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Consensus) 소통(Communication) 통제력(Control)...근본적으로 다르다!
  • <윤창중 칼럼세상> 

    CEO가 대통령 돼선 안되는 이유 

     

  • 안철수의 지지도는 훅 하고 바람 불면 휙 날아갈 사상누각(沙上樓閣)인가?  
    도대체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를 계기로 언론에 의해 대선 주자로 부상한 뒤 1년 여 동안 그가 박근혜와 쌍벽의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과연 무엇인가?

    이 부분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있어야 그가 과연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을 꺾어 야당 단일후보의 티켓을 꿰찰 수 있을 것인가, 나아가 박근혜와의 대결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진다. 

    안철수는 그동안 긴 침묵을 깨고 지난 19일 국민 앞에 나타나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정말 ‘무엇’을 믿고 대선에 출마한 것일까? 

    안철수의 생애를 추적해본 결과, 그는 나름대로 ‘오늘’을 철저히 준비해왔다는 결론이 나온다. 처음부터 비록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겨냥한 준비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안철수는 ‘대중(大衆)의 영웅’이 되기 위해 실로 부단한 노력을 20년에 가까운 길고 긴 세월동안 기울여왔다. 이건 안철수를 연구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대목이다. 

    그가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스테디셀러 작가로 부상해 대중의 눈과 귀를 잡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이 책을 시작으로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등 지난 7월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을 내기 전까지 모두 11권의 책을 썼다. 웬만한 저술가를 뺨치는 다작(多作)이다. 

    안철수는 이 책들을 통해 컴퓨터에 열광하는 젊은층을 향해 자신의 ‘영혼’을 말해주었고, 그 결과 그는 젊은층 사이에서 정신적 영웅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이면 지금 40대가 컴퓨터에 한참 눈 뜰 20대였을 나이였다. 왜 지금 보수화(保守化)가 되고도 남을 나이인 40대까지 안철수에 열광하는지에 대한 해답의 일단을 찾을 수 있다. 

    물론 그 때부터 대통령에 출마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책을 써왔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2001년 12월 <안철수 팬클럽>이 생기게 된다. 

     그 후 이 팬클럽은 10여년 간 ‘안철수교(敎)’의 광신도들이 모인 동아리라고 할 정도로 회원수와 충성도를 높여가면서 오늘 안철수가 확고한 지지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결정적인 조직으로 성장한다. 

    불을 붙이려면 불쏘시개가 반드시 필요한 법! 바로 이 ‘안철수 팬클럽’이라는 조직이 존재해 왔기 때문에 안철수 지지도가 여간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분석을 내려야 한다. 

    2005년 안철수가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에 마련된 ‘안철수 팬클럽’ 모임엔 회장이 만삭의 몸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안철수에 대한 충성심을 말해주는 일화다. 

    안철수는 지난해 12월 ‘안철수 현상’이 대한민국을 강타하던 상황에서 ‘안철수 팬클럽’ 창립 10주년 행사에 모습을 보였다. 자신에게 대중적 지지를 유지시켜주는 조직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는 것.

    2008년 안철수는 귀국한다. 그는 곧바로 젊은층을 향해 파고드는 ‘대중연설가’로 본격 변신한다. 전국 곳곳의 대학을 찾아다니며 ‘청춘콘서트’를 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안철수는 ‘컴퓨터’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 역할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모색했다고 봐야 한다. 

    왜 안철수는 젊은층을 상대로 한 대중연설가로 변신하는가?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대중의 영웅, 더 정확히 표현하면 권력자가 되겠다는 야심에서였다. 

    미국에서 돌아온 안철수.

    “예전에는 중요한 정보와 힘을 기득권이 독점했어요.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는 일반 사람들도 그것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됐죠.…21세기 리더십은 그 사람이 가진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서 나오는 것 같아요.…결국 리더십의 요체는 대중이 주는 것이죠.”

    ‘정치권력’에 대한 자신의 포부를 말해주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안철수는 취업과 생활에 허덕이는 젊은층을 향해 외쳤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녹록치 않은 환경을 물려준 것 같아 미안합니다. 힘내세요!”

    젊은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했다. 

    안철수는 이미 지난해까지 27개의 도시를 순회하며 청춘콘서트를 강행했다. 그 결과 5만여 명의 ‘안철수 신도’들이 참여했고, 안철수가 나타나면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들이 2,700여명이나 됐다. 

    이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안철수’를 전국에 퍼다 나르며 전파했다. “21세기 리더십은 대중으로부터 나온다”는 안철수의 판단이 적중!

    안철수를 백면서생으로 봐서는 안 되는 중요한 단초라고 할 수 있다.

