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관련부처 예산, 조금도 줄이거나 없애면 안 돼"북한동포를 살리는 길, 북한인권법 반드시 통과시킬 것탈북민들 ‘생활총화문화’ 버리고 서로 격려하고 칭찬해야
  • 최초의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 조명철! 그가 2만 5천여 탈북민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으며 국회에 입성한지 어느덧 2년이 훨씬 지났다.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의정활동을 이어가는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의 모습을 <뉴데일리>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의원실 관계자와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가끔 국회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인사차 들리는 의원실이지만 옹근 2시간의 인터뷰시간을 그에게서 빼앗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그만큼 조 의원이 바쁜 업무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징표로 믿음이 갔다. 이번 인터뷰는 취임 2주년이 되는 4월에 하려고 했으나 ‘세월호침몰사고’로 무기한 연기되면서 늦어졌다.

    똑똑!~ 노크를 하고 집무실에 들어서니 조명철 의원이 가림막 뒤에서 나오며 “어서 와요. 림 작가! 건강하죠?” 하는 것이다. 다소 밝은 미소를 보이는 그의 목소리가 약간 쉬어 보였고 아마도 ‘7·30 재·보궐선거’ 유세지원 때문이 아닐까 했다.

    그가 자리를 권하며 묻는다.

    “가족식구들 모두 잘 있지요?”
    “네! 건강하게 잘 지냅니다.”
    “정말 행복한 가정이에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만날 때마다 저의 아내와 아이들의 안부를 가장 먼저 묻는 조명철 의원의 특유한 인사법은 내가 처음 알았던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다. 사람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그 고상한 품성과 인격은 내가 늘 닮고 싶은 것 중의 하나다.

    - 집무실이 달라졌다.

    “이 방을 찾아오는 다양한 사람들과 가급적 대화를 많이 하려고 조금 바꾸었다. 언뜻 권위적으로도 보이는 내 자리를 뒤에 감추고, 벽면에 책장을 새롭게 났다. 생활의 교과서인 책을 많이 보고, 국민스승인 사람들과 편하게 소통하려고 과감히 시도했다. 가끔 주변의 환경을 바꿔줘야 신선한 맛으로 일할 의욕이 더 생기는 법이다. 오랫동안 사무실(정책연구원)에서 일해 본 내 경험에 의하면 말이다.”

    - 건강이 회복되어 보인다.

    “림 작가가 두 병원에 아내와 함께 네 번이나 찾아온 덕분이다.(웃음) 정말 고맙다. 모두들 먹고 살기 바쁜 와중에도 병문안 와주었던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사정상 못 와봐서 미안하다고 전화로 안부를 물어준 분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연구원시절에 갖고 있었던 척추질환인데 국회에 와서 더 심해졌다. 정말이지 국회의원의 의정업무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 인터뷰 시간을 겨우 잡았다.

    “미안하다. 몸이 열 개라도 힘든 곳이 바로 이 자리다. 내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림 작가가 이 자리에 두 시간동안 있으면서 찾아오는 사람은 몇이고, 걸려오는 전화는 몇 통인지 세어보라. 이 시간에도 동작을 나경원 후보 선거유세 지원을 가야 하는데... 림 작가한데 이렇게 발목이 잡혔다.”

    실지 인터뷰가 진행되는 시간 내내 업무로 찾아온 동료의원, 인사차 들린 모 차관, 특정기관장 등 내각관료들과 지인이 무려 9명... 거기에 전화는 다섯 번이나 울렸고 시시각각 들어와 보고하는 비서진의 출입도 세 번이나 있었다. 정말이지 눈코 뜰 새 없이,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바쁜 자리임을 눈앞에서 확인했다.

  • △ 조명철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다른 부처 예산은 몰라도 탈북민 관련부처 예산은 조금도 줄이거나 없애면 안 된다”고 말한다고 했다. ⓒ 림일 작가


    - 탈북민 취업보호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기하는 법안 발의했다는데...

    “탈북민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들의 계층이나 연령, 경력 등이 다양해짐에 따라 정착지원을 하는 경우에 이러한 사항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행법상 대상자가 최초로 취업한 날부터 2년간 취업보호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으나, 그 기간이 짧아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 현실적인 것 같다.

