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안 쓰면 숨거둘 환자 앞에서 '근본적 체질 개선' 처방 말아야
  • ▲ 국회가 어린이집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빠른 대응책 입법을 공언하고 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안심보육 TF 위원장을 맡은 남인순 의원이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법안에 반대하는 입장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국회가 어린이집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빠른 대응책 입법을 공언하고 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안심보육 TF 위원장을 맡은 남인순 의원이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법안에 반대하는 입장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있는데, 언제까지 근본적 대책 마련만 되뇔 것인가.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이후로 전국 각지에서 이와 유사한 피해가 있었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학부모들은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형국이다.

    여야 원내지도부도 이에 발맞춰 발빠르게 대응책 마련을 공언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지난 16일 발표한 '아동학대 근절 대책'은 모든 어린이집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부모가 요구하면 동영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김무성 대표는 18일 "그 동안 보육교사의 인권 문제와 결부돼 있어 결정을 못하고 있었지만, CCTV는 설치해야 한다"며 "차체에 IPCCTV를 설치해 직장에서 어머니들이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이미 10년 전인 2005년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영유아보육법개정안을 제출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18일 "전국 어린이집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부모들이 인터넷과 핸드폰으로 어린이집 상황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당내에 논의되는 다양한 법안 중에 하나"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이 안심보육 TF 위원장으로 남인순 의원을 선임한 것을 보면, 근절 의지에 의문이 든다는 지적이다.

    2월 임시국회에서 근절 대책 법안을 일선에서 다룰 TF 위원장이 정작 어린이집 CCTV 의무화에 반대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남인순 의원은 지난해 6월 국회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어린이집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에 반대했다.

    20일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직접 주최한 토론회에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위원회,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관계자 등을 토론자로 초청했다. 이들 단체는 어린이집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새정치연합 장하나 의원은 "어린이집은 (보육교사의) 노동현장"이라며 "이번 일로 보육교사들이 가장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 발언했다. 대다수의 학부모들이 이번 사태로 느낀 충격과 문제 의식과는 동떨어져 있는 발언이라는 지적이다.

    CCTV 설치 의무화를 반대하는 근거는 △보육교사의 인권 침해 △CCTV가 있어도 아동학대 근절 불가 △보육교사의 처우 개선 등 구조개혁 우선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보육교사의 인권 침해를 주장하는 것은 CCTV 설치로 헌법 제17조가 보장한 사생활의 비밀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어린이집이 과연 원장이나 보육교사의 사적인 영역인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김현숙 원내대변인은 19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CCTV를 설치하면, 아이가 놀다가 다친 건지 교사에게 맞은 건지 가려낼 수 있어 오히려 보육교사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가 CCTV가 있는 어린이집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들어, CCTV가 있어도 결국 아동학대를 근절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CCTV마저 없었다면 이번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 드러나지 않고 계속됐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어린이집에서의 학대 대상이 됐던 아동들이 공격 행동·충동 장애·퇴행 장애·섭식 장애 등을 보이고 있다는 보고도 있는데 CCTV가 없었더라면 더 많은 아동들이 이러한 장애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CCTV 설치가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구조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외면하는 셈이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2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학교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보육교사"라며 "국가적, 사회적인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말대로 보육교사의 처우 개선은 하루 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인식 개선과 병행해서 중장기적으로 진행해야 할 과제다.

    국민은 새정치연합이 당장 항생제를 쓰고 수술을 하지 않으면 숨을 거두고 마는 환자 앞에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먼저' '일단 담배부터 끊어야' '식습관을 바꾸고 틈틈이 운동을 해야 재발하지 않는다'라는 한가한 처방을 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