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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바걸스의 공연 장면.
국내 가요계에선 기존 가수의 제스처를 흉내내거나 노래를 모방하는 행위를 '폄하'하는 풍조가 오랫동안 지속됐다. 이른바 '짝퉁 가수'라 불리는 이들은 개런티가 비싼 '진짜 가수'를 대신해 '격이 낮은' 무대를 전전하며 명맥을 이어왔다. 때문에 초창기 '짝퉁 가수'의 이미지는 우스꽝스런 성대 모사나 어설프게 닮은 얼굴로 관객을 웃기는 희극적인 요소가 강했다. 관객의 기대치가 낮았기에 무대에 서는 이들도 그들과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사실상 가수와 개그맨의 경계가 모호했던 '짝퉁 가수'들은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프로다운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가창력이 늘고, 무대 매너 또한 기성 가수 못지 않은 완성도를 갖추자 평론가들은 어느덧 이들을 '모창 가수'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처럼 분위기가 바뀐 데에는 '너훈아' 등 실력파 모창 가수들의 역할이 컸다. 단순한 베끼기에 머물지 않고 나름 혼이 실린 무대를 선보이며 관객을 휘어잡기 시작한 이들은 웬만한 기성 가수 뺨치는 인기와 부를 누리기도 했다. 때문에 일부 모창 가수들은 원조 가수와 법정 공방에 휘말리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최근 들어 모창 가수는 '커버 가수'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코리안 웨이브, 한류(韓流)와 무관치 않다. 외국에 거주하는 팬들이 우리나라의 아이돌 스타를 따라하는 열풍이 일면서 '커버댄스'라는 신종 장르가 생겨나기도 했다. 기존 가수를 흉내내는 행위가 하나의 건전한 취미로 자리잡으면서 모창, 즉 커버 가수의 영역도 점차 '일상'으로 파고드는 모습이다.
JTBC의 '히든싱어'가 바로 이같은 추세를 반영한 프로그램이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커버 가수들이 스튜디오에 나와 자신이 흠모해마지 않는 톱스타의 노래를 부르며 대중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한 모창자는 유명 기획사에 즉석에서 픽업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트리뷰트(tribute), 즉 '헌정'이라는 개념이 가요계에 도입된 것도 커버 가수들의 위상을 높여주는 계기가 됐다. 트리뷰트는 기성 가수의 노래를 단순히 흉내내는데 그치지 않고, 그의 '음악 세계' 전체를 추종하는 일종의 기념비적 작업을 일컫는다. 트리뷰트 앨범이 유행하고, KBS '불후의 명곡'처럼 톱가수의 흘러간 가요를 후배들이 재해석하는 프로그램이 각광을 받으면서, '모창'의 개념은 어느덧 '헌정'이라는 큰 바운더리의 일부가 됐다.
이미 오래전 '카피'에서 '커버'로 넘어온 서양에는 500여개가 넘는 트리뷰트 밴드(tribute band)가 활동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정 뮤지션이나 밴드에 대한 헌정을 목적으로 음악과 가수의 이미지를 완벽히 재현하는 이들은 서양 가요계에선 '주류'에 편입된지 오래다. 미국와 영국에는 공연 장르에 '트리뷰트'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비틀즈, 퀸, 이글스 등 시대를 풍미한 수퍼밴드를 추종하는 트리뷰트 밴드가 부지기수다. 유명한 트리뷰트 밴드는 기성 가수처럼 전 세계를 순회하며 대형 공연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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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바걸스의 원년 멤버들.
지금 소개하고자하는 밴드도 세계적으로 명성이 드높은 트리뷰트 밴드다. 아바걸스(Abbagirls)는 팝그룹 아바(ABBA)의 '현신(現身)'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아바를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밴드로 정평이 나 있다.
1995년 영국에서 결성된 아바걸스는 아바와 동일하게 4명의 남녀로 구성됐다. 각 멤버들은 아마추어 출신이 아니라, 영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전문 보컬 세션이나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프로 뮤지션들이다.
리더인 킴 그레이엄(Kim Graham)이 애니프리드 린스태드(Anni-Frid Synni Lyngstad) 역을 맡았고 랄프 레이슨(Ralph Raison)이 베니 앤더슨(Benny Andersson) 역을, 조지 바렛(Georgi Barrett)과 마크 도슨(Mark Dawson)이 각각 아그네사 팰트스코그(Agnetha Faltskog)와 비요른 울바에우스(Bjorn Ulvaeus) 역을 맡아 활동 중이다. 미모가 뛰어난 조지 바렛은 길다 크리스티안의 뒤를 이어 2010년부터 아바걸스에 합류했다.
음악적 완성도와 퍼포먼스가 뛰어나 영국 런던의 프린스베리 파크에서는 8만 관객 앞에서 공연을 한 바 있으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선 최초로 아바 헌정공연을 벌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금껏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4,000여회 공연을 펼치며 오리지널 그룹 못지 않은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는 아바걸스는 금년엔 서울과 부산을 찾아 국내 아바 팬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지난 28일 부산 KBS홀에서 한 차례 공연을 가진 아바걸스는 장소를 서울 강동아트센터로 옮겨 31일까지 주옥같은 아바의 히트곡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번 내한 공연에선 '댄싱퀸(Dancing Queen)', '워털루(Waterloo)', '맘마미아(Mamma Mia)', '김미 김미 김미(Gimme Gimme Gimme)', '허니허니(Honey Honey)', '땡큐 포 더 뮤직(Thank you for the music)' 등 기존 아바의 히트곡 20여곡을 선보이는 한편, 세월호 참사로 아픔을 겪고 있는 한국 팬들을 위로 하기 위해 '더 웨이 올드 프랜즈 두(The way old friends do : 오랜 친구들을 그리는 것처럼)'와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등을 선사할 예정이다.
아바는 해외 팝그룹 중에서 비틀즈 만큼이나 한국 팬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뮤지션이다. 해마다 발표되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올드팝' 리스트엔 꼭 아바의 곡들이 담겨 있을 정도다. 그러나 정작 활동 당시엔 한국을 방문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 국내 팬들은 영화와 뮤지컬로 만들어진 '맘마미아'에 열광하며 아바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지지를 과시하고 있다.
이처럼 아바의 음악을 라이브로 접해보지 못한 골수팬들이 '트리뷰트 밴드'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는 건 당연지사. 아바걸스는 국내팬들의 요청으로 지난 2008년과 2010년에 내한해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올해로 세 번째 아바걸스의 내한 공연을 성사시킨 이광호 허리케인 INC 대표는 "국내에선 '헌정밴드' '헌정공연'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해외에선 이미 주요 장르로 자리잡은지 오래"라며 "특히 아바걸스는 음악적 완성도가 뛰어난 팀이라 전 세계적으로도 널리 인정 받고 있는 팀"이라고 소개했다.
이 대표는 "아바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아바걸스의 무대를 통해 진한 향수를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특히 이번 공연에선 세월호 참사로 슬픔에 잠긴 유족과 한국 국민들을 위로하고자 일부 레퍼토리를 추모곡으로 꾸리는 순서도 마련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전문 공연 프로듀서로 알려진 이 대표는 지난해 말 마이클 잭슨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스릴러 라이브' 내한 공연을 추진해 각계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이 대표는 올 하반기엔 비틀즈 헌정 밴드의 내한 공연도 추진할 계획이다.
실력 있는 헌정밴드들의 공연을 통해 옛 추억을 공유하고 명곡의 감동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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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바걸스의 조지 바렛(Georgi Barrett).
[사진 = 뉴데일리 D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