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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안철수 원장 측 금태섭 변호사가 불현 듯이 오후 3시에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속보가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은 안철수 원장의 대선 출마 선언이나 출마와 관련된 커다란 뉴스가 있는 줄 알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정준길 새누리당 공보위원이 안 원장의 안랩(구 안철수연구소) 설립 초창기인 1999년 산업은행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는데 그와 관련하여 투자팀장인 강모씨에게 주식 뇌물을 공여했다는 것과 목동에 거주하는 음대 출신의 30대 여성과 최근까지 사귀고 있었다는 것을 가지고 사퇴 협박을 했다며 정부와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이 짜고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의해 안 원장을 철저하게 사찰하여 폭로하는 것처럼 포문을 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의 내막이 많이 밝혀졌는데, 서울대 86학번 동기이며 최근에까지 서로 문자와 통화를 주고받는 친구 사이인 정준길 공보위원이 9월 4일 오전에 차를 타고 가며 금 변호사에게 사적으로 이런 말을 전했는데 금 변호사는 이를 단순 협박 정도가 아닌 정부와 보수 언론과 새누리당이 마치 한 통속이 되어 안 원장의 뒤를 캐며 주저앉히려고 한다는 음모론까지 주장하였습니다.
학교만 같이 다닌 그냥 아는 사이일 뿐 친구도 아니고 근래 오랫동안 통화한 적도 없다던 금 변호사의 주장은 정 공보위원이 공개한 문자로 인해 금방 거짓말로 들어났습니다. 둘이 새벽까지 서로 이름을 불러가며 살갑게 주고받던 문자로 인해서 금 변호사의 친구도 아니라던 주장은 신빙성을 잃게 됐습니다. 친구 사이가 아니라는 주장만이 아니라 협박이냐 그냥 친구끼리 주고받은 단순한 통화냐를 판가름하는 아주 중요한 척도에서 금 변호사는 정 공보위원과는 친구 사이가 아니라는 거짓말을 함으로 인해서 신뢰성을 잃게 되었습니다.
금 변호사는 오랜 친구도 적으로 만들어가며 금방 들어날 거짓말까지 해서라도 정부기관이 철저한 사찰을 하여 새누리당에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는가 본데 결과론적으로 보면 제 발등을 스스로 찍은 격이 돼 버렸습니다.
오죽하면 인터넷의 네티즌들은 금 변호사는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에서 보낸 X맨이 아니냐는 조롱 섞인 비아냥을 보내고 있습니다. 음모론 폭로 이후 여론조사 결과도 말해주듯이 이번 금 변호사의 협박주장은 역효과를 불러왔습니다. 안 원장 지지율이 소폭 하락하고 박근혜 후보 지지율이 소폭 상승한 것 외에 안 원장의 이미지 실추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안철수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환멸과 안 원장이 가지고 있는 반듯하고 깨끗한 이미지 일 것입니다.
그런데 금 변호사의 이번 협박 기자회견은 이 둘을 한꺼번에 다 날려버렸습니다.
기자회견을 한 날짜와 시간이 기존 정치인들 뺨칠 정도로 정치적으로 치밀하게 계산되어 안 원장의 트레이드 마크인 신선한 이미지를 실추시켰습니다.
금 변호사가 협박 기자회견을 하던 바로 그날이 민주당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광주 전남 지역의 대선후보 경선이 있는 날인데 이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민주당에서 볼멘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안 원장 측으로서는 민주당과 새누리당 양자 구도로 가는 것을 막아볼 심산으로 이틀 전 통화 내용을 민주당 안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축제의 날에 맞추어서 재를 뿌리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라고 하는데 기존 정치인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또한 오후 3시에 기자회견을 함으로 인해서 상대방이 반격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꼼수를 부렸다고 합니다. 반격할 타이밍을 놓치면 그대로 여론으로 굳어져서 그 다음 날 아무리 진실을 이야기해도 이미 굳어져버린 여론을 돌려놓지 못한다는 속성을 잘 알고 오후 3시로 시간을 잡은 것 같습니다. 너무 늦으면 퇴근 준비에 바쁜 직장인들 사이에 협박 여론이 형성될 시간이 부족하고 너무 이르면 상대방에게 반격할 시간을 주게 되니 그 적당한 시간인 오후 3시를 선택했는가 본데, 기존 정치인들 뺨치는 수준의 꼼수를 부려 안 원장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순수하고 참신한 이미지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습니다.
