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사 시킨 뒤 보인 '졸렬함'에 민주 내부서도 "고개를 들 수 없다"
  • 안철수 후보의 석연치 않은 사퇴 이후 가뜩이나 계파간 갈등을 보였던 민주당이 분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안 후보와의 단일화 결과가 최악의 모양새를 보인데다, 문 후보가 이를 수습하는 과정까지도 매끄럽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낯부끄럽다’는 자괴감까지 퍼지는 분위기다.

    대부분 세력들은 ‘대선을 앞뒀으니 이제 어쩌겠느냐’며 입조심을 하고는 있지만, 일부 의원들은 탈당론까지 거론하는 등 불만이 거듭 쌓이고 있다.

  • ▲ 사퇴 기자회견을 하는 안철수 후보의 눈시울이 불거져 있다. ⓒ 연합뉴스
    ▲ 사퇴 기자회견을 하는 안철수 후보의 눈시울이 불거져 있다. ⓒ 연합뉴스

    가장 큰 불만은 ‘통큰 형님’을 강조했던 문재인 후보 측이 안 후보의 사퇴 직후부터 보인 매끄럽지 못한 행동들이다. 불만 세력들은 이를 ‘졸렬함’이라고 표현한다.

    문 후보 측이 안 후보 사퇴 이후 만 이틀간 내놓은 논평과 브리핑 내용은 무려 20건 가량 된다. 대부분이 안 후보의 사퇴를 ‘대승적 양보’라 평가하고 이를 ‘구태 정치에 가로막힌 안철수’라 공격하는 새누리당에 반박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불만 세력들은 오히려 새누리당의 지적에 공감하는 편이다.

    민주당 4선 중진 김영환 의원이 스스로 밝힌 입장이다.

    "적어도 지금, 우리는 안철수 후보에게 도움을 요청해서는 안된다.

    어찌하여 50년 전통의 100만 당원의 127명의 국회의원을 가진 우리 민주당이, 단 하루도 국회의원 세비를 받아 본 적이 없는 안철수 후보에게 대선 승리의 키를 구걸하게 되었는가!

    당장 정치를 그만두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그러고도 참회록 하나 반성문 하나 없는 민주당이 정말 제대로 선 당인가!"


    김 의원은 특히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준비해 민주당 내부에서 당원들의 집전화 착신전환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음을 폭로하며 문 후보 캠프의 반성을 촉구했다.

    "우리가 어제 밤 새벽닭이 울 때까지 무슨 일을 했는가!

    여론조사를 대비해 착신전환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어제 당이 개인적인 의사 표시를 자제해 달라는 지시에 충실해서 언제나 그랬듯이 침묵하였다.

    이 비겁의 극치인 내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당이시여!

    제발 이 버르장머리 없는 해당분자를 제명해 다오. 지친 나도 기득권을 어서 내려놓고 싶다.

    이러고도 이 온전한 정당이라 할 수 있는가! 민주당은 진즉 없었다."

  • ▲ 사퇴 기자회견을 하는 안철수 후보의 눈시울이 불거져 있다. ⓒ 연합뉴스


    4선이나 되는 중진 의원도 이 같은 '일갈'을 하는 마당에 초선·재선 의원들의 불만은 말할 것도 없다. 김 의원의 말처럼 개인적 의사(?)를 자제하라는 당과 캠프의 엄명에 다들 쉬쉬하는 모습이지만, 분위기만큼은 건드리면 터질 듯하다.

    그동안 '초선 일지'로 민주당 기득권 세력의 행태를 비판했던 황주홍 의원도 김 의원의 ‘용기’에 가세했다.

    황 의원은 김 의원의 발표를 그대로 인용하며 ‘자랑스럽다. 완전 공감한다’고 평가했다.

    나는 그에게(김영환 의원) 곧 이런 문자를 보냈다.

    “김 장관, 자랑스럽소. 자랑스런 내 벗이여, 감격의 격문에 시원하고 분개하고 슬퍼지는군요. 단어 하나 문장 하나까지 완전 공감해요. 김영환, 멋있어요, 정말♥”
     
    "그런데, 김 의원(김 장관), 누가 누구를 제명(除名)한단 말이요? 그 좋았던 4?11 총선 전망에 오만과 어리석음으로 재를 뿌렸었고, 이제 또다시 그 좋았던 12월 대선 승리 가능성에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찬물을 끼얹어버린 자들이야말로 제명 받아 마땅한 거 아니요?"


    사실 민주당도 처음부터 이렇게 부산스러운 모습을 보이려 했던 것은 아니다. 안 후보의 기지회견 직후 브리핑에 나선 캠프 대변인은 극도로 말을 줄이는 모습이었다. “문 후보의 입장(발표)도 오늘 중으로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었다.

    사퇴한 마당에 이제는 안철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 섣불리 움직였다가 안철수 지지층을 잃게 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당분간은 안 후보의 지지자들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이었다. 사실 조용히만 있으면 저절로 ‘우리 쪽으로 오겠거니’ 하며 '표정관리'만 하면 된다는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보다 급박했다.

    안철수 지지자들은 그동안 그들이 상대했던 분노를 속으로 삭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캠프 출입기자들의 ‘기사’보다 더 빨리 스스로 ‘논조’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불과 한두시간 만에 ‘여론’을 형성했다.

    “아름다운 단일화 같은 소리하네.”

    완득이로 유명한 배우 유아인이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일갈은 안철수 지지자들에게는 큰 공감을 얻었고, 분노의 화살은 문재인 후보로 모아졌다.

    다급해진 문 후보 측은 안 후보 지지자를 끌어안기 위해 섣부르게 ‘양보에 감사한다’는 표현을 썼고, 이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 ▲ 사퇴 기자회견을 하는 안철수 후보의 눈시울이 불거져 있다. ⓒ 연합뉴스

    이 같은 성급한 대응은 이미 지지율 변화로 드러나고 있다.

    <조선일보>와 미디어리서치가 24∼25일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후보의 지지도는 43.5%, 문재인 후보는 39.9%로 나타났다. 무응답은 16%였다.

    <동아일보>와 리서치앤리서치가 24일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박근혜 후보 45.2%, 문재인 후보 41.8%로 박근혜 후보가 3.4%p 앞섰다.

    결론적으로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뤘을 경우 문 후보로 이동할 뻔 했던 상당수 지지율이 마음을 박 후보로 돌리거나 선택을 유보했다.

    안철수 전 후보 지지층 가운데 문재인 후보 지지로 이동한 비율은 45.3%∼55.7%에 그쳤고, 적게는 13.4% 많게는 31.6%가 지지를 유보했다. 박근혜 후보로 마음을 돌린 비율도 16.9%∼24.2%나 됐다.

    ‘사과가 먼저 있어야 한 것 아니냐’는 민주당 불만세력과 안 후보 지지층의 여론이 반영된 셈이다.

    <뉴데일리>와 만난 한 민주당 수도권 초선 의원은 “대선을 이기고 정권교체를 하는 것이 최우선인 것은 알겠지만, 이건 너무 졸렬한 행태다. 정당과 조직을 앞세워 새정치를 하겠다는 안철수 후보를 그토록 압박해 압사시킨 것은 진심으로 사과를 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