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응하지 않으면 책임지고 응하도록 하겠다"박희태-홍준표 “빈 손인 줄 알았는데 파격적이다”
  • ▲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오후 국회를 방문해 박희태 국회의장 및 여야 지도부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있다. ⓒ청와대
    ▲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오후 국회를 방문해 박희태 국회의장 및 여야 지도부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있다.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비준과 관련해 "국회가 한-미 FTA를 비준 동의한뒤 정부에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를 재협상하도록 권유하면 발효 후 3개월 내에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회를 방문, 박희태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와 면담한 자리에서 이렇게 밝혔다고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 한나라당 김기현 대변인과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이 각각 발표했다.

    최 홍보수석은 면담이 끝난 뒤 여야 대변인과 발표 내용을 조율한 뒤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이 대통령이 “미국이 응하지 않으면 책임지고 응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양당 대변인도 이 대통령이 "책임지고 미국과 재협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국회가 구체적인 재협상 내용을 가지고 미국 정부와 재협상해달라고 하면 국회에 답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만났을 때 재협상 부분을 얘기 했느냐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내가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서 재협상 하자고 얘기했다 안했다고 하는 것은, 정상들 간 논의된 사항은 얘기할 수 없는 것이다. 예의가 아니다”라고 즉답을 피했다.

    이 대통령은 비준 전에 재협상과 관련한 미국의 동의를 얻는 부분에 대해 “나도 자존심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요구하면 응하게 돼 있는 조항이 있는데 우리가 요구하니 미국에 허락해 달라고 하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그렇게 하면 국회가 말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수석은 이를 두고 협정문에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이 처리된 뒤 90일 이내에 어느 일방이 어떤 사안을 가지고도 재협상을 요구하면 응하게 돼 있는데 굳이 미국의 허락을 받는 식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한-미 FTA 협정문 제22장 ‘제도규정 및 분쟁해결’ 3항에 따르면 ‘이 협정의 개정을 검토하거나 이 협정 상의 약속을 수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또 민주당이 ISD문제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에 대해 “노무현정부 때부터 법률검토를 거쳐 다 통과된 사항이다. 이 문제를 민주당에서 자꾸 문제 삼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ISD 조항을 없애려고 한다면 미국에 요구하기 전에 국내에서부터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국회 온게 야당을 압박하러 오는 것이 아니냐고 하자 “야당 입장을 곤란하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 방법은 나한테 안 맞다. 정직한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고 역설했다.

    또 “비준이 안된 상태에서 보장 받으라고 하면 미국이 요구를 거절하면 그만이지만 협정이 발효되면 협정문 조항에 따라 재협상을 요구하도록 되어 있어 이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선물을 준 것 아니냐. 안 하려고 하면 안될 수밖에 없지만 나를 믿어달라. 나는 선의다. 내가 나라를 망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아울러 “나는 진실되게 하려는 사람이다. 이 방안을 두당의 대표와 원내대표들이 논의 해달라. 내년 발효된 뒤 재협상 하게 되면 실제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다음 정권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겠냐”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나라를 위해서 생각해 달라. 민족과 역사에 어떻게 남을 지 부끄럽지 않도록 해달라”고 거듭 조속한 비준을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한-미 FTA가 비준되면 미국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게 된다. 그러면 일자리가 생기는 거다. 야당이 왜 이런 기회를 어물어물 넘어가려는 지 모르겠다”고 답답해 했다.

    이어 “왜 야당은 미 오바마 대통령만 믿느냐. 한국 대통령을 믿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 수석은 이 대통령의 국회 제안에 대해 “FTA 비준 뒤 90일 이내에 우리가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기존 정부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최 수석은 “그러나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직접 대통령 말씀으로 국회 지도부에 언명한 것에 의미가 있다. (협정문의 재협상에 대해) 이런 내용에 대해 대통령이 하겠다고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여야, 국회 지도부와 구체적인 논의를 하게 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로 1시간 20분간 진지하게 진행됐다”는 것이다.

  • ▲ 15일 오후 국회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박희태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청와대
    ▲ 15일 오후 국회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박희태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청와대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도 이날 이 대통령과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ISD와 관련한 새로운 제안이 있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기자들에게 “대통령이 파격적 발언을 하고 갔다. 빈손인줄 알았는데 파격적이었다. ISD에 대해 파격적인 말을 했다”고 말했다.

    이후 한나라당 김기현 대변인은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이 대통령은 국회가 FTA를 먼저 비준하고 정식으로 (ISD) 재협상을 요구하면, 그 같은 건의에 따라 3개월 내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같은 시각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도 기자간담회를 갖고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이 대변인은 “이 자리에서 손학규 대표는 한-미 FTA 비준안에 속한 ‘ISD 조항’은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손 대표는 “이 대통령의 새 제안이 있었으니 당내 (의원총회를 통해)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16일 의원총회를 열어 이 대통령의 새 제안을 놓고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다만 민주당 측은 ‘한-미 FTA 선(先) 비준’을 당론으로 정한 것은 아니라고 못박았다.

    이 대변인은 “김진표 원내대표가 이 대통령에게 ‘관료들에게 달콤한 얘기를 듣다보니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민주당이 파악한 ISD 조항의 문제점을 이 대통령에게 설명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새롭게 꺼내든 카드를 민주당이 전면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한-미 FTA를 더이상 반대할 명분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어떠한 입장을 취할지 주목된다.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 이후 정치권 내에서는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던 한-미 FTA 비준안 처리 과정이 ‘새 국면’을 맞게 됐다고 호평하고 있다. 

    이날 회동에는 청와대 측에서 임태희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효재 정무수석,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박정하 대변인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는 김기현, 이용섭 대변인이 각각 배석했다.

    한편, 비준안의 핵심 쟁점인 ISD(Investor-State Dispute)는 기업이 상대국의 정책으로 인해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해당 국가를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상사분쟁재판소(ICSID)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