    

  • 안철수가 첫 책을 낼 때인 1995년부터 최근까지 ‘대중의 영웅’이 되기 위해 노력해 온 기간을 박근혜와 문재인과 비교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분석이 나온다. 

    박근혜가 정치권에 들어간 건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를 통해서다. 지금까지 15년 간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겪은 ‘프로 정치인’이라고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안철수를 완전 초보 정치인이나 ‘아마추어 정치인’으로만 해석하는 건 이처럼 안철수의 인생역정을 자세히 되돌아보면 맞지 않는다. 

    박근혜는 안철수의 아마추어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무엇이든 10년은 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안철수가 이 말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왜? 자신도 대중을 상대로 한 정치를 해왔다고 자부할 것이기 때문에. 

    문재인 역시 안철수가 그런 길을 걷는 기간에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실장을 지내며 행정 경력을 쌓았고, 청와대에서 나온 뒤에는 친노세력을 규합하는데 앞장섰다. 

    그리고 이번에 친노세력의 지지를 받아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고 해서 안철수를 쉽게 무너뜨려 야권 단일후보 티켓을 차지할 수 있다고 본다면 후회할 수 있다. 

    안철수가 선선히 후보 자리를 양보할 것으로 믿는다면 더 후회할 수 있다. 이미 대선 출마 선언장에서 “후보 단일화는 국민동의가 필요하다”고 강한 권력의지를 과시했다. 

    안철수가 자신은 닳아빠진 정치인과는 동떨어진 ‘백조(白鳥)’ 같은 인물임을 강조하기 위해 대선 출마 선언식에도 정치인 출입을 막았지만, 그의 인생역정을 추적해보면 실은 ‘아마추어’를 가장한 노련한 ‘프로’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철수가 명심해야 할 것은 팬클럽이나 학생들 모아놓고 한 ‘정치’와 야수(野獸)들이 우굴거리는 정글의 여의도 정치판에서 피 흘리며 하는 ‘정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 이런 점에서 안철수는 명백히 박근혜나 문재인보다는 ‘정치’와 ‘행정’에 있어 비교할 수 없는 아마추어다.

    그러면 안철수는 비록 자신이 대중의 영웅이 되기 위해 준비해왔다고는 하지만, 왜 현실 정치에 관한 한 아마추어인 자신이 대통령까지 되겠다고 나섰을까하는 부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안철수의 대선 출마는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 전체를 통틀어 조망해 볼 때 결코 새롭게 튕겨져 나온 현상이 아니다. 

    무슨 의미? 안철수가 ‘기업 CEO 출신’인 대목에 천착해봐야 한다. 대한민국이 놀라운 경제성장을 하면서 급성장해 온 ‘기업권력’이 과거에는 하늘과 같이 보였던 ‘정치권력’에 도전하고, 나아가 ‘정치권력’ 자체를 손에 넣겠다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걸 ‘경제의 권력화’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정치권력’이 수중에 넣고 좌지우지해왔던 ‘기업권력’이 정치권력의 컨트롤권(圈)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아예 ‘정치권력’을 손 안에 넣어 자신들이 나라를 끌고 가겠다는 수준에까지 왔다. 안철수가 정치를 하겠다는 것도 정치에 대한 ‘분노’다.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더 직설적으로 표현을 빌리자면, ‘기업권력’이 돈 벌게 되자 정치권력을 우습게 알고 간이 커지고 있는 것!
    오죽했으면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이젠 기업이 권력이 됐다”라고까지 말했다. 정치권력이 기업을 좌지우지했던 시절은 ‘아~옛날이여’가 됐다. 

    이미 20년 전인 1992년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국민당을 창당해 대권 도전에 나섰다가 실패했고, 그와 동시에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도 대권 도전을 모색하다가 중도하차했던 경험이 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이 ‘샐러리맨의 신화’를 배경으로 대통령에까지 이른 것도 사실은 그 성격상 정주영·김우중의 도전과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기업권력의 영웅 문국현이 창조한국당을 만들어 대권에 도전한 것도 마찬가지다. 

    ‘경제권력’의 급격한 성장으로 재계의 영웅, 이번 안철수처럼 IT·벤처업계의 영웅이 대권을 향해 직행하려는 모험이 이어지고 있는 것! 

    대중은 경제권력 안에서 성공한 인물이 정치권에서 성공한 인물보다 ‘깨끗하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과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기업권력’이 대권에 도전하면 박수를 보내며 환호한다. 

    정주영의 도전 때도 똑같았다. 더욱이 안철수는 성공한 CEO 출신 이미지에다가 교수라는 명함까지 갖고 있기 때문에 대중이 더 열광하는 것! 이게 ‘안철수 현상’의 본질적 성격!         

