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따는 누구의 책임인가
어린 학생들이 오늘도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린 학생들이 또래의 따돌림으로 세상을 하직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왜 이렇게 자주 일어나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따돌림을 왕따라고 한다는데, 이러한 왕따가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에서도 이러한 따돌림이 'Bully'라고 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얼마 전에 타임지에서도 이것을 문제 삼아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작년에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15세의 한 고등학생이 1년 동안 이러한 따돌림을 받아 오다가 칼까지 품고 다니게 되었는데, 이 학생이 또 똑 같은 학생에게 조롱을 당하고 주먹으로 얻어맞게 되자 참다못해 품고 있던 칼을 꺼내 가해학생을 찔러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학생은 체포되어 2급살인혐의로 기소되었는데, 이 사건의 재판이 약 1년간 끌다가 금년 1월5일에 최종판결이 났습니다.
판결은 무죄였습니다. 판결문은 이 살인은 자신이 죽을 수 있거나 커다란 육체적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정당방위라고 판결을 받게 된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아직 칼을 품고 다니는 학생이 있다는 소식은 저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칼을 지니기 전에 자신이 목숨을 버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따돌림이 어린 학생들에게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같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학생들 자신에게 있다기보다 부모의 무관심과 가정의 경제문제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됩니다.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어서 만족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좀 더 잘 살아보자고 맞벌이 가정이 많이 생겨나고 있으며 천정부지(天井不知)의 물가는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기만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와서 문을 열고 “엄마”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진정한 가정일진데 이제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와서도 엄마도 보지 못하고 아빠의 얼굴은 주말이나 되어야 볼 수 있거나 아예 아빠가 없는 가정들이 많아지면서 이러한 왕따 사건이 비일비재(非一非再)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처럼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에서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이 따돌림으로 인해 더욱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하며 북한에서 탈북한 학생들도 이 따돌림에 못 이겨 학교를 중퇴하는 사례가 보도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 따돌림이 성폭행과 같은 가혹행위로 발전하여 이를 못이기는 학생은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있는 학교에서는 모른척하고 있다가 큰 문제가 되어 경찰이 개입되자 학교 측과 가해자부모가 피해자와 그 부모들에게 사과를 한다니 어떻게 학교를 믿고 그곳에서 공부를 시킬 수 있겠습니까. 옛날처럼 한 교실에 50명, 60명 있는 것도 아니고 겨우 그 반(半) 정도인데, 이처럼 무관심하게 교육을 하면서도 아무 일이 없기만을 바라는 우리 대한민국의 교육 현주소가 한심하기만 합니다. 어떤 때는 선생님이 없어서 아이들을 교실에 그대로 방치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더욱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주동이 되어 제정한 학생인권조례에서 체벌금지, 두발과 복장의 자율화, 교내집회허용, 성적(性的)지향이나 임신과 출산에 따른 차별금지조항 등 자제능력(自制能力)이 없는 어린 학생들에게 많은 자유를 허용함으로써 학생폭력이 확산되어 더 많은 사고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조례가 전국적으로 실시된다면 교사들은 학생들을 선도하는 입지가 매우 좁아져 왕따 사건으로 인한 비극은 매우 빠른 속도로 확산될 것입니다. 지금도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희롱을 당하고 구타까지 당하고 있다는데, 이 때문에 선생님들의 공포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은 사라지고, 학교는 무법천지를 방불하게 될 것입니다.
영국의 교육부는 1999년 모든 학교에서 노-터치(no-touch)규정을 실시한 결과 실패하여 12년 후인 지난해 교권을 다시 회복하고 학교폭력을 줄이기 위해 이 정책을 완화했다고 합니다. 새 지침에 의해 교사들은 학교에서 적절한 물리력(reasonable force)을 행사할 수 있게 되어 불시로 소지품 조사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경제난에 기인한 부모의 맞벌이로 인한 가족의 불충분한 소통과, 사랑과 책임감 없는 선생님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에서는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학교에서는 학생 개개인에게 관심을 두고 교육을 시킨다면 이러한 끔찍한 일들은 최소화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것 같은데, 이것도 규제해야 할 사항이며 학생인권조례가 더 확산되기 전에 이 조례를 재검토하기 바랍니다.
저의 세대가 학교 다니던 4-50년대 때 선생님들에게 매를 맞으면 내가 잘못해서 맞았다고 생각하고 반성문도 써야 했으며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일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선생님들의 회초리에 감사하는 예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해 얼마든지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로버트 김(robertkim04@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