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별간담회와 당권주자 토론회 시간 겹쳐 '관심 밖'으로 전락
  • ▲ 지난해 10월 2일, 첫 소집된 비상대책위원회의 개회를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지난해 10월 2일, 첫 소집된 비상대책위원회의 개회를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마지막 가는 길까지 쓸쓸함을 면할 수 없게 됐다.

    문희상 위원장은 오는 5일 오전 11시에 고별 기자간담회를 열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2일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4개월여 만의 일이다.

    그런데 같은 날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는 오전 10시 10분부터 박지원·문재인·이인영 당대표 후보를 초청해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토론회는 11시 40분까지 1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된다. 문희상 위원장의 고별 기자간담회와 시간이 겹친다.

    8일 열릴 새정치연합의 전당대회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진행될 당권 주자 간의 토론회에 시선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문희상 위원장의 고별 간담회는 자연스레 여론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새해 들어 2·8 전당대회를 향한 당권 레이스가 불붙으면서 문희상 위원장은 점차 취재진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지난달 13일 문희상 위원장의 신년 연두 기자회견에는 우윤근 원내대표·백재현 정책위의장·조정식 사무총장·민병두 민주정책연구원장·한정애 대변인 등 주요 당직자가 참여했지만, 얼마 전까지 '비상대책위원회'라는 같은 배를 타고 있던 박지원·문재인 의원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문재인 의원은 같은 시각 열린 안철수 의원의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국회를 빠져나갔다.

    취재진도 다음 달이면 물러날 문희상 위원장에게 향후 구상이나 진로를 물을 수 없어, 전당대회와 당권 경쟁에 관한 질문만 부질 없이 쏟아졌다.

    2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당선된 직후,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와 문희상 위원장을 잇달아 방문했을 때도 현장에서는 현격한 온도 차이가 느껴졌다. 문희상 위원장도 이를 느낀 듯 자신을 찾아온 유승민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잘 모시고 열심히 하겠다"고 하자 "이제 간당간당하다. 일주일도 안 남았다"고 농담으로 받기도 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문희상 위원장이 쓸쓸한 고별을 맞이하게 된 것에 대해 '자업자득'이라 냉소하기도 한다. 모두의 박수를 받고 물러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 문희상 위원장은 당이 어려운 상황에서 구원 투수로 등판했다.

  • ▲ 지난달 13일,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신년 연두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문희상 위원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지난달 13일,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신년 연두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문희상 위원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지난해 3월 이른바 '안철수 신당'과의 전격 통합 이후 중앙위원회도, 당무위원회도, 시·도당위원회도, 지역위원회도 없이 오로지 최고위원회 하나만 가지고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던 당무를 정상화하고 조직을 하나하나 재건했다.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를 겸하던 당의 수장(박영선 전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탈당 소동을 빚는 등 일련의 악재 속에서 바닥을 치던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을 적잖이 올려놓은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문희상 위원장의 업적이다.

    그럼에도 문희상 위원장이 박수와 환호 속에서 물러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문희상 위원장은 2일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그 스스로 "비대위가 출범할 때 목표는 첫째 당의 재건, 둘째 전당대회의 성공적 개최, 셋째 정치혁신의 실천"이라고 정의했다.

    이 중 '당의 재건'에 대해서는 적잖은 공로를 세웠지만, 전당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느냐에는 물음표가 달린다. 새정치연합의 당권 경쟁이 어떻게 봐도 '막장'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으로 전락한 데에는 문희상 위원장의 친노(親盧)로 기운 듯한 태도에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문희상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모바일 투표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해, 당장 비노(非盧) 진영의 반발을 샀다. 박지원 후보는 "모바일 투표야말로 가장 큰 문제"라고 일침을 가했고, 범친노(汎親盧)로 분류되는 정세균 의원조차 "우리 모두 전당대회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를 말자"고 수습에 나서야 할 정도였다.

    박지원 후보가 제기한 당권~대권 분리론으로 문재인 후보가 당대표에 출마하지 않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당내 여론이 있던 올해 1월 초에는 연두 기자회견을 통해 "당권~대권 분리론은 쟁점으로서의 가치가 없고, 자연적으로 소멸될 것이라 봤는데 소멸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권~대권 분리론은 소멸되기는 커녕 점점 확산돼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새정치연합의 당권 경쟁을 관통하는 프레임이 됐다. 정치권에 하루 이틀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이를 뻔히 알고 있을 문희상 위원장이 짐짓 그릇된 답변을 한 것은, 당권~대권 분리론으로 궁지에 몰려 있는 문재인 후보 편들기가 아니냐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었다. 실제로 박지원 후보는 연두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문희상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을 아수라장으로 몰아넣은 '여론조사 경선 룰 변경'에도 문희상 위원장은 수수방관으로 일관했다. 박지원 후보는 문재인 후보 측이 전준위를 소집해 '경선 룰'을 표결을 통해 해석 변경을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하고 문희상 위원장·신기남 중앙당 선관위원장·김성곤 전준위원장에게 전화를 해 "룰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했다. 이 때 문희상 위원장은 "규칙이 명문화돼 있다면 바꿀 수 없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정작 전준위 전체회의에서 친노(親盧) 세력에 의한 '날치기'가 일어날 때는 아무런 개입도, 역할도 하지 않았다.

    결국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열릴 당권 주자 간의 토론회에 당내외의 모든 관심이 쏠려 정작 자신의 고별 간담회가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된 것에는, 전당대회와 당권 레이스를 공정하게, 중립적으로 관리해야 할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문희상 위원장의 '자업자득'의 성격도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