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안원장 향후 행보에 관심 집중朴- 安, 2012년 대권 빅매치 가능성은?
  • 결과적으로 박풍(朴風)보다는 안풍(安風)이 셌다. 지지율 5%에도 미치지 못했던 무소속 박원순 후보였다.

    그가 불과 한달여만에 서울시장이라는 정치 거물로 성장한 것에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13일의 선거운동기간 무려 8일이나 서울을 찾은 박근혜 전 대표가 나경원 후보의 추격전에 힘을 보태자 안 원장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투표 이틀 전 박 당선자를 찾아가 편지 한 장을 건네 판세 굳히기를 하는 노련한 정치인의 모습까지 보여줬다.

    이미 CEO 혹은 교수 안철수에서 정치인 안철수로 변화했다는 평가도 여기서 나온다.

    시간을 거슬러 이번 서울시장 재보선 최대 화두였던 ‘정당 위기론’에 먼저 불을 지핀 것도 안 원장이었다. 안 원장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보도된 이후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안 교수의 지지율은 한 때였지만, 박 전 대표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기성정치에 염증을 느낀 20~30대 젊은층을 주축으로 '안철수 신드롬'은 점점 확산됐고 이 지지세는 단일화를 이룬 박 후보에게 고스란히 흡수됐다. 결국 승리는 그들의 몫이었다.

    호사가들은 벌써 신이 났다. 지루할 정도로 차기 대권 지지율 독주를 달려온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항할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는 평가에 침이 마른다.

  •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0ㆍ26 재보선 투표일인 26일 오전 서울 용산동 한강로주민센터에서 투표를 마친뒤 출근 하고 있다.ⓒ연합뉴스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0ㆍ26 재보선 투표일인 26일 오전 서울 용산동 한강로주민센터에서 투표를 마친뒤 출근 하고 있다.ⓒ연합뉴스

    ◆ 만약 안철수가 서울시장 나왔다면?

    안 원장 덕분에 박원순이 당선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분명 온전히 안 원장에 의해 당선된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박 당선자는 충분히 저력을 보여줬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과의 경선에서 승리한 것은 박 당선자의 힘이었다. 경선 이후 야권과 단일화를 이룬 것도 박 당선자가 이룬 결과였다.

    이후 제 1 야당 손학규 대표를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내세워 자기 편으로 만든 것도 박 당선자의 노련한 정치의 산물이었다.

    이날 방송3사의 출구조사를 보면 박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 중 ‘안철수가 지지해서’라고 답한 사람이 28.6%에 달할 정도로 안 원장의 파괴력을 실감케 했다. 하지만 단순히 원래 박원순을 지지해서라고 대답한 유권자도 71.4%에 달했다.

    여권에서 오히려 노련한 박 당선자보다 안 원장이 나왔다면, 선거는 더 쉬웠을 것이라는 아쉬움에 설득력이 실리는 대목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박 후보가 안 원장의 지지율을 이어 받은 뒤 보여준 방어 능력은 상대편이지만 매우 뛰어났다. 검증 과정을 네거티브 공방으로 몰고 간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만약 안 원장이 후보였다면 선거는 오히려 더 쉬웠을 것”이라고 했다.

    ◆ 안철수, 제3세력 모으는 것이 관건

    이번 선거 승리로 안 원장이 강력한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향후 안 원장에게는 순풍보다는 날카로운 검증의 폭풍이 몰아칠 공산이 크다.

    스스로 정치권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리더십과 도덕성 검증이라는 수술대 위에 올라서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세력 형성이다. 안 원장 혼자서는 차기 대권 주자로 성장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물론 주된 협력 파트너로는 여권보다는 야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당 정치를 무너뜨린 안 원장이 기존의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정치세력과 맞붙게 될 가능성도 있다.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장우영 교수는 "'안철수 열풍'이 이어지려면 일정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중적 인기와 열망이라는 무형재만 있어서는 안 되고 정치권 안팎에서 불고 있는 열풍을 내부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제도적 기반과 토대를 구축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안 원장은 이번 선거 결과를 자신의 행보와 연결지으려는 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안 원장 관계자는 "현재로선 대학원장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정치적 행보에 대해 특별한 말이 없었다"고 전했다.

  • ▲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 등과 함께 묵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 등과 함께 묵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 1년 뒤… 朴 vs 安 매치 이뤄지나?

    분명히 '선거 여왕'이라는 박 전 대표의 신화는 깨졌다. 전국적인 선거 지원 유세를 통해 호남을 제외한 전국 각지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고루 당선시켰지만,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뼈아프다.

    하지만 서울시장 선거는 애초 구도 자체가 어려웠고 선거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논란 등 악재가 불거진 만큼, 박 전 대표에게 모든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패배 위기감이 있던 부산 동구청장과 대구 서구청장, 충북 충주시장, 경남 함양군수 그리고 강원 인제군수 선거에서는 박 전 대표의 지원유세 이후 민심이 바뀌었다. 이 지역에서의 승리는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이 여전함을 보여줬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때문에 박근혜가 안철수에게 졌다는 명제는 섣부르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전히 박 전 대표는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이며 안 원장은 야권 주자들의 진흙탕 싸움에서 살아나와야 한다는 전제가 뒤따른다.

    박근혜는 인물로 싸웠고, 안철수는 이미지로 맞섰다. 안 원장이 대권 도전을 나서기 위해서는 결국 치열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안 원장이 지금의 인기를 그대로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관심이 집중됐던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대망론이 이번 보궐 선거를 치르며 빛이 바랜 것이 좋은 예다.

    문 이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던 동구청장 선거에 전면으로 나섰지만, 결국 한나라당의 벽을 넘지 못했다.

    여기에 이번 선거를 통해 와신상담한 박 전 대표의 도약도 간과할 수 없다. 임상렬 리서치플러스 대표는 "한나라당이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예상했다.

    정치권에서 선거 결과를 놓고 어떤 평가가 나오더라도 박 전 대표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간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재보선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진정성있게 다가선다면 국민이 믿고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지원을 계기로 정치전면에 나선 만큼, 이제는 자연스럽고 꾸준하게 정책 발표 및 국민 소통 행보를 이어가고, 지방 방문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