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담 시기도 우려스럽고,

    의제 합의도 안 된 남북대화라니

    ‘남북당국회담’은 벼랑 끝에 몰린 북한의 ‘탈출구 찾기’ 게임


    김용삼 /전 월간조선 편집장


    박근혜 정부가 드디어 남북 대화에 나설 모양이다.
    발표대로 6월 12일부터 1박 2일 간 남북당국회담이 열리면 2007년 6월 1일 서울에서 열린 제21차 회담 이후 6년 만의 남북 대화가 재개되는 셈이다.

    그런데 남북회담 재개 소식에 대해 언론은 반색을 하고 있지만, 뭔가 찜찜한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회담 시기가 하필이면 김대중-김정일이 남북 연방제 통일방안에 합의한 6․15 남북 정상회담 일자를 코앞에 둔 때문이다.
    회담 명칭이 ‘남북 장관급 회담’이 아니라 ‘남북당국회담’이라고 합의한 데서 이번 회담이 갖는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게다가 의제도 합의되지 않은 채 열리는 회담에 무슨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 국민은 그동안 북한정권으로부터 너무나 심각한 주권침해를 수없이 당해 왔다.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과 핵무기 탑재용 탄도미사일 개발은 대한민국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금강산 관광은 북한 군인이 대한민국의 비무장 민간인 박왕자 씨를 총격 사살한 사건 때문이고, 개성공단도 어느 날 김정은의 지시 한 마디로 모든 가동이 중단됐다.
    북한이 우리와 사전 협의 없이 임진강과 북한강의 물길을 막는 댐을 건설하여 수량이 현저히 줄어든 것은 물론이요, 임진강 지역의 경우 사전 통보도 없이 수문을 열고 물을 방류하여 우리 국민과 국군의 생명과 재산상의 손실을 가져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북한이 금강산 댐 건설로 북한강 수계를 막는 바람에 북한강 쪽 수량의 46%가 줄어든 것에 대해 우리 정부는 북한에 정식 항의하고 수량 확보를 위한 조치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국민이 없다.  

    이번 회담을 통해 우리 납세자들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이 왜 중단됐는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우리는 비핵화를 유지하는 정책이 맞는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북한의 명백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낼 수 있는지 지켜볼 것이다.

    외국의 사례 같으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전 협의 없이 수계를 막아 수자원의 씨를 말리는 행위는 개전 사유에 해당할 정도로 중대한 침략행위에 해당한다.

    상황이 이토록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남북 양측은 판문점 실무접촉에서 문제의 본질과 관련된 내용은 한 마디 언급도 없다. 그저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 문제 등 당면하게 긴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북측은 시급하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언급도 없이 “6·15 및 7·4 발표일 공동기념문제, 민간내왕과 접촉, 협력사업 추진 문제”등을 내놓았다. ‘당면하고도 긴급한 문제들’이 과연 1박 2일의 짧은 회담 기간 중 얼마나 심도 깊고 성의 있게 논의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남북회담을 익히 보아온 경험에 의하면 이번 회담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정상일 것 같다.

    “6․15 공동선언 정신을 되살리라”는 지루한 밀고 당기기 끝에 결론 없이 막을 내리거나,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개성공단 재가동을 조건으로 막대한 달러가 북한에 흘러가도록 하는 선에서 어정쩡한 타협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이번 남북당국회담을 우려한다.


    첫째, ‘남북당국회담’은 그 동안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반복되어온 방식대로 우리 측에서는 장관이 수석대표로 참가하는 반면 북측에서는 행정부 상의 직책도 없는 내각참사라는 차관보급이 참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측이 수석대표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짐작이 가는 일이다.

    문제의 ‘남북장관급회담’은 김대중 전대통령이 김정일과 만난 2000년 6·15 공동 선언에서 약속된 것이다. 지금까지 21회가 열렸으니 6․15 공동선언의 옥동자에 해당하는 셈이다. 내용은 차치하고 ‘장관급 회담’이란 해괴한 용어의 정체부터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는  문자 그대로 남북한의 장관이 참석하여 회담을 벌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6․15 공동선언 한 달 후인 2000년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신라호텔에서 제1차 남북 장관급 회담이 열렸을 때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우리 측은 수석대표인 박재규 통일부 장관이 나선 반면 북한 측 수석대표는 1998년 베이징 차관급 회담에 나왔던 전금진(일명 전금철) 내각 책임참사였다. 내각 책임참사는 북한의 정식 행정조직에도 존재하지 않는, 족보를 알 수 없는 해괴한 직함이었다. 부랴부랴 내용을 확인한 결과 우리 정부 직제로 치면 국무총리 특별보좌관, 그러니까 국장급보다 약간 높은 차관보급(1급) 정도로 알려졌다.
    나머지 네 명의 대표단 구성원도 대동소이했다. 우리 측이 차관 2명, 1급 국장급 2명으로 구성된 반면, 북측은 차관급은 한 명뿐이고 나머지 세 명은 2∼3급 국장급이거나 우리의 직원 급에 해당하는 사무국 성원 신분이었다. 지금까지 열린 모든 남북 장관급회담은 이 원칙을 벗어나지 않았다.

    외교 회담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공식적인 직책이 낮은 사람을 보내는 것은 상대를 무시, 혹은 격하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남북 화해무드 조성에 급급한 나머지 격이 맞지 않는 북한 측 상대와 협상 및 회담을 하는 등 국가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체면과 위신, 존엄성을 지키지 못했다.

