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창중 칼럼세상>

     비운(悲運)의 안철수

     

  • 가슴 촉촉이, 연민(憐憫)의 정을 느낀다. 치욕에 떨고 있을 안철수에게! 지금. 

    태어나면서부터 대선 출마 선언 전까지만 해도 굴곡 없는 'A+’ 학점의 인생을 살아가며 승승장구해왔던 안철수, 그는 지금 일생일대 최악의 분노 속에서 치를 떨고 있을 것!

    여론조사에서 항상 문재인보다 앞서는 걸로 나오니 대선판에 발을 디디기만하면 민주당이 예, 예, 말씀 하시는 대로 합쇼, 문재인 대뜸 버려버리고 당까지 자진 헌납하며 꽃가마 태워 모셔갈 것으로 알았던 안철수,

    여론조사 결과마다 박근혜를 꺾을 수 있는 안철수로 나오니 더 이상 논의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당연히 문재인이 단일화 자리를 양보할 것으로 믿고 대선 출마 선언을 했던 안철수,

    이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안철수는 처음으로 좌절이라는 용어를 생각하고 있을 것!

    안철수가 박근혜를 꺾을 수 있는 ‘경쟁력’에 있어 문재인보다 앞서는 걸로 나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민주당이 안철수에게 양보한다?

    이런 가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세상을, 정치를 어린아이 주먹만한 크기로 보는 모범생의 한계!

    ‘경쟁력’이라는 걸 확신하고 정치판에 뛰어 들었지만 그 ‘경쟁력’이라는 것도 문재인한테 뒤지는 걸로 나타나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눈앞에 등장하고, 야당 단일후보로 누가 적합하느냐 하는 ‘적합도’에 있어서도 밀리는 결과들이 속출하고 있고.

    더욱이 청중 좌석의 3분의 1밖에 채우지 못한 부산대 강연!


  • 부산출신으로 금의환향해 대학생들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환호, 그 절정의 순간을 연출하려했던 안철수! 이것 봐라 이게 민심이다! 외치려고 했던 안철수. 그러나 썰렁하게 돌아선 대학생들의 표변에 안철수는 일생일대 처음으로 좌절이라는 표현을 떠올렸을 것!

    안철수는 이 현실을 몸서리치도록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 그래서 안철수가 단일화 협상을 시작한 지 단 하루만에 깨버린 것! 여론조사만을 신주 단지처럼 믿고 대선판에 들어온 안철수로서는 너무 황당하니까.

    여론조사에서 밀리는 ‘이상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게 문재인 민주당의 ‘옛날방식 정치경쟁’ 때문이라고 덤터기를 씌우면서. 안철수, 그는 정말 고도의 전략가임을 거듭거듭 확인하게 해준다.

    ‘벼랑 끝 전략’!

    이 모든 걸 기습적인 한방으로 역전시킬 수 있으려면 판 자체를 깨버려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문재인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 같이 뛰어내려 죽을래하고 협박하는 수밖에 없다!

    북한이 회담에서 밀리면 느닷없이 신뢰 문제를 꼬투리잡아 일방적으로 깨버리고 회담장 박차고 나가는 그 수법대로, 벼랑 끝 전략!

    남측에 모든 책임 떠넘기고 가시적 조치를 내놓을 때까지 회담 재개하지 않겠다는 그 뻔한 벼랑 끝 전술을 안철수가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민주당이 거대한 전국조직망 총동원해 여론조사 기관에서 전화 올지 모르니 외출할 때도 착신전화로 돌려놓고 나가라고 문자 보낼 정도로 세부 항목까지 일일이 단속하고, 안철수가 양보할 것이라는 ‘흑색선전’ 뿌려 대고, 안철수가 결국 민주당에 들어가 ‘문철수 신당’ 만들 거라고 말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여론조사에서 밀리고 있다고.

    그럼 민주당이 그럴 줄 몰랐다고? 완전국민경선제한다고 어느 나라에서도 하지 않는 모바일 투표 만들어 당대표 이해찬 만들어내고, 대선 후보 문재인 띄우는 친노(親盧)세력의 그런 조작 수법들을 모르고 후보 단일화 협상하자고 치고 나왔다고?