    “탈북민의 경력이나 자격 등을 고려하여 취업보호 실시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주거지원을 받은 탈북민이 지원받은 주거를 취업이나 학업 등의 특별한 사유로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경우에는 그 기간에 한하여 타인에게 전세권이나 임차권을 양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정착지원의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한다.”

    - 지방의 탈북민들도 힘든 소리를 많이 한다.

    “탈북민의 정착지원 사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동사무로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안 제15조 2항). 통일부장관이 직업훈련을 실시함에 있어 노동부장관과 협의하도록 하고, 직업훈련대상자가 능력개발 훈련시설에서 취업교육을 받을 수 있게 노동부장관 등에게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안 제16조)”

    - 탈북노인들이 많다. 그들의 어려움도 적지 않다.

    “통일부장관은 ‘국민건강보험법’의 적용대상인 보호대상자의 경제적 능력 등을 고려하여 탈북민들이 의료급여에 드는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 발의를 했다. 노인들이 우선적인 수혜자로 될 것이다. (안 제25조 2항 신설)”

    - 노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번 OO무역 대표 한 모 씨의 다단계식 사기에 피해를 입은 탈북노인들이 적지 않다.

    “안타깝다. 거기에 투자했던 대부분의 탈북민 노인들이 국가에서 주는 생계비로 겨우 살아가는 분들이다. 세상물정에 밝지 못한 점을 악용했다. 그 속에 있는 몇몇 국군포로 출신의 탈북노인들도 한 순간의 유혹에 잘 못된 것 같다.”

    - 이 사건과 관련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가?

    “탈북민들의 투자금을 가로챈 한 모씨는 엄연히 범죄자다. 경찰청을 방문하여 외국도피로 추정되는 그를 국제범죄수배자로 요청하였고, 국내에서 피해자를 돕기 위한 방안이 없는지 경찰청장에게 특별히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피해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책을 전문가들과 함께 모색 중이다.”

    - 기업들에서 탈북민 고용이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으로 하여금 총 정원의 일정 비율을 탈북민으로 고용할 것을 의무화함으로써, 탈북민의 안정적인 정착이 가능하게 하려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안 제18조 2항 신설)”

    - 취업과 관련해 또 다른 법안도 있는가?

    “거주지 적응교육과 탈북민의 특성을 고려한 각종 서비스를 안정적 및 체계적으로 제공하기 위하여 지역적응센터를 설립할 수 있도록 했다. (안 제15조 2항) 그리고 정부로부터 보호대상자로 결정되지 아니한 탈북민에 대하여도 최소한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안 제16조 1항)”

    - 탈북청소년 교육에도 애로사항이 많다.

    “해당 교육기관에 기숙사 설치·운영의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지원은 미흡한 실정이다. 이에 탈북민을 대상으로 초·중등교육을 실시하는 학교의 운영에 필요한 경비의 세부적인 내용을 법률에 구체적으로 규정하여 탈북청소년의 교육지원을 원활하게 하려는 것임을 중점으로 법안 발의했다. (안 제24조 2항)”

    - 남한사회에서 탈북청소년을 편향적으로 대하는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의 성격과 생활지침까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국가가 아니겠는가? 청소년들이 북한에서 가졌던 생활습성을 하루 빨리 벗어던지고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이고, 학생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

    - 피부에 와 닿는 법안 발의도 있는가?

    “탈북민들이 대한민국 사회에 보다 빠르게 정착할 수 있도록 보호대상자로 선정된 후 3년간 대중교통수단 등을 포함하여 박물관, 고궁, 공원 등의 공공시설을 무료로 이용하거나 그 이용요금을 할인 받을 수 있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내용을 주제로 법안을 발의 했다. (안 제20조 2항 신설)”

  • △ 조명철 의원 인터뷰는 취임초기 <통일신문> 취재에 이어 이번까지 두 번째다. 그는 “이 방에 가장 많이 들어 온 사람은 림 일 작가”라며 미소를 보였다. ⓒ 림일 작가 


    - 농촌에 진출하는 탈북민들이 많아진다.

    “영농정착지원 대상을 모든 탈북민으로 확대하여 보호기간이 만료된 탈북민에 대해서도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고, 지원내용을 법률에 명확히 하였다. (안 제17조 3항) 지난 2년 동안 여러 사업장을 방문한 중에 농사에 종사하는 분들이 일하는 곳도 찾았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내가 많이 배웠다.”

    - 또 다른 법안 발의가 있다면...

