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완성체’ 꿈꾸기만…2월 통과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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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난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실. 방청석이 가득 차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지난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실. 방청석이 가득 차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5일 오후 2시 15분.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어렵게 입을 뗐다.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위원들 출석이 (많이) 안됐다. 성원이 되어 이제 시작하겠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예정돼 있던 시각은 오후 2시. 여야 할 것 없이 법사위원석에는 빈자리가 가득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법제처·권익위 직원으로 빽빽한 방청석과는 차이가 컸다.

    겨우 성원을 채워 의사봉을 두드린 오후 2시 19분에도 새누리당 이병석, 정갑윤, 노철래, 김진태, 김도읍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이춘석, 서영교, 전해철 의원, 정의당 서기호 의원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 세월호 잊었나…부정부패 척결, 국민적 요구 ‘외면’

    이날 법사위의 핵심 논의 대상은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통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이었다.

    회의가 시작된 지 한 시간여.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의 “김영란법이 위헌소지가 있다”는 내용의 검토보고가 이어지는 동안 법사위원들은 속속 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정상적인 토론은 진행되지 못했다. 일방통행식 입장 발표만 뒤따랐다.

    법사위원 중 상당수 의원들이 정무위의 손질을 거친 이 법안에 반대하면서 ‘제각각’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여당이라 찬성하고, 야당이라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각 의원 별로 개별 목소리를 내면서 험준한 논의과정을 예고했다. 또 질의가 끝난 의원들은 곧장 자리를 떠 다른 의견을 들을 기회조차 포기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관피아(관료+마피아)로 대표되는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달라는 국민적 요구에 대한 책임감은 적어 보였다.

    우리 사회 속 뿌리 깊은 부패와 일상생활의 안전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추악한 민낯을 드러냈는데도 국회는 ‘법 적용 대상’을 두고 수개월 째 논쟁 중이다.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이 공직자인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일부 의원들은 언론계와 사립학교 일각의 반대를 이유로 ‘적용 대상 축소’를 외쳐왔다. 민간영역에 대한 과도한 제한으로 위헌 소지가 있고 타 민간영역과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 국회 ‘완성체’ 꿈만 꾸다, 2월 국회 그대로 보낼 지경


    한 정부관계자는 “언제부터 법이 완벽하게 시작했느냐”면서 “일부 문제들이 과장되면서 법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문제가 있으면 도입해 고쳐 나가면 될 일”이라고 질타했다.

    이날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도 “전국민이 이 법을 지켜야 한다고 해서 과도하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면서 “세부적 부분에서 일부 위헌성 논란이 있더라도 입법적 결단을 내리는 게 국민의 명령”이라고 조속한 통과를 요청했다.

     

  • ▲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이날
    ▲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이날 "세부적 부분에서 일부 위헌 논란이 있더라도 입법적 결단을 내리는 게 국민의 명령"이라고 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반면 같은당 노철래 의원은 “법의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적용범위가 너무 포괄적이고 광범위한데다 사회 구성원들을 범죄 집단화할 소지가 있다”고 수정을 시사했다.

    같은당 김진태 의원도 “공직자라고 우기면 기자도 공직자가 되는가. 그러려면 국어사전부터 바꿔야 한다”면서 “이 법은 법도 아니다. 이것저것 막 기워진 누더기이다. 가뜩이나 공무원들이 복지부동인데 이제 억울한 사람들의 민원도 다 막히게 된다. 그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위헌 논란에 가세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사립학교 이사장 및 재단 이사의 추가 포함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야당 탄압용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임내현 의원도 “내사와 정보수집 가능성이 엄청 넓어지기 때문에 자의적 집행 가능성이 있다”고 하자 이상민 위원장은 “빅 브라더의 등장”이라고 맞받았다.


    ◆ 정무위 VS. 법사위 감정싸움 격화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와 법사위 간의 감정싸움도 치열해지고 있다. 새누리당 정우택 정무위원장과 새정치연합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5일 밤 MBC 시사프로그램 녹화장에서 험한말로 언쟁을 벌이다 녹화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김영란법의 2월 국회 처리 전망을 묻는 질문에 이 위원장이 “정무위에서 쭈물떡쭈물떡거리다 1월말 허겁지겁 넘겨서 볼 것도 많은데 그 법이 위헌 소지도 많고 너무 포괄적이다”는 취지로 말한 게 발단이 됐다. 

    이에 정 위원장은 “숙려 기간을 거쳤고 충분히 논의했다”면서 “법 적용대상을 확대한 것은 금품수수 시 공립학교 교사는 처벌받고 사립학교는 안 받는다면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 국회 법사위 이상민위원장은 2월 임시국회 통과를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녹록치 않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회 법사위 이상민위원장은 2월 임시국회 통과를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녹록치 않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김영란법이 통과됐더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골프 논란은 없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골프 내수시장 침체에 따라 “골프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골프 금지령’을 내린 적이 없다. 다만 자칫 골프가 접대나 부정청탁의 주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여 왔다.

    김영란법이 통과될 경우, 공직사회는 재정적 후원을 받지 않고 철저히 자신의 돈으로 골프를 즐기는 만큼 당당하게 칠 수 있게 된다.

    국회 법사위는 오는 23일에는 입법 공청회, 24일 법안소위 회의, 3월 2일 전체회의가 예정돼 있다. 2월 국회 마지막 날인 3월 3일 본회의가 예정돼 있지만 통과는 미지수다.

    국회 법사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김영란법을 계류시켰다.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2월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이번에도 ‘논의’ 시간은 부족하다.

    여야 정치권이 이런 저런 핑계를 들어 김영란법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국민적 질타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 =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