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은 성완종 이름 숨긴 이유 설명해야
  • ▲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 출처 조선닷컴
    ▲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 출처 조선닷컴

    9일 오전 숨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56자 메모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특히 성완종 전 회장이 과거 참여정부 시절 2년 사이에 두 차례나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성 전 회장과 참여정부의 인연이 주목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이 성완종 전 회장을 두 번이나 특별사면한 과정에, 문재인 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문재인 대표와 성 전 회장 사이의 관계가 이번 사건 최대 변수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성완종 전 회장은 2005년 5월, 2007년 12월 각각 노무현 대통령이 단행한 특별사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 ▲ 청와대 민정수석 당시의 문재인 대표. ⓒ 출처 조선닷컴
    ▲ 청와대 민정수석 당시의 문재인 대표. ⓒ 출처 조선닷컴

    2005년 5월의 첫 사면에 앞서, 성 전 회장은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 16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포기했다. 국회 입성을 꿈꾸던 성 전 회장의 야심을 생각한다면, 항소심조차 포기한 그의 결정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성 전 회장은 형이 조기에 확정되면서, 1심 재판이 끝난 지 10개월 만에 특별사면의 혜택을 받았다.

    성 전 회장에 대한 참여정부의 잇따른 사면이 물의를 빚자, 새정치민주연합은 그에 대한 첫 번째 사면과 관련돼 자민련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해명을 내놓고 있지만, 이런 해명이 오히려 역풍을 초래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을 계기로 ‘정적(政敵)’이 된 자민련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주장은, 난센스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민련은 2004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1번인 김종필 총재조차 금배지를 달지 못할 만큼 참패하면서, 정치력을 잃은 군소정당으로 추락한 상태였다. 이런 사실을 생각한다면, 새정치민주연합 측의 해명은 더욱 옹색할 수밖에 없다.

    사실, 2005년 5월 단행된 특사와 관련돼 성완종 전 회장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때 특사를 둘러싼 논란은 함께 사면을 받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게 집중돼 있었다.

    성 전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후원자로 알려진 강금원 회장의 특사에 묻혀, 조용하게 여론의 그물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반면 두 번째 특사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2007년 12월 31일 결정된 참여정부의 마지막 특별사면은, 특사명단이 발표되자마자 언론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정권을 물려줄 처지에 놓인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불과 두 달 앞두고 특사를 단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이란 비판을 피하기 힘들었다.

    참여정부가 밝힌 특사의 이유도 옹색하긴 마찬가지였다.

    당시 법무부는 “외환위기 이후 10년을 넘기면서 불합리한 관행을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건설한다는 차원에서 경제인들에게 특별사면 등의 조처를 내린다”고 설명했다.

    법무부의 설명에 여당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했다.

    무엇보다 특별사면의 혜택을 받은 인사들의 면면이 문제였다. 당시 특사명단에는 75명이 포함됐다.

    참여정부는 ‘불합리한 관행 청산’과 ‘새로운 미래 건설’이란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특사를 포장하려했지만, 정작 특사명단에 포함된 경제인은 21명에 불과했다.

    오히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신 등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30명을 차지했다.

    이 가운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국정원 불법 감청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된 신건·임동원 전 국정원장,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한화갑 전 민주당 의원, 유종근 전 전북도지사, 이정일 전 국회의원 등이 포함됐다.

    심지어 이용호게이트에 연루됐던 신승남 전 검찰총장, 김대웅 전 광주고검장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당시 야당에서는 강신성일 전 국회의원, 안병엽 전 국회의원, 이기택 전 한나라당 상임고문 등이 특사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 ▲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당시의 문재인 대표, 노대통령과 함께 북악산 숙정문 정자에서 대화를 하고 있는 문 대표. ⓒ 사진 연합뉴스
    ▲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당시의 문재인 대표, 노대통령과 함께 북악산 숙정문 정자에서 대화를 하고 있는 문 대표. ⓒ 사진 연합뉴스

    2007년 12월의 특사는, 정권을 잃은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인사들이 이듬해 4월 있을 총선을 앞두고, 자기 쪽 사람들에게 정치 재개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때의 사면을 두고 “노무현 대통령이 측근들을 구하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당시 특사의 은전을 입은 경제인 중 가장 중량감 있는 인사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참여정부는 김우중 회장 외에도 강병호 전 대우자동차 사장, 김영구 전 대우 부사장 등 대우그룹 임직원 7명을 특사명단에 집어넣었다. 이 밖에 정몽원 전 한라그룹 회장, 1세대 벤처기업인으로 이름을 날린 장흥순 전 터보테크 대표 등도 이때 특사로 법의 족쇄를 벗었다.

    물론 성완종 전 회장도 특사를 받은 경제인 중 한 명이었다.