    “통일부장관은 중장기 계획에 따라 탈북민의 사회적응을 지원하기 위한 교육, 정보제공, 상담 등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하며, 탈북민 관련법인 또는 단체를 사회통합 프로그램 운영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정했다. (안 제4조 4항, 5항, 6항 신설)”

    - 일상에서 밀접하게 느껴지는 법안도 있는가?

    “탈북민의 정의에 탈북민의 자녀(외국에서 출생하여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자를 포함)를 추가 했다. (안 제2조 1항) 보호대상자를 거주지에서 보호하는 기간을 5년에서 8년으로 연장 했다. (안 제5조 3항) 보호대상자가 장애인인 경우에 재활 및 치료 등을 위한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안 제25조 2항 신설)”

    - 많은 일을 하신 것으로 보인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성실히 노력하고 있다. 나에게 좋은 정책 아이디어를 준 림 작가를 비롯한 주변의 많은 분들이 옆에서 도와주었기 때문에 이룩한 성과라고 본다. 부족한 조명철 혼자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 대한민국 국회의정 역사에 탈북민을 위한 법안 발의가 이렇게 많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랍다.

    “림 작가가 기자를 겸하는 언론인이니 정확히 봤다. 헌정사상 탈북민들과 관련한 법안 발의가 이렇게 많아보기는 초유의 일이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바로 국회에 탈북민 출신의 국회의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 다음은 지난 2년간 방문했던 탈북민단체 및 사업장을 소개해 달라.

    “2013년 5월부터 지금까지 모두 10여 곳의 사업장과 탈북민단체를 방문하였다.”

    - 그 중에 기억에 남는 몇 곳만 알려 준다면...

    “작년 봄 송파구 소재 탈북민 노인정을 찾았다. 제 아버지 같은 분들이 내 손을 따뜻이 잡아주며 자기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자신들을 받아 준 대한민국 정부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사시는 그분들을 보며 내가 게을리 일해서는 절대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 또 다른 곳은?

    “경기도 소재의 모 사업장에 갔었는데 탈북민들의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만도 눈물 나도록 고마운 일이라고 말한 어느 여인의 말이 기억난다. 대부분 아이를 한 둘씩 있는 주부들로 악착같이 일하고 생활하는 그들에게서 탈북민의 강인한 정신을 다시금 되새겨 보았다.”

    - 2년간 많은 탈북민을 면담했으리라 본다.

    “그렇다. 모두 30여명의 단체장 및 리더들, 그리고 일반 탈북민들이 공식적으로 이 방을 다녀갔다. 그 중에서 제일 많이 다녀간 사람은 바로 림 작가다.(웃음)”

    - 대부분 어떤 내용의 면담이었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단체 운영이나 특정사업에서 생기는 문제를 제기했다. 내가 그들의 애로상황을 듣고 풀어줄 수는 없어도 최소한 정책구상에 참고하려고 노력한다.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 탈북여교사가 비정규직을 눈물로 호소하기에 내가 그 학교에 찾아가서 교장선생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 ‘한 번만 더 써달라고’...”

    - 답답한 사람도 있었겠다.

    “노코멘트 하겠다.”

    - 그런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국회의원은 법을 만들고 국정을 감사하는 사람이다. 나의 직무는 탈북민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정책실행을 살핀다. 이에 도움이 되는 제안이나 아이디어를 달라.”


  • △ 조명철 의원은 “탈북민들은 북한에서 가졌던 서로가 욕하고 헐뜯는 ‘생활총화문화’를 버리고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살아야 한다” 고 강조했다. ⓒ 림일 작가


    - 북한인권법 아직 통과하지 못했다.

    “정말 힘들다. 내가 우리 당은 물론이요, 야당의 여러 의원들까지 일일이 만나 눈물로 호소했다. 야만적인 김정은의 폭정아래 짐승처럼 살아가는 우리 북한동포를 살리는 길은 이것밖에 없다고 말이다. 들을 때는 모두 공감하는 그들이 실제 본회의장에서는 지도부의 눈치를 본다. 이게 현실이다.”

    - 하면 앞으로도 어려운가?

    “아니다. 내가 2만 5천 여 탈북민을 대표해서 국회에 들어온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북한인권법 통과를 위해서다. 죽음의 땅, 고향에 남겨진 부모형제들의 끔찍한 고통을 우리는 한시도 잊으면 안 된다. 나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끝까지 관철시키겠다. 많은 탈북단체장들과 리더들이 뜻을 함께 하고 있다.”

