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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을 두고 여야의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다 보니 정치권의 근거 없는 비방은 이미 수위를 한참 넘었다.
언론들도 바쁘다. 소위 우파-좌파(보수-진보)성향의 매체가 패를 나눠 폭로전에 가담하고 있다.
누가 더 ‘잘 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잘못했느냐’를 가지고 싸우는 형국이다.
유권자들은 헷갈리기만 하다. ‘사찰’이라는 단어 자체도 모호한데다, 어디까지가 불법이고 어디까지가 합법인지도 구별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단지 자극적인 단어들로 선전·선동하는 정치권과 언론들에 지쳐버린 유권자들의 ‘정치 불신’은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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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통합당과 좌파 매체들이 민간인 사찰 논란에 대한 여론이 엇갈리자 방송인 김제동으로 이슈를 집중시키고 있다. 연예인 노이즈마케팅은 야권이 여러번 이용한 선거철 아이템이다. 사진은 10.26 서울시장 재보선 기간에 연설하고 있는 김제동 씨 ⓒ 자료사진
◆ 사찰은 없다. 김제동만 있다!
정치권은 사찰 문건이 “노무현 정부가 많았다”, “현 정부가 많다”며 아귀다툼을 하고 있지만, 여론은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다.
방송인 김제동이다. 자신의 성향을 공공연히 밝혀왔던 김제동이 현 정권에서 사찰을 받았다는 보도에 그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던 여론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청와대가 지난달 31일과 이달 1일 연이틀 “공개된 사찰 문건의 대부분(80%)는 노무현 정부에서 작성된 일”이라며 반격에 시작하자 <경향>, <한겨레>, <오마이뉴스>는 기다렸다는 듯 ‘김제동’을 터뜨렸다.
당시 문제가 불거졌던 연예인 기획사 비리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에게 청와대가 개입해 특정 성향의 연예인들을 파악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들 매체는 당시 민정수석이던 권재진 법무장관의 ‘좌파 연예인 대청소’라 이름 붙이며 선동에 나섰다.
<오마이뉴스>는 당시 ‘국정원 직원이 김제동을 만났다’는 것을 근거로 불법 사찰로 몰아갔다.
김제동 씨도 일부 언론과 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기념식을 앞두고 국정원 직원이 찾아와 행사 사회를 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증언해 불을 지폈고, 청와대 반격 이후 수세에 몰리던 민주통합당도 ‘김제동’이라는 이름 하나에 목을 매기 시작했다.
그동안 하차 논란 등을 스스로 밝히며 마치 정부의 탄압을 받는 것처럼 이미지화 된 김제동에 대한 측은지심을 여론으로 포장해, 불씨를 잃어가던 ‘정권심판론’을 재점화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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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향>이 방송인 김제동에 대해 청와대가 주축으로 사찰을 했다는 것을 보도하면서 공개한 문서. 내용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 총경이 이를 주도했다고 나와있지만, 당시 정무수석실에는 총경급 인사가 근무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 캡쳐화면
◆ ‘불법’이란 단어만 갖다 붙여 폭로
하지만 이들 좌파 세력의 마구잡이식 비방이 얼마나 힘을 얻을지는 미지수다.
‘정황’만으로 ‘사실’인 것처럼 호도한 내용이 많다보니, ‘진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경향>이 주장한 경찰 기획수사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에 대해 청와대 핵심참모는 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까지도 직접적으로 (연예인 사찰에 대한)문서를 생산했다거나 보고받았다는 사람이 없다”고 밝혔다.
실제 연예인들에 대한 사법 당국(검찰·경찰)의 동향 보고 수준의 파악은 있을지는 몰라도 청와대가 이를 지시했거나 주도한 가능성은 없다는 주장이다.
이 참모에 따르면 <경향>이 보도한 “지난 2009년 9월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근무하던 A총경이 연예인 사찰을 총괄했고, 언론 공개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수사 경찰과 민정수석실 행정관의 면담도 주선했다”는 내용은 기본 사실조차 맞지 않았다.
경찰과의 소통(업무 지시 및 보고)를 담당하는 치안비서관이 민정수석실에서 정무수석실로 옮겨간 시점이 2010년 7월인데다, 정무수석실엔 총경급 경찰 공무원이 근무한 적도 없었다.
특히 이 참모는 보도된 내용에 사용된 용어들을 지목, “그런 문서 양식이나 용어가 경찰청 용어가 아니라고 한다”고 했다.