    만약 이번 남북당국회담에서 북한이 또 다시 ‘장관’이 아닌 내각참사 운운하는 유령 직책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면 그 즉시 회담을 깨고 국가 위신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또 다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장관급 회담’을 되풀이 한다면 박근혜 정부는 대북관계에 관환 한 김대중, 노무현과 동류로 취급될 것이다.

    둘째, 지금은 남북대화나 협상을 서두를 때가 아니다.
    남북 대화는 곧 막대한 현금 지원을 뜻한다.


    한국 사회에서 어느 때서 부턴가 북한과의 타협과 협상, 회담에 의해 핵문제나 이산가족, 통일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믿는 우상이 생겨났다. 공산당이 타협이나 협상, 회담에 나설 때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자신들이 강할 때는 사정없이 침략, 침투, 도발을 하다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위협에 처했거나, 힘이 빠지거나, 국면전환이 필요할 때 어김없이 타협과 협상에 나선다.

    지금 김정은의 연이은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해 국제사회는 경제제재라는 몽둥이를 들었다. 심지어 북한의 혈맹인 중국마저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을 용인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김정은은 벼랑끝에 몰렸다.
    김정은의 어설픈 판단 미스로 북한의 ‘현찰 박스’였던 개성공단마저 가동 중단 되면서 북한은 체제의 존속을 위협받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했다.

    이제 손을 내밀 곳은 언제라도 자신들의 우군세력이 진을 치고 있는 물러터진 대한민국뿐이다.

    필자는 북한이 7월쯤 남북대화 재개에 나서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일찍 카드를 빼 들었다. 북한 입장에서는 6․15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꽃놀이패를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하려면 북한은 비싼 입장료를 요구할 것이다.
    좌파들은 때를 맞춰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목 하에 식량과 비료, 의약품은 물론 개성공단 재가동 명목으로 막대한 달러를 지원하라고 아우성을 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6․15 정신으로 돌아가라”면서 박근혜 정부를 압박할 것이다.
    북측과 국내의 좌파 세력들이 주장하는 6․15 정신이란 말을 의미 그대로 해석하면 “하루빨리 남북 연방제를 받아들여 연방제 통일을 추진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조건 없이 북한에 현금과 식량과 물자를 지원하라”는 뜻이다.

    원래 공갈범들은 입으로만 공갈을 칠뿐, 공갈의 수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실행에 옮기기 어려워지는 모순의 법칙에 직면한다. 지금 김정은의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왕따를 당해 탈출구가 없는 처지다.

    시간은 우리 편이지 북한의 편이 아니다.
    이 와중에 박근혜 정부가 조건 없는 인도적 지원을 수락하면 “이번에는 반드시 북한의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벼르면서 경제제재라는 극약처방을 준비하던 우방국들의 입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셋째, 남북회담에서 반드시 따질 것은 따져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얻어내야 한다.


    북한의 경제가 날로 피폐해지면서 무역수지가 엉망이라는 사실은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한 우상화작업, 그리고 국제사회와 남북 간의 평화를 위협하는 핵무기와 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첨단무기 개발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들은 무슨 돈이 있어 이 엄청난 투자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가 제공한 현찰로 그런 대사업을 착실하게 추진해 왔다는 것이 속속 밝혀졌다. 우리가 제공한 돈으로 우리의 목숨을 위협 받는 자해행위를 10여 년 반복해 왔으니 북한은 남한을 ‘쓸개 빠진 봉’ 쯤으로 여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동안 개성공단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를 해 왔다.
    과거 1980년대 중반 북한이 합영법을 발표하고 재일교포들의 투자를 유치했다.
    일본의 사쿠라 그룹이 남포에 봉제공장을 투자하여 2년 여 운영하던 중 북한은 돌연 이 봉제공장을 몰수하고 사쿠라 그룹을 추방시켰다.
    (주)대우가 대북사업을 한다며 남포에서 운영했던 봉제공장은 바로 북한이 사쿠라 그룹으로부터 물수한 그 공장을 대우에 팔아먹은 것이다.

    대북사업은 늘 이런 식의 몰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 정부는 개성에 도박판에 가까운 공단을 운영해 오다가 이번에 폐쇄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대화를 재개하면서 개성공단 정상화를 논한다면 반드시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지킬 수 있는 확고부동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불행하게도 북한과의 관계에선 확고부동한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개성공단은 이번 기회에 폐쇄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대신 경기도 연천이나 파주 등 대한민국 영토에 공단을 조성하여 북한 근로자들을 출퇴근시키는 방식으로 인식과 발상의 대전환을 하는 협상에 임해주기를 기대한다.

    남북대화보다 중요한 것은 발등의 불로 떨어진 북한 핵이다.
    남북대화가 열릴 때마다 대한민국의 당국자들은 북한에 대해 “핵무기 개발 전 과정을 공개하고 핵무기 폐기, 각종 미사일 기술 폐기에 대한 확고한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5천만 국민이 앉아서 북한의 핵 세례를 받고 죽을 수는 없다.
    말로 안 되면 우리도 국가 생존을 위해 다음 수순을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북한 핵 폐기가 불가능하다면 박근혜 정부는 다음 수순이 무엇인지 납세자를 안심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공개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