    - 누구누구인가?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장, 김성민 자유북한방송대표, 최주활 탈북동지회장, 강철환 북한전략센터대표, 장해성 망명북한펜센터이사장, 김흥광 NK지식인연대대표, 안찬일 박사, 김승철 북한개혁방송대표, 한창권 탈북인단체총연합회장, 김용화 탈북난민협회장, 임영선 통일방송대표, 정성산 감독, 장세율 겨레얼통일연대대표, 이애란 북한전통음식연구원장, 김영일 성통만사대표 등이다.”

    - 다른 주제의 질문이다. <북한민주화위원회> 내홍을 어떻게 보는가?

    “황장엽 선생님께서 유산으로 남기신 단체인데 많은 탈북민들이 실망을 갖게 된 데까지는 홍순경 위원장님의 책임이 크다. 한편으로 냉정하게 보면 그분만한 인물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싸움은 말리고 혼사는 붙이라’고 했다. 선배들은 후배들의 발전을 위해 조언하고, 후배들은 선배들의 모범을 본받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 의원님이 교통정리를 조금 해줘도 되지 않는가?

    “사회통념상 민주주의 절차로 생긴 어떤 조직에 특정인이 자기 주견을 갖고 개입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더구나 나는 공인이다.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을 하며 미래를 위한 혁신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새로 구성된 이사회가 남한사람 반, 북한사람 반으로 되었다는데 아주 바람직한 방법 중의 하나라고 보여 진다.”

    - 일부 탈북민들이 <남북하나재단>을 흔드는 것은 어떻게 보는가?

    “잘못된 일은 아니다. 재단에 탈북민들을 대거 채용하고 함께 운영하자는 한창권 회장의 제안은 건설적이고 나도 찬성한다. 언제인가 국정보고 감사 때 재단에 탈북민 다수 참여 검토를 요청한적 있다. 그런데... 여기는 민주국가다. 기관마다 정관이 있고, 이사회 규칙이 있다. 그걸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힘들다.”

    -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것만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우리 탈북민들의 정착과 관련해서 현장파악, 의견수렴, 민원해결 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말이다. 통일부, 재단, 지방자치단체까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 속에 우리 탈북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공무원들의 숨은 노력이 깃들어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 다음 총선 인천 계양구에 준비하는가? 하는 풍설이 있다.

    “나는 새누리당 의원이다. 내가 당원의 한 사람으로 특정지역에 선거유세를 나갔을 뿐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설령 그렇다고 하자. 민주국가에서 국회의원이 자기 능력껏 재선, 3선 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괜히 조명철이 다음에도 국회의원하면 저들 밥그릇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 하는 조바심에 떠는 일부 사람들의 억측이다.”

    - 귀한 시간 내주어서 감사하다.

    “점심시간이다. 함께 식사하러 가자.”

    30분이나 지연된 2시간 반 동안의 인터뷰 시간 내내 열정과 의욕이 넘친 조명철 의원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뿌듯했다. 취재수첩을 접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우리 탈북민들을 위해 불철주야로 일하는 의원님에게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와 전화 한 통화를 드린 탈북민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2만 7천여 탈북민들 대부분이 그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다. 평양에서 태어났고, 중국 유학 도중 대한민국에 왔고, 정부기관 연구소에서, 그리고 통일교육원장을 거쳐 국회의원이 된 그를 귀족출신 ‘국회의원’이라고 욕하며 근거 없는 비난으로 뒤에서 그를 흉보기에 바빴다. 아무리 어쩌고저쩌고 해도 그들 중에 조명철 의원만큼 능력과 경험, 지식을 갖춘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말이다.

    잘해도 못해도 우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다. 초기에는 희소성과 상징성으로 열광했던 많은 탈북민들이다. 먹을알이 있을 것 같아 승선했던 ‘조명철호’에서 풍랑이 사납다고, 배가 고장 났으니 나부터 살겠다고 뛰어 내린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정치비판이 자유롭게 존재하는 민주국가에서 누구나 쉽게, 그가 탈북자사회 구심점이 되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우리는 과연 그를 얼마나 응원하고 도와주었는가? 그렇게도 잘난 우리가 두고 온 고향땅에서 독재자 김정은의 발굽 밑에 신음하며 짐승처럼 살아가는 인민들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