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창중 칼럼세상> 

     昌의 마지막 애국(愛國)

     

     

  • ▲ 윤창중 정치평론가/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 윤창중 정치평론가/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젠 시간도 어지간히 흘러갔기 때문에 당시 대선에서 두 번이나 낙선하고 낭인으로 지내던 이회창과 얽힌 추억을 소개하려 한다. 

    2006년 12월 초였다. 한나라당에서 당 대표를 지냈던 박근혜, 서울시장 이명박, 경기도지사 손학규가 대선후보 경선에 나설 최종 후보그룹이 될 것이라는 게 보편적 관측이 되던 시점. 그런데 <조선일보> 정치면에 ‘이회창 대선 출마 가능성’을 점치는 기사가 난 것 아닌가?

    이회창은 2002년 노무현에게 패한 뒤 숭례문 근처에 사무실 얻어 특보 이흥주·이종구와 함께 기거하며 세상에 없는 듯 세월을 보내던 상황이었다. 뜬금없는 보도 같은데? 설마 그럴 리가?

    그런데? 다음날 휴대전화에 번호가 뜨지 않는 전화가 걸려왔다.

    “이회창 총재님 전화입니다."

    억?

    “허허허…윤 위원, 저 이회창입니다. 제 사무실에서 잠깐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 좀 합시다.”

    그러지 않아도 그의 출마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 궁금하던 차에 잘됐다, 좋은 기회다 하고 사무실에서 만났다.

  • ▲ 이회창 자유선진당 前대표.
    ▲ 이회창 자유선진당 前대표.

    이회창은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노무현 정권의 좌편향과 김정일의 미사일 개발·핵 실험을 비롯한 안보문제에 대해 엄청나게 열변을 토하며 비판했다. 참아왔던 말들이 많은 듯 상당히 정신적으로 격앙돼 있었다.

    “한나라당이 노무현의 좌편향 폭주를 막아야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는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나라가 정말 큰일 났다”는 논지였다. 어, 뭐가 좀 이상한데? 진짜로 대권 도전에 또 나서서 3수할 것인가?

    이회창은 그러면서 “한나라당은 누가 경선에서 이길 것 같으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꽤 길게 대답했다.

    “지금 대한민국 안에서는 보수우파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할 만한 분이 한분도 계시지 않습니다. 이건 국가적으로 크게 불행한 일이지요.
    보수우파 안에 존경 받을만한 정신적 스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보수우파 하면 무조건 부패하고, 독재나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국민이 많습니다.
    보수우파의 체계를 만들어 국민을 설득하고, 보수우파의 자정운동을 주도할 수 있는 정신적 스승, 정신적 지도자가 절박하게 필요한 국가 상황 아닌가요?”

    이회창은 꽤 흥미롭게 경청하는 것 같았다.

    “보수우파의 정신적 스승이요?”

    “예,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이 건국의 아버지이고 산업화의 아버지이지만, 보수우파의 정신적 스승은 아니잖아요. 그 자리를 이 총재께서 한번 해보시죠!” 

    “내가요? 어떻게?”

    “현실 정치에서 완전히 물러나셔서, 대학에서 부르면 특강도 하고, 국민을 상대로 연설도 하면서 노무현 정권의 좌편향이나 김정일의 미사일·핵개발도 비판하시고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충고하면서요. 보수우파의 이론도 체계화하시고요…”

    이 소리를 듣고 이회창은 상당히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현실 정치에서 완전히 물러나셔서’라는 나의 완곡한 표현은 이회창이 절대 대권 3수에 나서지 말고, 이제라도 보수우파의 ‘정신적 병풍’으로 남아주길 바란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또 다음날인가 그 다음날인가 전화가 직접 이회창으로부터 걸려왔다. 빨리 점심 식사를 하자는 것이다.

    “내일이 어떻습니까?”

    “아이고, 내일은 약속이 있고 모레는 괜찮습니다.” 해서 남산 기슭의 이태리식당에서 단둘이 만났다. 

    본격적으로 <조선일보>가 자신이 대권에 도전한다고 보도한 것부터 꺼냈다. 사실이 아닌데, 왜 <조선일보>가 그런 기사를 쓰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상당히 길게 해명했다.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가만히 계시면 대선 출마한다는 기사가 계속 나게 될 것이고, 또 대선 출마 의향이 있는 게 사실이 아니면 입장 표명을 분명히 하시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이회창은 말했다.

    “내가 대권 출마하려는 것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해야 합니까?”

    “그래야지요. 그게 정도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이회창은 화제를 돌려 내게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인물평을 물어왔다. 그래서 나는 “저보다는 총재께서 평가해 주시죠?”

    내가 물었다. “이명박 시장은요?”

    “어, 안보문제에 대해 뭐가 뭔지 아무리 봐도 확실한 게 없어요. 모르겠어요.“

    ”손학규 지사는요?“

    ”손학규는 내 고등학교 후배이지만 이념적으로 불투명해요.“ ”

    그럼 박근혜 대표는요?“

    ”박 대표는, 허허허, 이념적으로는 가장 확실한 것 같아요.“

    ”아, 예…“ 

    이회창은 내 말을 듣고 영향을 받은 것인지, 2007년 새해 첫날인 1월1일을 잡아 ‘대선 불출마 선언’을 재삼 강조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난 믿지 않았다. 대권에 대한 욕심이 아직도 남아있고 계속 방황하고 있구나하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이회창은 2007년 8월 한나라당이 경선을 통해 이명박을 대선후보로 확정짓고 9월이 되자 무소속 출마가 임박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 때 또 전화가 걸려왔다.

    “요즘, 이런 저런 보도가 나오는데, 윤 위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이회창 이 분이 또 출마하려는 구나!

    “예, 총재께서 출마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습니다’는 말을 3차례 반복했다. 전화가 끊어졌다. 

    그 다음날 이회창은 지방으로 잠적했다가 무소속으로 출마 선언을 했고, 박근혜의 서울 삼성동 자택을 문 앞에까지 3차례나 찾아 탈당해 지지해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했으나 만나지도 못했다. 한 시절 대쪽이라고 지지도가 하늘을 찌를 것 같았던 이회창, 그가 저런 모습으로 추락하다니.

    삼성동의 굴욕! 새삼 정치는 할 게 못 된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회창은 대선에 출마해 15.1%를 얻었지만 완패했고, 이어 총선에서 또 다시 몸을 추슬러 충청도에 자유선진당을 만들고 재기를 모색했지만, 결국 자신의 손으로 만든 당을 탈당하고 또 다시 사무실을 얻어 낭인의 길을 걷고 있다. 정치적 빈털터리가 된 셈이다!

    또 다시 이회창이 박근혜, 안철수 중 누구를 지지할 것이냐를 놓고 예상하는 기사가 오늘 <동아일보> 정치면에 나왔기에, 나와 이회창과 관련한 추억을 끄집어 냈다.

    분명한 사실은 이회창은 이제라도 ‘역사’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이회창은 보수우파의 역사를 놓고 볼 때 좌파세력에 두 번이나 정권을 넘겨준 장본인! 씻을 수 없는 실수!

    이회창이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에 애국하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는 이미 해답이 나와 있는 것 아닌가!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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