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기시대』와 노벨상,
    그리고 은행열매 냄새

                                                    이  덕  기  /자유기고가

      불과 며칠전 40년만의 무더위라는 호들갑을 뒤로 한 채,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거리에 나뒹구는 은행열매의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말 그대로 늦가을이다.
    이제 곧 밀어닥칠 북풍한설과 한해의 마무리를 앞두고 너무도 빠른 세월의 흐름에 대한
    탄식과 함께 몇가지 상념에 젖는다.

      지난 여름 우리는 대한민국의 시계를 『석기시대』로 돌려놓은 내란음모사건을 겪었다.
    존경하옵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님의 이상하고 섬뜩한 ‘영웅놀이’는 물론이거니와
    그 주위에 있던 조연(助演)들의 해괴한 행태를 보았다.

    총(銃)으로 무장하고 세습독재의 ‘통일전쟁’에 나서자는 선동을 ‘농담’이라고
    뻐덩니를 내보이며 강변하는 ‘혁명을 위해 사법시험 공부를 한 똑똑한 여자’.....

    분명코 대한민국을 엎어버리자는 작당 모의를 ‘철지난 병정놀이’ 쯤으로 희화화하면서
    국가기관이 ‘황당한 정치공작’을 하고 있다고 비아냥거리는 ‘싸가지 없는 남자’....

      그리고 『석기시대』의 주연을 국회의사당에 진입시키기 위해
    ‘족집게 신분세탁’(사면복권)시킨 주역의 말장난도 우리를 실소하게 만들었다.

    정상회담을 빙자한 자기 주군(主君)의 적장(敵將)에 대한 아부가 탄로 날까 두려워
    대화록을 숨기고 없앴던 주제에 “대화록은 있고, NLL포기는 없었다.”고 말하는 당당함은
    황당 그 자체였다.

      이제 그 내란음모에 대한 공판의 본격 진행으로 우리 앞에 『석기시대』가 재연될 것이다.

    일찍 찾아오고 더욱 매서울 거라는 올 겨울 추위와 함께
    ‘통일애국인사’와 그 주변세력의 많은 소신(?)과 궤변들이 우리를 얼마나 당혹스럽게 할까...
    (* 여기서 통일은 ‘적화통일’, 애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사랑함’이 맞다.)

      가을은 단연 노벨상의 계절이다.
    우리가 알기는 노벨상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해 최고의 노력을 보여준 이들에게 주는 값진 상으로 알고 있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노벨상 수상을 수상자 조국의 국격(國格)과 연관시키는 일종의 ‘콤플렉스’도 있다.

    올해도 노벨상의 계절과 함께 많은 언론들과 호사가 먹물들의 입방아가
    경기도 안성에 좋은 집을 짓고 사는 노(老)시인에 닿았다.
    몇 년 전 부터인지 노벨문학상 ‘유력후보’ 쯤으로 떠들고 나서는 정작 상 받을 사람이 발표되면, 한국 문학은 번역 때문에 노벨문학상에서 제외된다는 등의 그럴듯한 이유를 대곤한다.
    과연 이런 이유가 타당하며, 그 노시인은 노벨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추구하고 작품에 그것을 담고 있는가?

      우리는 노벨상 심사기관이 결코 우리를 두 번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지난 2000년 적(敵)에게 ‘돈으로 산-돈만 들이고 완전하게 사지도 못한-평화’,
    그리고 애걸과 굴종의 평화에 대해 인류 최고의 가치를 상징하는 노벨평화상을 주기로 했고,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었다.

    아직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또다시 세습독재에게 아부하고 무릎 꿇는 것이 옳다는
    기회주의 위선자, 굴종세력에게 노벨상이라니...
    그 시인 작품의 우수성은 많은 평론가는 물론 고난의 행군을 외치며 동포 200만명 이상을 굶겨 죽인 국방위원장께서 생전에 아주 높이 칭찬을 하셨다니 달리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2009년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인류 보편적 가치와 불쌍한 북녘 동포에 대해서는 거의 외눈박이 수준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 <전략>
    ―선생께서는 한때 '민중' '민주' '인권'을 많이 노래했습니다.
    그렇다면 김정일 뒤에 가려진 북한 민중들의 참담한 삶에 대해 시를 쓴 적이 있습니까?

    "이쪽 체제와 저쪽 체제가 만나서 민족 문제를 고민하고 합의를 보는 자리인데,
    북한 인민의 열악한 계급성을 갑자기 말할 수는 없지요. 그건 별도지요. ....
    <중략>

    ―그 뒤에 한 번이라도 북한 주민의 고통을 노래한 적이 있나요?
    선생의 시는 김정일의 칭찬을 받았고, 다른 글들은 북한 풍경이나 인정(人情)에 대해서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외국 원수가 와서 서울의 달동네에 가봐도 그렇지 않나요.
    북한만 그런 게 아니라, 거기도 참담한 삶이 있습니다.
    우리 대통령이 도시 빈민을 어떻게 다 해결합니까."


    ―혹시 북한 주민의 참상과 우리 빈민의 문제가 같다고 보는 건가요?

    "그건 아니고요. 국가 최고 지도자에게 모든 걸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파편적으로 들려오거나 소문으로 알 수가 없죠.
    내가 현장에 가보지 않는 한. 현장에 가려면 이 체제와 만나야지요.
    또 북한을 들어가도 내 마음대로 다닐 수 없었습니다."

    ―북한 주민의 참상에 대한 자료는 많고 숱하게 보도됐습니다.
    당장 우리 주변에는 이를 증언할 탈북자들이 1만5000명이 넘습니다.

    "일일이 지적해서 남북 관계에서 무슨 기여를 합니까.
    나는 정치인이 아니에요. 개선해줄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러면 1970, 80년대 왜 민중의 고통에 대해 노래했지요?

    "그건 내가 여기에 살고 있으니까요. 상황 논리이지요."  ....... <후략> 
                                                         = 이상 2009. 8.24일 자 조선일보

      노벨문학상을 심사하는 스웨덴 아카데미가 이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하지 않은 것은
    우리 민족 전체, 그리고 나아가서 노벨상의 취지와 권위를 위해서도 정말 현명한 결정이었다.

      도시의 거리에 떨어진 은행열매 만큼이나 좋지 않은 냄새가 우리 주변을 감싸 돈다.
    세습독재를 추종하거나 그에 굴종하는 세력,
    그리고 그 언저리에서 대한민국을 폄훼하는 ‘쓸모있는 얼간이’들의 넋두리는 물론이고,
    자칭 타칭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이들 중에 일부가 내뿜는 역겨운 냄새는
    우리를 혼돈스럽게 한다.

      대한민국은 세습독재와 그 추종·굴종세력 연합군과의 전쟁 중에 있다.
    정치·사상전쟁, 이념전쟁, 역사전쟁.... 건곤일척의 승부다.

    조국 대한민국의 민족사적 정통성과 이념적 정체성을 보전하는
    큰 싸움에서 우리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의롭지 못한 힘은 폭력에 불과하고,
    그 폭력으로는 세습독재와 언저리 세력을 이길 수 없다.

    폭력적 힘은 대한민국 세력의 힘을 무력화시킬 뿐 아니라,
    세습독재 추종·굴종세력의 불의·위선·기회주의,
    그리고 반(反)대한민국 책동마저 정당화시켜 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대한민국의 승리를 위한 반성과 자숙, 그리고 희생을 행동으로 보여야 할 때다.

      이 늦은 가을,
    조국의 미래를 건 큰 싸움에서 대한민국에 승리를 가져다 줄
    ‘정의로운 힘’을 다시 한번 간절하게 기대한다.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