    여론조사에서 밀리니까 역전의 한방을 날리려했지만, 오히려 입만 열면 새 정치하겠다는 안철수의 ‘새 정치 신선미’에 치명적으로 금이 가 여론조사에서 더 밀리는 형국이 된 안철수!

    정치혁신이니, 정권교체니하는 가면 속에서 꿈틀거리는 욕심을 숨기기 위해 끝도 없이 순진함을 가장하는 안철수에게 연민의 정을 보낸다! 일말의.

    안철수가 협상을 깬 건 벼랑 끝 전술에다가, 또 하나 ‘시간벌기 작전’! 민주당을 향해 한방을 날림으로써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어 조직동원 멈추게 만들고, 단일화에 애걸복걸하는 민주당을 향해 시간은 내편이다, 내가 버티면 단일화고 뭐고 못한다는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주도권을 다시 잡아보려는 속셈!

    치고 빠지는(hit & run) 수법이, 정치 9단 김영삼·김대중을 뺨치고도 남는다. 이게 새 정치?

    정치판이 악마의 정글인지 몰랐다? 그래서 정치는 살아온 인생 모두를 담보하고 내걸어도 결코 성공하기 어려운 직업-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실패하고 안철수 능가하는 대쪽의 개혁 이미지로 출발한 이회창이 패배한 것.

    정주영과 이회창이 어느 면에서나 안철수보다 뒤떨어져서 좌절한 게 아니다. 내가 하면 성공할 줄 알았지?

    여론조사 결과 하나 갖고 대한민국 대권을 얻겠다는 안철수는 흔히 투기꾼들이 자신의 입지전적 성공을 과신해 일생일대의 묻지마 투기에 올인했다가 도달하고야마는 문턱 앞에 서있다. 몰락인 것이다!

    안철수는 이미 안철수가 아닌게 됐다. 그 자체만으로도 안철수는 이미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가 들여져 있다. 비운(悲運)의 길에 이미 들어섰다.

    설령 관운(官運)이 터져 이 나라 대통령이 된다 해도 더 험한 꼴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치하지 말고, 그냥 대한민국의 IT영웅으로 남는 게 ‘개인 안철수’와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의 선택이라고 그토록 당부하는 글들을 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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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알림: 안철수가 지난해 대권 도전을 놓고 고민하던 시점에 쓴 칼럼을 다시 올립니다.
    <윤칼세> 독자 동지 여러분들의 깊은 사색을 기대하면서.


     <시론>

    안철수의 길

    윤창중/논설실장


    대한민국 IT영웅(英雄) 안철수 박사께! 한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서울시장 출마를 놓고 고심중이라는 뉴스를 접하고 불덩이처럼 치밀어오는 ‘너마저’라는 당혹감과 실망감, 그리고 영웅의 얼굴에 상처를 내선 안된다는 나름대로의 신중함 사이에서 사흘째 번민했습니다.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이 글을 꼭 써야 하는 게 애국이라고 결심했죠.
     
    굳이 저의 경력을 언급하려는 게 아닙니다. 안 박사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진정성과 호소력을 갖춰야 한다는 소견에서 저에 대해 먼저 말하려 합니다. 민망합니다만. 대학 4학년 2학기, 26살에 신문사에 들어와 국회출입기자증 받은 뒤 올해 30년-정치부 기자… 정치담당 논설위원 13년째 파란만장한 권력사를 관찰하고 있죠.
     
    대한민국 수재, 돈 많이 번 사람, 입지전적으로 양명(揚名)한 사람, 이들을 꼭 패가망신의 길로 안내한 게 정치판에 발 담근 거였고, 그들의 사유세계(思惟世界)를 관통하는 저류는 신데렐라 증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든 천재의 차가운 지성에 애정어린 충고를 하려 합니다.

    왜 전문영역에서 대한민국 제1, 세계 제1의 입지를 굳혔던 그들이 정치판에 들어가면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실패해 저잣거리 술안줏감이 됐을까요? 왜! 안철수보다 못해서요?
     
