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선진화포럼 /선진화포커스 제103호
    붉은 색 만연한 민노총의 ‘노동자통일교과서’

    배 진 영   월간조선 기자(차장대우) 
     
      지난 5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합(이하 민노총)이 ‘노동자통일교과서-노동자, 통일을 부탁해’라는 책을 내놓았다. 김영훈 민노총 위원장은 이 책의 발간사에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오명은 민족의 수치이면서, 동시에 노동자 민중들의 삶을 철저히 파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자가 앞장서서 조국을 통일하자!’는 구호가 현실이 되려면 분단과 6·25전쟁의 기원,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분단현실의 문제와 전쟁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 대안과 희망 찾기’라는 부제(副題)가 붙은 이 책은 제1장에서 한국 사회를 ▲초고속 성장한 자본주의 사회 ▲지나치게 친미편향적인 사회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된 사회라고 규정한다. 필자의 예상대로 이 책이 말하는 ‘대안’과 ‘희망’은 반(反)시장경제, 반미종북(反美從北)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과 식량난은 미국 때문

      ‘노동자통일교과서’의 역사인식을 보자. 해방 후 미군의 진주를 일제에 이은 또 다른 외세의 침탈로 보면서 분단의 책임은 이승만과 보수세력에게 돌린다. 스탈린이 해방 직후 북한에 친소(親蘇)정권 수립을 지시한 것이라든지,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사실상의 정권을 수립한 것은 모른 척 한다.

      그나마 다행일까? 6·25를 북침(北侵)이라고 우기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6·25를 해방 후 좌우익 갈등과 남북한 간 무력충돌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브루스 커밍스류의 수정주의사관을 고집하고 있다. 남침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휴전 이후 북한의 대남(對南)도발은 대부분 미-북간의 갈등이라는 희한한 논리를 내세우면서, 그 책임은 고스란히 미국의 대북압박으로 돌린다. 북핵문제에 대해 이 책은 “북한 핵개발의 원인과 역사적 배경을 따지다 보면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으로 개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노동자통일교과서’는 북한의 식량난조차 미국의 책임으로 돌린다. 북한의 식량난은 “북 체제문제이기 전에 국토지형조건상의 문제이며 미국의 경제봉쇄조치 등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수입할 수 있는 통로가 막혀 있는 것”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1983년 아웅산 묘지 폭파사건, 1987년 KAL기 폭파사건, 2010년 천안함 침몰사건 등에 대해서는 “사건의 원인을 두고 남북 상호간 다툼이 있고 국내에서도 여러 가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는 사건이므로 잠시 접어두자”며 슬그머니 넘어간다. 그러면서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해서는 “북한이 수 차례 사격중단 요청 전통문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훈련을 강행”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 ▲ 민노총이 발간한 노동자통일교과서.
    ▲ 민노총이 발간한 노동자통일교과서.

      ‘노동자통일교과서’는 반미주의 자극에도 열심이다. 효순-미선 교통사고와 주한미군 범죄 등을 되풀이 상기시키면서 반미감정을 조장하고, 한미연합훈련인 키리졸브훈련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용 핵전쟁훈련’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한다. 그러한 주장은 결국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 이어진다.

    ‘민족경제론’으로의 회귀 주장

      ‘노동자통일교과서’에 나타난 경제관은 한 마디로 1950~60년대를 풍미했던 ‘민족경제론’의 재판(再版)이다.

      “한국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농업위주의 봉건국가에서 자본주의 산업국가로 전환된 대표적인 국가이다. 이는 분단으로 인해 민족의 자립적 경제성장이 어려운 조건에서 수출위주의 경제성장에 치중한 결과물이기도 하고 미국의 경제원조와 차관으로 시작된 일부 대기업의 눈부신 성장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무역(수출)의존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에 대한 시장의존도는 절대적이다. 이 같은 경제구조 때문에 세계 경제위기 시대인 오늘날에는 더 이상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처지에 놓여 있다.”

      후진국이 경제발전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오랜 논란이 있어 왔다. ‘수입대체형 공업화’와 ‘수출지향형 공업화’가 그것이다. 1950~60년대에 제3세계 국가에서 인기를 끈 것은 민족주의적 색채가 다분한 전자(前者)였다. 한국에서도 ‘민족경제론’이니 뭐니 하는 주장이 풍미했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은 그런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노동자통일교과서’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회의(懷疑)가 짙어진 것을 기화로 시대착오적인 ‘자립경제론’으로의 회귀(回歸)를 주장하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노동자통일교과서’은 한미FTA도 반대한다.

    1980년대 운동권적 인식이 아직도…

      ‘노동자통일교과서’에 나타난 역사인식, 세계관, 경제관은 1980년대 운동권의 인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에 소련-동구 공산주의가 무너졌고, 해방 후 한반도 상황을 증언하는 구(舊)소련문서도 공개됐다. 북한에서는 300만명이 굶어 죽은 대량 아사사태가 발생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죽었고 3대 세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1980년대식 낡은 사고(思考)를 우리 사회의 ‘대안’과 ‘희망’이라고 내놓은 그들을 보면 참 안쓰럽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민노총이 ‘노동자통일교과서’를 세상에 당당히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노총은 책이 나온 지 두 달이 넘도록 이 책의 필자들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으며, 민노총 내부에서만 돌려보고 있다. 이는 2001년 전교조가 비슷한 성격의 책인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의 필자를 당당하게 공개하고. 대형서점 등에서 판매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저들이 뭐라고 헛소리를 하건, 이제 우리 사회는 종북세력의 실체에 대해 눈을 떴고, 종북세력은 그만큼 고립되어 가고 있다. 종북세력 스스로도 그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