 후보 당내경선 과정에서의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하며 탈당하고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이행자 서울시의원.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지난 20일 새정치민주연합 관악을 보궐선거 후보 당내경선 과정에서의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하며 탈당하고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이행자 서울시의원.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국회의원이든 시의원이든 구의원이든 자기 일이 아니면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데 이행자 시의원은 나의 아픔을 함께 했다.
    미래가 창창한 젊은 여성 의원이 깊은 생각을 가진 점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희철 전 의원이 21일 〈뉴데일리〉와 단독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김희철 전 의원은 지난달 14일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와의 당내 경선에서 0.6%p 차로 석패했다. 하지만 이 경선 결과와 관련해서는 △같은 날 같은 지역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가 기관별로 15%p나 차이가 날 수 있는지 △김희철 전 의원 측에 우호적인 권리당원 1000여 명이 선거인 명부에서 제외된 이유가 무엇인지와 관련해 아직까지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역에서도 이와 관련해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 21일 아침 관악 세이브마트 앞에서도 지역 주민들이 이발을 마치고 나오는 김희철 전 의원을 향해 "그렇게 (여론조사 조작으로) 당하고도 의원님은 억울하지도 않으시냐"고 먼저 말을 건넬 정도다.

    하지만 민의(民意)를 대변한다는 정치인들은 꿀 먹은 벙어리 같은 모양새다. 권노갑 상임고문은 동작동 국립현충원까지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관악을 권리당원들을 외면한 채 "동교동계는 재보선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선언했다. 김희철 전 의원의 말대로 자기 일이 아니라,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 때 이행자 서울시의원이 떨쳐 일어났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권노갑 고문도 하지 못한 일을 재선의 시의원이 해냈다. 이행자 시의원은 "(친노 세력이)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인지 여론조작인지 모를 공천 방식을 남용하며 당원과 주민들을 헌신짝처럼 내던졌다"며 "김희철 전 의원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17일, 당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의 출정식에 사회를 보며 마음에도 없는 지지 호소와 환호를 유도해야 했던 이행자 시의원으로서는 더 이상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양심에 배치되는 일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 ▲ 관악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가 2012년 4월 8일, 구 통진당 소속의 이상규 전 의원의 공동선대위원장 자격으로 유세 차량에 올라 이정희 대표, 이상규 전 의원과 손을 맞잡아 치켜들고 있다. ⓒ이상규 전 의원 공식 블로그
    ▲ 관악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가 2012년 4월 8일, 구 통진당 소속의 이상규 전 의원의 공동선대위원장 자격으로 유세 차량에 올라 이정희 대표, 이상규 전 의원과 손을 맞잡아 치켜들고 있다. ⓒ이상규 전 의원 공식 블로그

    제1야당을 떠나 아직 창당준비위원회 단계에 있는 조직으로 옮겨가는 것은, 온돌방 아랫목에서 나와 시베리아 벌판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의(不義)를 들춰내고,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했으며, 정치적 소신과 양심에 따랐고, 민의를 대변했다. 정치인으로서 진정한 용기다.

    지역 정가의 관계자는 "이행자 시의원의 용기 있는 행동을 바라보니, 지난 2012년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가 걸었던 길과 자꾸 대조된다"고 귀띔했다.

    19대 총선에서 정태호 후보는 관악을 선거구의 당내 경선 후보로 나섰으나, 김희철 전 의원에게 패했다. 친노(親盧, 친노무현) 후보가 비노(非盧, 비노무현) 후보에게 패했기 때문일까. 당시 민주통합당의 친노 한명숙 지도부는 이 지역을 이른바 '야권단일화' 대상 지역으로 선정했다. 김희철 전 의원은 구 통진당의 이정희 대표와의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 후보를 결정하게 됐다.

    김희철 전 의원은 "당시 이정희는 나와 하프 게임도 안 됐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결과는 이정희 대표의 승리로 나왔다. 지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누가 봐도 여론조사 조작이었다.

    이정희 대표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대표는 2012년 3월 2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0명에게 여론조사 응답시 20~30대라고 답하라는 문자를 보냈을 뿐"이라며 "경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확언할 수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처럼 여론조사 조작이 당사자에 의해 인정됐지만 이른바 '야권단일후보'의 자리는 구 통진당 소속의 이상규 전 의원에게 넘어갔다. 여론조사 조작 세력이 '야권단일후보'의 자리를 꿰찬 것이다.


  • ▲ 관악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가 2012년 4월 8일, 구 통진당 소속의 이상규 전 의원의 공동선대위원장 자격으로 유세 차량에 올라 이정희 대표, 이상규 전 의원 앞에서 김희철 전 의원을 짝퉁 민주당 후보로 공격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상규 전 의원 공식 블로그
    ▲ 관악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가 2012년 4월 8일, 구 통진당 소속의 이상규 전 의원의 공동선대위원장 자격으로 유세 차량에 올라 이정희 대표, 이상규 전 의원 앞에서 김희철 전 의원을 짝퉁 민주당 후보로 공격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상규 전 의원 공식 블로그

    같은 당의 공직선거 후보가 여론조사 조작에 의해 억울하게 후보직을 상실한 이 사건, 그 때 정태호 후보는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정태호 후보는 침묵하지 않았다. 그 역시 떨쳐 일어섰다.

    정태호 후보는 2012년 3월 31일 관악 세이브마트 앞에서 열린 이상규 전 의원의 유세 차량에 올라,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희철 전 의원을 가리켜 "짝퉁 민주당 후보, 야권단일화를 분열하는 후보를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론조사 조작에 의해 후보직을 억울하게 상실한, 불과 얼마 전까지 같은 당의 동료였던 사람을 향해 맹공세를 가한 것이다.

    이러한 정태호 후보의 열성에 여론조사 조작의 당사자인 이정희 대표조차 감동했다. 뒤이어 유세 차량에 오른 이정희 대표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민주통합당 정태호 상임선대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분께서 함께 크게 마음 내 주시고 애써줬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정태호 후보는 이후로도 이상규 전 의원의 공동선대위원장 자격으로 수 차례 유세 차량에 올라, 여론조사 조작의 희생양인 김희철 전 의원을 '짝퉁 민주당 후보'라고 공격하고, 여론조사 조작 세력의 일원인 이상규 전 의원을 당선시켜달라고 호소했다.

    정태호 후보의 이 용기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불의를 들춰낸 것일까,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한 것일까, 정치적 소신과 양심에 따른 것일까, 민의를 대변한 것일까. 이행자 시의원이 탈당을 결행할 수밖에 없었던 기준과 자꾸 대조해 보게 되는 것은 비단 기자 뿐만이 아닐 것이다.

    같은 여론조사 조작 의혹을 목도했고, 분연히 떨쳐 일어난 것도 같았다. 그러나 행동의 방향은 달랐다. 둘 다 용기라고 할 수 있을까. 하나는 용기이고, 하나는 만용일까.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