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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진짜 물태우로 아나…”
요즘 청와대 안팎에서 자주 듣는 짜증 섞인 목소리다. 임기 말 가뜩이나 마무리할 일이 산더미인데 발목 잡히는 일이 너무 많다. 내곡동 사저에 불법사찰 논란까지, 대외적으로 해명일이 많다. 법적으로든 도의적으로든 잘못한 일에 대해 비판이 날아오는 건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전제를 하지만, 그래도 '짜증'이 난다는 얘기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미운 건 말리는 시누이라고 했던가? 정작 미운 쪽은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 총선 승리로 청와대의 국정 수행에도 다소 숨통이 트이나 했더니 당대표 경선에 대선 후보 경선까지 정신없는 민주통합당보다 새누리당이 더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여당이 청와대와 선을 긋는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내곡동 사저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가 나오자마자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특검’과 ‘국정조사’까지 거론하며 압박을 시작한 것이 이 같은 분위기의 한 단편이다.
민주통합당보다 더 발끈하고 나서는 모습에 섭섭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 하다.
정치 공세도 섭섭하지만, 다른 일로도 마음 상한 모습들이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새롭게 꾸려진 지 한 달 가까이 됐지만 ‘인사(?)’ 한번 오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만나봐야 나눌 별다른 이야기도 없고 모양새도 좋지 않다는 것은 양 측 모두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집권 여당과 현직 대통령간에 지나치게 벌어진 ‘거리’는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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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6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청와대에서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 ⓒ 뉴데일리
√ MB, 박근혜가 답인가?
그동안 박근혜 전 대표는 청와대와의 선을 긋는 모습 이면에도 이 대통령과 관계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여 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을 찾아와 독대를 하고 가는 일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4.11 총선을 앞두고 선언한 사실상의 ‘단절’ 이후에는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는다. 중요한 시기마다 친박계 인사들의 입을 빌어 일침을 쏘아대며 간극만 조금씩 더 벌리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사실상 하극상 아닌가? 행보는 이미 현직 대통령 이상의 무게감을 뿜고 있다. 여당 대선 후보가 현직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를 지속해서 좋을 게 뭐 있나.”
이 관계자의 말처럼 대선 정국이 도래하면서 정치권에서 평가하는 주요 변수에 대한 이 대통령 의중의 향방을 꼽는 시각이 많다. ‘대통령을 만들 수는 없어도 안되게 만들 수는 있다’는 것이 현직 대통령의 프리미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대 대통령들도 이 프리미엄을 묵혀두지 않았다. YS도 그랬고 DJ도 그랬다. 퇴임 후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을 후임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는 현직 대통령의 중요한 자산이라는 얘기다.
대표적인 예가 1997년 대선 당시의 김영삼(YS)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관계다. 이회창 후보 측이 정당 행사장에서 ‘김영삼 인형’을 불태운 것이 두 사람간 관계가 멀어지는 계기가 됐다. 당시 이 후보는 높은 지지율에도 이인제 현 선진통일당 비대위원장의 출마와 비자금 수사가 중단되며 반등 한 DJ에게 결국 패배했다.
이 배후에 YS가 있었다는 게 정치권의 정설로 통한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내가 지원하지 않았으면 DJ는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이는 좌파 정권의 집권으로 이어지며 정치 파란으로 기록됐지만, YS는 꼭 필요했던 ‘퇴임 후 안전’을 보장받았다. 만약 당시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면 YS가 IMF 책임을 결코 피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 YS의 권력게임..MB는?
최근 청와대에서 YS와 이회창 총재와의 관계가 자주 회자되는 것도 현재의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와의 관계와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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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재
정치 지형과 이념을 떠나 과연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그가 이 대통령에게 얼마나 긍정적으로 예우하겠느냐는, 바로 권력속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친박계가 정권을 잡는다면 퇴임 후 이 대통령의 신변을 보장할 장치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전망도 솔솔 나오고 있다.
때문에 청와대 안팎에서는 이 대통령이 YS의 정치적 딜을 차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더 이상 두 사람의 간극이 벌어지기 전에 물밑에서의 협력관계를 구축하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이 대통령이 또다른 대안이나 안전장치를 내놓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임기 6개월을 남기고도 국정수행평가에서 30%의 지지율을 받는 정부다. ‘힘 빠졌다’, ‘레임덕이다’고 하는데 지난 정부들에 비하면 그렇지도 않다. 여전히 '현재 권력'이다.”
친박 측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한 친박계 의원의 말이다.
“현재 박근혜 캠프에서 가장 경계하는 모델이 ‘이회창’이다. 아무리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높다고 해도 현직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마음은 그렇지만 급속도로 변하는 정치지형에서 이런 인위적인 제어는 역시 쉽지 않다.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친이계 현 실세들의 의지도 미약한데다, 친박계 내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분출되는 이 대통령 ‘무시’ 분위기가 걸림돌이다.
친박계가 제시하는 비슷한 사례가 김영삼 대통령이 승리한 1992년 대선이다. 당시 ‘물태우’로 불리며 최악의 레임덕에 빠진 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이 대통령이 어떤 정치적 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함께 갈 경우 오히려 ‘짐’이 될 것이라는 평가인 셈이다.
또다른 친박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최근 상황을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앞으로 권력게임을 생각할 겨를이 있을 것으로 보나? 대세론이 형성된 이상 차선책을 제시할 여력도 없을 것이다. 또 2007년 경선에서 쌓인 박근혜 전 대표와의 미운정 고운정이 그리 간단치도 않다.”
문제는 그런 YS 때문에 10년 좌파정권이 들어섰고, 그래서 YS는 '좌파의 숙주'라는 불명예와 오욕을 뒤집어 썼다.
닥칠 12월 대선은 종북좌파와 대한민국 수호우파 간에 벌어지는 건곤일척의 대회전. MB는 종북 척결과 대한민국 수호에 한 몫을 할 것인가, 일신의 안위를 택할 것인가? MB는 '물태우' 모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YS' 노선을 걸을 것인가.
유례없는 종북 척결론이 타오르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