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 시도 만에 非가격 '금연책' 국회 문턱 넘나
  •    

  • ▲ 지난 연말 담뱃값 인상 소식이 알려진 뒤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 텅 빈 담배 진열대의 모습.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지난 연말 담뱃값 인상 소식이 알려진 뒤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 텅 빈 담배 진열대의 모습.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담뱃값 2,000원 인상을 목전에 둔 지난 연말. 정부는 금연정책으로 담뱃값 인상과 담배갑 경고그림 부착 두가지를 제시했다. 국회는 담뱃값 인상만 수용했을 뿐, 담배갑 경고그림은 거부했다.

    여야는 세수 확보와 연관 있는 담뱃값 인상에는 적극적이면서 비(非)가격 정책인 경고 그림 삽입은 등한시 했다. 이에 따라 담배업체의 로비로 정치권이 경고 그림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인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불과 두달 만에 상황은 반전됐다. 국회에서는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팔리는 담배갑의 앞면과 뒷면이 경고 그림으로 채워질 전망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4일 법안소위를 열고 '국민건강증진법 일부 개정안'을 처리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담배 제조사들은 담뱃갑 앞, 뒤면에 각각 면적 30% 이상에 경고 그림을 담아야 한다. 기존의 경고 문구까지 포함해 전체 면적의 50% 이상을 채워야 한다. 최악의 경우 제조 허가권이 취소될 수도 있다.

    복지부 측은 "경고 그림의 형식과 도입 시기에 대해서는 복지위 소속 의원들 간의 견해 차가 있었지만 국민 건강 증진에 필요한 조치라는 점에서도 모두 공감했다"고 했다. 법안소위는 정부와 담배 제조사의 준비를 위해 법안 공포 후 1년 6개월의 유예 기간을 두도록 했다

    지지부진하던 담뱃갑 경고그림 삽입이 속전속결 여야 합의에 이르게 된 데는 '저가 담배' 논란도 한 몫 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저가 담배가 처음 등장한 것은 설 연휴를 목전에 둔 지난 17일이다.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에서는 담뱃값 인상에 따른 불만이 폭증하자 노인들이 부담없이 살 수 있는 '저가 담배' 출시를 검토하자는 안이 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새정치연합도 가세했다. 전병헌 최고위원은 말아 피우는 '봉초 담배' 이른바 롤링타바코의 세금을 감면해 저소득층에게 혜택을 주는 법안을 내겠다고 밝혀 저가 담배 논란은 일파만파 확대됐다.

    국민 건강을 위한 장려 정책으로 담뱃값을 인상해 놓고 저가 담배를 만드는 것은 정책의 앞 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흡연자, 비흡연자 할 것 없이 국민 여론은 담뱃값 인상 목적은 '세수'에 있었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국민적 지탄이 불 번지듯 확산되자 새누리당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건강을 명분으로 담뱃값을 인상했는데, 저가 담배를 말하는 순간 여야가 합의한 담뱃값 인상이 꼼수 증세라는 오해를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상황이 긴박하게 진행되자 여야는 비가격 금연정책인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을 서두를 수 밖에 없게 됐다.

    한 여권 관계자는 "담뱃값 인상 비난 여론이 계속되는 와중에 저가 담배가 기름을 부은 격"이라며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정책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비가격 정책을 확실히 꺼내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담뱃갑에 경고 그림을 부착하자는 논의가 등장한 것은 지난 2003년 국제보건기구 담배규제기본협약에 서명한 뒤 부터다. 

    담배규제기본협약은 경고 그림이 흡연율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라고 보고, 담뱃갑 부착을 권고해 왔다.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2년 간 정부와 의원 발의 형태로 11차례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번번이 통과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