    당시 특사와 관련된 기사를 검색하면, 성 전 회장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당시 법무부는 성 전 회장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기자들이 비공개 특사 명단의 공개를 요구했지만 참여정부는 끝내 비공개 명단을 밝히지 않았다.

    2005년 9월 성 전 회장은 세상을 뒤흔든 ‘행담도 개발 비리’에 연루되면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이른바 ‘행담도 게이트’라 불렸던 이 사건은 노무현 정부 실세였던 문정인 전 동북아시대위원장,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 정태인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등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노무현 정부를 대표하는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성완종 전 회장은 행담도 개발사업 2단계 공사시공권을 받는 대가로, 김재복 행담도개발(주) 사장에게 120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줬다가, 배임증재죄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 사건으로 성완종 전 회장은 2007년 11월 23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성 전 회장이 항소심 판결 뒤 상고를 포기하면서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참여정부가 성 전 회장을 사면한 것은 항소심이 끝나고 불과 한 달여가 지난 뒤였다.

    참여정부가 이름까지 공개하지 않는 특별한 대우를 하면서, 성 전 회장에게 두 번째 특사의 혜택을 준 사실이 확인되자, 새정치민주연합과 문재인 대표 주변에서는 2007년 특사가 이명박 대통령의 요청으로 이뤄졌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성 전 회장과 관련된 두 번의 특사와 관련된 새정치민주연합 측의 해명을 정리하면, 첫 번째 특사는 자민련이, 두 번째 특사는 이명박 대통령 측이 각각 입김을 넣었다는 말이 된다. 즉 성 전 회장에 대한 두 번의 특사 모두 참여정부의 뜻은 아니었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이 성 전 회장과의 관계를 강하게 부정하면 할수록, 참여정부와 성 전 회장 사이의 특별한 관계는 더욱 도드라진다.

    참여정부가 자민련이나 MB의 의중을 특사에 반영했다는 주장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탄핵파동으로 ‘정적’이 된 자민련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말도, 또 다른 정적인 이명박 대통령 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말도, 공감하기엔 괴리감이 너무 크다.

    특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특사는 대통령만이 행사할 수 있는 ‘통치행위’의 하나로, 강한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즉, 무의미한 특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사의 실무를 법무부가 맡는다고 해서, 특사를 법무부장관의 작품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특사에는 당시 대통령과, 그 대통령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의중이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사에는 당시 정권 핵심의 입김이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다.

    성완종 전 회장에 대한 참여정부의 두 차례 특사와 관련돼, 문재인 대표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 ▲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한 문재인 대표. ⓒ 사진 연합뉴스
    ▲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한 문재인 대표. ⓒ 사진 연합뉴스

    참여정부시절, 문재인 대표가 정권의 2인자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재인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심정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최측근이자, 복심(腹心)이었다.

    특사가 정권의 생각과 의중을 반영하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참여정부에서 단행된 특사와 관련돼 문재인 대표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문재인 대표는 성 전 회장의 이름이 특사명단에 올라간 2005년 5월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2007년 12월에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참여정부와 성 전 회장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성 전 회장의 이름조차 공개하지 않은 참여정부의 마지막 특사는, 성 전 회장과 참여정부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반증하는 유력한 정황증거다.

    걸국 “성 전 회장과 참여정부는 관계가 없다”는 새정치민주연합 측의 해명은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의혹을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가 야당 일각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나오고 있는 ‘특검 추진’ 움직임에 유독 몸을 사리는 모습도 의문을 자아낸다.

    현직 국무총리, 청와대 비서실장, 대통령 선거당시 박근혜 대통령 선거캠프의 핵심 인물들이 모두 들어간 ‘성완종 리스트’는 문재인 대표가 정국의 주도권을 되찾아 올 수 있는 대형 호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문 대표가 특검에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성 전 회장 사이의 관계에 대해 문재인 대표에게 직접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야당에서 나오는 현실도 이채롭다.

    4.29재보선 광주서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천정배 후보는, 13일 “헌정 사상 초유의 권력형 비리에 특검을 하자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문재인 대표를 압박했다.

    그러면서 천정배 대표는 “국민들은 문 대표의 자기모순적 태도에 여러 가지 억측과 의문을 품고 있다”며, 공세를 이어갔다.

    정동영 전 의원과 천정배 후보를 중심으로 한 국민모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 혹은 특검 수사에 문재인 대표도 조사대상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14일 ‘성완종 리스트’를 수사 중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은 이날 오전 회의를 열고 수사대상 선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검찰은 메모지에 등장하는 8명을 포함해 대선자금 등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모두 털고 간다는 입장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이, 성 전 회장에 대한 참여정부의 특별사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할지 여부가 이번 사건의 새로운 쟁점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