<오마이뉴스>의 ‘김제동 불법 사찰’ 주장도 마찬가지다.
‘국정원 직원이 김제동을 만났다’는 내용만으로 ‘불법’으로 호도하고 있다. 해당 국정원 직원은 ‘개인적 만남’이라고 해명하고 있고, 이 매체나 김제동 본인도 ‘불법’이라는 단어 자체는 쓰고 있지 않다.
하지만 ‘청와대-새누리당 '대반격'했지만..김제동 한방에 KO?’라는 제목과 ‘뒷조사’라는 선정적 단어를 이용해 인권 문제에 민감한 20~30대 유권자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민간인 사찰 영향 미미하자, 결국 연예인
선거철만 되면 등장하는 연예인 노이즈 마케팅이다. 특히 김제동은 2010년 지방선거 당시 한차례 ‘대박’을 터뜨렸던 소재이기도 하다.
이미 선거 결과의 칼자루를 쥔 젊은 유권자들은 정책 공약보다 감성적 이슈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노린 전략이다. 특히 연예인의 방송하차나 출연금지 등 어떠한 보이지는 않지만 권력의 중심에서 짖밟는 ‘탄압’으로 비춰질 수 있는 이슈는 특히나 동정심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선거 때마다 연예인 효과를 경험한 야권이 이번 총선에서도 연예인 노이즈마케팅을 시작하는게 아닌가 한다”며 “민간인 사찰의 파급력이 생각보다 미미하고, 오히려 역공격을 당하자 전략을 수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실제로 공중파 방송 3사가 최근(3.31~4.1) 실시한 서울 21개 지역구 여론조사를 보면 종전 여야 판세가 그대로 이어지면서 사찰 공방의 여파가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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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 총선을 앞두고 민간인 사찰을 두고 여야 그리고 청와대가 얽혀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은 싸늘하기만 하다. 사진은 4.11총선을 10일 앞두고 유세활동이 활발했던 1일 오후 서울 노원구 수락산역 부근에서 한 후보의 유세 차량 앞을 지나가던 한 시민이 시끄러운지 귀를 막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 사찰=뒷조사? 선전·선동에 유권자는 ‘지쳐’
‘우리만 (사찰을 한 것이)아니라 쟤네도 했다’는 식의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에 유권자들은 지쳐가고 있다.
민주통합당과 KBS새노조가 공개한 2천619건이라는 엄청난 문건의 숫자에 놀라기도 했지만, 정작 정말 불법이라고 할 만한 문건은 극히 일부분이었다.
정작 중요한 부분은 유권자들이 알레르기를 보이는 ‘사찰’이라는 단어의 모호성이다.
본래 사전적 의미의 사찰은 ‘조사하여 살핀다’는 뜻이다. 검찰이나 경찰처럼 꼭 사법기관이 아니더라도 국가기관이면 으레 여론의 동향을 살피는 것이 주요 업무다.
청와대처럼 국가 최고기관이면 말할 것도 없을뿐더러 우리나라처럼 이념적으로 분단된 상황이라면 주요 인물의 사상에 대한 ‘정보 파악’은 국가 존립과 직결돼 있다.
일부 좌파 매체들이 호도하는 ‘사찰=불법적인 개인 뒷조사’라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사찰의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까지가 ‘불법’이냐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불법의 예가 지난 정권에서 당시 서울시장으로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이명박 대통령의 주변 인물에 대한 사찰이다. 당시 사찰을 주도한 국정원 직원은 작년 말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이 확정됐다.
국가정보원법 위반(직권남용)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죄명이다.
현 정부 역시 지난 2010년 전 KB한마음 대표 사찰 문제와 함께 남경필,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과 무소속의 정태근 의원이 공직자윤리관실·국가정보원 등의 기관으로부터 불법사찰을 받았다는 것으로 이미 ‘불법’을 저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불거진 민간인 사찰 파문은 문제가 다르다. 공개된 2천600여건의 사찰 문건 중에 불법으로 분류된 새로운 문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불법 사찰은 분명 밝혀져야 하는 문제이며 이를 행한 주체는 처벌받아야 마땅하다”면서도 “하지만 정작 이번 논란에서 불법으로 밝혀진 문제가 뭔가”라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사찰’이라는 단어의 부정성을 부각시키고 이를 뒷조사로 연관시키는 네거티브에 유권자들이 정치권 전반에 등을 돌릴까 우려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