오랜 친구간의 우정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한 순간에 짓밟아버린다는 비난도 비난이지만 근거도 없는 정부기관의 철저한 사찰이라는 음모론을 들고 나온 것 또한 기존 구태정치인들의 전유물을 또 다시 보게 된 것 같아 씁쓸합니다. 선거 때만 되면 난무하는 음모론을 경계하고 거부하는 것이 안 원장의 신선한 이미지하고 맞을 턴데 오히려 안 원장이 이를 부추기다니 금 변호사가 X맨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기성 정치인 뺨치는 기자회견 타이밍 잡기와 혼탁한 선거를 자청하며 들고 나온 협박음모론은 사소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더 큰 문제는 금 변호사가 이번 기자회견을 함으로 인해서 5일이 지난 지금 국민들 뇌리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요?
정 위원의 협박과 정부기관의 사찰은 오간데 없고 안 원장의 목동에 사는 30대 음대녀만 남아있지요. 이를 계기로 과거 안 원장을 둘러싸고 번지던 여자 소문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며 안철수가 여자를 밝혔느니 안밝혔느니 하는 수근거림만이 메아리로 울려올 뿐이지요.
안 원장의 여자 문제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동안 룸싸롱에 가도 술은 안먹고 단란주점이 뭐하는 곳인지도 모른다며 이슬만 먹고살았던 것처럼 보여지던 안 원장에 대한 국민의 시각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렇게 잘 난 사람이 설마 여자 한둘이 없었겠냐며 못난 자기 자신 신세 한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항간에는 금 변호사가 안철수를 정치판에서 철수시키려고 새누리당을 끌고 들어가서 쌍포 공격을 해댄 것은 아닌가에 대한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새누리당과 안 교수를 한꺼번에 침몰시키고 민주당을 세우려는 고도의 정치적 묘수를 부린 것은 아닌가 하는 설이 상당하게 유포되고 있습니다. 소위 ‘안철수 철수론’ 말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학부를 나오고 그 중에서도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고 하는 검찰에서 20여년 가까이 경력을 쌓아온 40대 중반 스마트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정도의 역효과도 계산에 넣지 못했을리가 없다는 것인데요. 얼핏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기도 합니다.
대선 때만 되면 이러저러 음모론과 설들이 난무하여 실제 그 사람의 능력과 비전과 지도력 등 대통령으로서 자질을 검증하는 데는 소홀한 경우가 허다했었는데, 그런 구태정치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풍토를 만들어나가야 할 신진정치인이 자기 스스로 그 길을 자처해서 음모론 태풍의 눈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X맨이니 안철수 철수론이 그럴듯하게 대중들에게 먹혀들어가는 원인 제공은 안 교수 스스로 자청한 일일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일을 100일 앞에 두고도 아직 거취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으니 이런 음모론들이 먹혀들고 있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잘나서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아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최소한도 반년 정도는 국민들에게 선을 보이고 검증을 받은 연후에 표를 찍어달라고 해야 상식적인 일일 것이고 또한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무엇이 그토록 두렵기에, 아니면 뭐가 그렇게 잘났기에, 선거일 100일 남겨두고도 아직 신비주의를 고수하며 변죽만 울려대는지 국민들이 슬슬 열 받기 시작합니다.
예전에 어느 방송국 개그 프로그램에 ‘같기도(道)’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풍자로써 안 교수의 오늘날 모습과 아주 흡사해 보입니다.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안 나온 것 같기도 하고 깨끗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안 교수는 자신을 둘러싼 여러 의혹들에 대해 정부기관 언론 새누리당 등 남 탓은 그만하고 이제는 본인이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고 국민을 설득시키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안철수 철수론’ 같은 설에 대해서도 본인이 우유부단한 행보를 보임으로 인해서 파생된 것임을 깨닫고 자신의 정치일정을 명확하게 밝히면, 이런 설이나 음모론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최소한도 반년 정도는 국민들에게 선을 보이고 표를 달라고 해야 상식적이고 양심이 있는 사람일진데, 이제 고작 100일 남겨두고도 아직 같기도(道) 수련중이라면 이는 국민에 대한 모독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한 사람들입니다. 제 아무리 잘난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심판을 하는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처럼 협찬만 할 것인지 본인이 직접 나설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혀 국민들이 대선주자로 나선 후보들에게 집중하여 자질을 평가할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안교수는 국민들로부터 그런 권리를 빼앗으면 안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