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걷는 정부의 갑질, 조세정책 설명보다 증세 설득 먼저 이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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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대선개입, 세월호, 정윤회까지. 최악의 참사와 저질 스캔들에도 굳건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이 무너지고 있다.

    단통법, 도서정가제 등 시장경제에 대한 지나친 규제와 담뱃값, 연말정산으로 이어지는 증세논란이 진앙지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는 웃어넘기던 지지층도 자신들에게 직접 향하는 가계 소비부담 증가와 증세효과에는 마음을 다시 먹는 것으로 보인다.


  • ▲ 16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3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 한국갤럽 제공
    ▲ 16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3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 한국갤럽 제공

    "연말정산이 세금 폭탄이 돼 서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안타깝다.

    정부는 지금 사태의 원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 20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서


    김선택 회장의 말처럼 국민이 진짜 분노하는 것은 세금 증가가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다.

    가장 예민하게 생각해야 하는 세금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문제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꺼냈다가 크게 혼쭐이 난 '거위털' 발언.

    국민이 눈치채지 못하게 세금을 거둬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심리가 여전히 정부의 증세정책에 녹아있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국민 모르게'라는 어이없는 정부의 정책 속에는, '국민이 조세제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매우 무책임한 심리도 내포돼 있어, 국민 분노를 더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 ▲ 지난 5일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뉴데일리
    ▲ 지난 5일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뉴데일리


    미리 말하면 더 걷어도 돼? 세금 걷는 정부가 갑질!


    "연말정산 환급액 축소는 이미 다 예견된 것이었다.

    그런데 너무 정치적으로 이슈화하고 있다."

    "(환급액 축소에 대해)그 당시 다 홍보했다.

    그런데 (국민들이)다 잊어버린거에요.

    그런데 필요하면 우리가 다시..(홍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9일 있었던 연말정산 논란에 대한 여당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 수석 부의장의 말이다.

    풀어 말하면, 예전에 정책입안 과정에서 다 밝힌 내용인데 국민들은 이제와서 왜 반발하느냐는 무책임한 얘기다. 국민들에게는 '내라면 내'라는 식으로 세금 걷어가는 정부가 갑질을 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는 발언이다.

    나성린 부의장이 말하는 그 당시라는 시점은 1년 5개월 전인 2013년 8월이다.

    박근혜 정부는 현오석 경제부총리 시절 연소득 3천450만원을 중산층 기준을 정하고 소득세를 연간 16만원씩 더 걷겠다고 발표했다.

    소득 상위 30% 가량에게는 세금을 더 걷고, 하위 70%에게는 세금을 덜 걷겠다는 것이 당시 정책 기조였다.

    이 과정에서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그만하면 감내할 수 있는 것"이라는 부적절한 발언으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이때 나온 말이 "거위가 안 아프게 거위털 뽑으려 한 게 이번 조치"였다.

    "예술적인 과세는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게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과 같다"는 프랑스 루이 14세의 재무상인 콜베르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이를 두고 규제개혁에 단두대(길로틴)를 강조한 박 대통령의 이후 발언이 결합돼, 박 대통령이 루이 14세 당시 프랑스 정치적 개념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냐는 살벌한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아무튼 이런 논란에 이은 여론의 반발로 결국 박 대통령은 조세 정책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고, 중산층 기준선을 연봉 5천만원으로 그리고 이번에 다시 5천5백만원으로 상향조정했다.

  • ▲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 수석부의장. ⓒ뉴데일리 이종현 사진기자
    ▲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 수석부의장. ⓒ뉴데일리 이종현 사진기자

    "일단 내! 그러면 다시 돌려주던지 할게"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다음날인 20일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나섰다.

    최 부총리는 이날 오전 긴급 브리핑을 갖고 소득 상위 15%(연소득 5천5백만원)가량은 세금을 더 걷고, 나머지는 세금이 줄어든다는 것을 계속 강조했다.

    하지만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정부의 조세정책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은 일부 인정했다.

    대표적인 것이 연소득이 낮은 미혼 직장인이나 다자녀 가정이다.

    최 부총리는 "다른 공제가 없는 연봉 2360만원~3800만원 사이의 미혼 직장인은 최고 17만원이 증세되고, 작년에 자녀가 출생한 연봉 5000만원인 직장인은 31만원이 증세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같은 연봉이라도 변수가 많은 연말정산 가정에서 부양 가족이나 거주 주택에 따라 공제 받을 수 있는 항목이 크게 차이가 나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잘못은 인정했지만, 대책은 없었다.

    최 부총리는 3월까지 연말정산이 완료되면 이를 토대로 소득계층별 세부담 규모를 분석해 세제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일단은 개편된 조세체제로 세금을 '더' 내고, 나중에 다시 계산해 돌려주겠다는 얘기다.

    일단 정부가 정한만큼 세금을 걷어가겠다는 의지는 그대로 둔 채, 얼마를 다시 돌려주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조차 하지 않은 셈이다.

    실제로 정부의 조세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나중에 돌려받는 금액도 크게 체감하기 힘들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 ▲ 국무회의장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뉴데일리
    ▲ 국무회의장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뉴데일리

    국민을 이해시켜라? 설명 필요한게 아냐..설득이 있어야!


    세금 문제에 대해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20일 청와대에서도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3번째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앞서 청와대에서 장관들과 간단한 티타임을 가졌다.

    제일 먼저 연말정산 논란에 긴급 브리핑을 마치고 온 최경환 부총리에게 박 대통령이 "오늘 잘 하셨냐"고 물었다.

    최 부총리는 "전체적으로 (세금이)좀 늘어난 면도 있지만, 고소득층에게 더 걷어서 저소득층에게 돌려주려 한다는 관계를 설명했다"고 보고했다.

    박 대통령은 "(국민들이)이해가 잘 되시는게 중요하다"고 다시 강조했고, 최 부총리는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화기애애한 대화였지만, 박 대통령이 강조한 '국민의 이해'라는 부분에서 박근혜 정부의 조세정책에 대한 접근방식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최 부총리가 말한 것처럼 전체적으로 세금이 늘어난 면은 분명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증세에 대해 국민에게 잘 '설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국민은 증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납득하고 싶어한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정책의 효과나 당위성을 자랑하기 앞서 증세에 대한 진정성 담긴 설득이 선행돼야 한다는 말이다.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옛말에 줬다 뺏으면 엉덩이에 뿔난다는 말이 있다. 이번에 나온 국민 목소리가 이런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수석부대표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이 수용안하면 좋은 정책일 수 없으니, 이른 시일 내 보완책을 마련해 달라"고 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지난 16일 한국갤럽에서 발표한 35%, 19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39.4% 수준으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