    그러나 여기에서 ‘왜 이명박 대통령은 실패했는가?’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결론은 ‘기업 CEO 출신’이었기 때문! 성공한 기업 CEO 출신이라 해서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라는 결론은 이미 미국의 정치학계에서 논란을 끝낸 사안! 

    미국에서도 CEO 출신들이 대권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정치인이 정치를 망쳤다. 기업리더만이 국가를 잘 운영할 수 있다”고 치고 나온 경우가 숱했지만 미국 국민은 이들을 선택하지 않았다. 

    왜? 지난해 11월 <워싱턴포스트>는 기업 CEO와 대통령과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한마디로 기업 경영인은 자기 의지대로 일을 추진하는 ‘선의의 독재자(benevolent dictator)'이기 때문에 그 체질로 대통령에 되기에도 어렵고, 되어서도 실패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기업 CEO와 대통령의 차이를 3C로 설명할 수 있는데,

    첫째, 합의(Consensus)에 관한 문제.
    CEO가 회사 내부에서 합의를 추구한다하지만 자기 기업 내부에서만이고 그것도 조직 내 상하 관계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국내외 모든 문제에 있어 반대파를 합의에 동참시켜야 하는 대통령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 

    둘째, 소통(Communication)의 문제.
    기업은 광고로 메시지를 전달하다가 안 먹힐 때 상품을 회수해 바꾸거나 광고도 바꾸면 그만인데 반해, 대통령은 직접 라디오나 TV에 출연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셋째, 통제력(Control)의 문제.
    CEO는 승진, 보너스, 좌천, 해고라는 카드로 직원들을 마음대로 요리하지만 대통령은 인사권을 갖고 있기는 해도 곳곳에서 받게 되는 견제를 견뎌내며 통제력을 행사한다.

    이런 분석은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깊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과연 아마추어 정치인이 나라를 바꾸고 발전시켰느냐, 아니면 프로 정치인이 그랬느냐하는 부분을 연구하기 위해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를 짚어보면 꼭 프로 정치인 출신 대통령이 나라 발전에 기여하지 않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가 이같은 사실을 입증하는 데 매우 유효하다.

    일단 박 대통령이 이끄는 군부(軍部)세력이 왜 쿠데타에 성공했으며, 그 후에도 대한민국의 산업화에 성공했는지 그 원인들을 훑어 보면 당시 군부세력이 정치권력보다 훨씬 근대화된 조직이라는 사실이 나타난다. 

    말하자면 ‘군부권력’ ‘민간 정치권력’을 넘볼 정도로 미국의 군사훈련과 조직 일체를 물려받아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앞서가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군부는 정치를 압도하는 조직이었다.

    ‘군부권력’이 ‘정치권력’에 대한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도 국민 대중이 정치인보다 군인이 깨끗하고 나라를 잘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고 이 때문에 박정희의 5·16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민간세력에 대한 군부의 우위가 결국 박정희를 낳았고, 이게 전두환·노태우로까지 이어지는 30년 간의 군출신 대통령 시대의 뿌리가 됐다. 

    박정희도 정치에 관한 한 아마추어였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을 산업국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박정희의 집권을 가능하게 한 또 다른 요인을 설명하자면 당시 전 세계를 풍미한 군인출신들의 민족주의론이 있다. ‘군부권력’이 ‘민간 정치권력’을 넘볼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에 박정희의 쿠데타가 일단 가능했고, 여기에 민족주의에 불타는 군장교들의 열정이 모아졌기 때문에 ‘아마추어 정치인’ 박정희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에 성공한 뒤 가진 전역식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다시는 이 땅에 나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 정치를 14년 동안 한 뒤 대통령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포함한 ‘프로 정치인’ 출신 대통령들이 잇따라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건 대단한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반드시 아마추어 정치인 출신이 실패한 대통령이 된다는 공식은 잘 못된 가설에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으나, 그렇다 해서 아마추어 정치인이 정치에 때를 덜 묻혔기 때문에 성공한 대통령을 보장한다는 것도 터무니없는 억측에 불과하다. 

    더욱이 수영장에서 수영한 경험을 갖고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를 헤엄 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다. 

    안철수는 대선 출마 선언을 계기로 지지도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추석연휴 기간 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은 추석 밥상을 둘러앉아 '박근혜냐, 안철수냐, 문재인이냐'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일 것이다. 

    과연 안철수의 도전은 성공할 것인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를 다시 쓸 수 있는 승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패자가 되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것인가?

    ‘안철수의 실험’은 이제 막 시작됐다.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정치 칼럼니스트/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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