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恨)을 풀자니 
      
    한 풀이가 정치인 줄 잘못 알고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어떤 자가 그렇게 떠들면 일단 한이 맺혔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없는 한도 쏟아 부어 일을 크게 만들려는 악당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마련입니다. 세계 역사의 참상은 대개 한 풀이로 시작되는데 전쟁이 이래저래 끝이 나면 원한이 더욱 커지고 깊어지는 것이 인류 역사의 진상입니다.

    이란의 대학생들이 최근에 테헤란에 있는 영국 대사관에 쳐들어가 난동을 부렸다고 전해집니다. 그 원한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오랜 세월 이란은 영국의 식민지였는데 그 분풀이, 한풀이를 지금 와서 하겠다는 겁니까. 그럴 ‘풀이’를 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영국의 부당함을 그때에 바로잡지 못했으면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만일 일제 36년의 폭악한 정치를 규탄하여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의 오늘의 번영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 모든 불행한 과거가 교훈이 되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꿈과 희망이 용솟음치는 그런 마음가짐이 더 소중하고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국통일 때 백제가 신라에게 무참하게 당한 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신라가 백제에게 억울하게 당한 사실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잘못은 서로 용서할 수 있어야 밝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개인과 개인, 가족과 가족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에 ‘한풀이’만 고집하는 자들은 크나 적으나 모두 역사 발전의 반동분자들입니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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