    전문영역에서 성공하면 구름처럼 몰리는 인기에 매몰돼, 내가 정치하면 불멸의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의욕, 이 썩은 나라를 확 바꾸고야 말겠다는 야심에 빠지더군요.
     
    자신이 전문영역에서 성공했다해서 탁월한 정치적 능력까지 갖고 있는 것으로 믿는 거대(巨大)사고! 국민이 부른다는. 그건 오만이죠.
     
    전문영역에서 성공한 분들, 그러면서 정치 한번 하고 싶어하는 야심가들 만나보면 대단히 실망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거의 100%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구나, 경험부족·함량미달이구나! 정치로 잔뼈 굳은 정치꾼들보다 순수하고 무모하기까지 합니다. 자신의 전문영역에는 대가이지만!
     
    정치인들을 향해 욕하는데, 그거 쉽게 욕하는 겁니다. 인간의 탐욕세계를 다루는 게 정치! 착한 사람이 아니라 악한 사람, 그것도 보통 사악해서는 살아남지 못하는 게 정치!
     
    연구실에 앉아 자기 머리만 쓰면 되는 천재성, 회사에서 직원들의 생사여탈권 쥐고 있다 해서 한마디 지시하면 일사천리로 통한 것 가지고 정치판에 들어가도 먹힐 무슨 대단한 정치력·리더십으로 착각해선 안되죠. 대한민국 IT영웅 안철수도 정치판에 들어가는 순간 남는 일은 자신도 실망하고 국민도 실망하게 하는 일밖에 없다고 단언합니다. 제 취재 경험이죠!

    상대성이론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조국 이스라엘 독립 후 제2대 대통령 제의를 받은 사실을 알 겁니다.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한마디로. “난 인간에 대해 모른다!” 시궁창에서 연꽃 피게 하는 직업이 정치라는 걸 아인슈타인은 간파한 거죠. 아인슈타인이 안철수를 위해 준비한 명언!
     
    왜 안철수의 IT 천재성이 정치판에서 사장(死藏)돼야 합니까? 만신창이만 되고. 대한민국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충정엔 전폭 공감합니다. 그러나 IT영웅은 그 자리에 남아야 합니다. 대한민국도 이젠 각계의 영웅이 필요합니다. IT계의 ‘원로’로 성장하세요. ‘정치 불나방’들이 지금 한창 날아들어 부추기고 있죠? 20~30대 영웅이니까 한번 띄워 자신들도 인생역전하려고.
     
     ‘안철수 도박’. 헛발질이라도 해서 인기 떨어지는 순간 맨 먼저 도망칠 사람들―정말 권력 무상, 염량(炎涼)한 게 정치꾼들임을 모르죠? 물리쳐야 합니다. 무소속 출마? 그 엄청난 선거자금, 검은돈 받지 않으면 불가능! 검찰청 앞에 선 안철수, 상상해 봤나요. 남 얘기 아닙니다! 사생활은 낱낱이 공개되고.
     
    영웅→정치꾼으로의 전락, 눈에 선합니다.
    안철수에 환호하는 20~30대의 눈망울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안철수 팬 여러분에게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단테의 말을 전해주세요. 
    “그대의 길을 가라. 남들이 무엇이라 하든 내버려 둬라(Follow your own path, and let the others talk.)”
     그게 안철수의 길, 안철수를 지킵시다. 안철수는 대학에서 밤 새우며 후학을 키우는 게 더 애국하는 것입니다.

    게재 일자 : 문화일보 2011년 09월 05일(月)



  •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
    정치 칼럼니스트/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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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log.naver.com/cjyoon1305

    정치부기자 30년.
    그 중 14년을 정치담당 논설위원, 논설실장으로 활동한 정치 전문 칼럼니스트.
    정치 외교 안보 분야에 관한 칼럼을 쓰고 있다.
    청와대 외교부 정당 등 권부를 모두 취재했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독특한 문체와 촌철살인의 논평으로, 대한민국의 퓰리처상이라는 서울언론인클럽 칼럼상 수상.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자문위원 공직자 윤리위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