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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부위의 피부까짐 현상은 기계적 자극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에 있는 출혈은 액흔(졸린 자국)이라고 본다."(이윤성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
"목에 난 상처는 사후에 생기는 시반성 출혈(사후 중력에 의해 시신의 아랫부분으로 혈액이 몰려 혈관이 터지는 현상)로 보인다. 발견될 당시 자세를 봤을 때 이상자세에 의한 질식사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마이클 스벤 폴라넨 캐나다 토론토대 법의학센터장)
만삭의 부인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기소된 백모(31)씨의 재판에서 한국과 캐나다를 대표하는 법의학자들이 백씨 부인의 사인을 놓고 열띤 법정 공방을 벌였다.
21일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한병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백씨의 속행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국내 법의학자들은 부인 박모(29)씨가 목눌림 때문에 질식해 숨졌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반면 캐나다의 폴라넨 박사는 이상자세에 의한 질식사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변호인 측 신청으로 나온 폴라넨 박사는 부검 소견서에 적혀 있지 않은 여러 상처 등으로 미뤄 이상자세에 의한 질식사를 포함한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폴라넨 박사는 "목의 상처는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혈액이 목으로 몰려 생긴 출혈성 시반의 모습이다. 목눌림으로 사망한 시신의 전형적인 특징들이 대부분 나타나지 않는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목 내부에서 발견된 시반성 출혈을 액사의 흔적으로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며 "숨진 채 발견될 당시 박씨의 자세로 볼 때 이상자세에 의한 질식사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내 법의학자들은 "이상자세에 의한 질식사라면 만취나 의식 상실 등 숨을 쉬기 어려운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못하는 선행 요인이 있어야 하는데 박씨는 그렇지 않았다"며 피고인 측 주장을 반박했다.
이윤성 서울대 교수는 박씨가 목눌림에 의해 숨졌다는 견해의 결정적 근거로 목 주변 피부까짐과 출혈을 들었다.
목의 상처가 목눌림 등 외력에 의한 것이 아닌 '시반성 출혈'일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중력이 몰리는 몸의 가장 아랫부분에 생기는 시반의 특성상 목의 상처는 시반성 출혈보다는 액흔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씨의 시신 부검을 집도한 박재홍 국과수 법의관 역시 "목 부위 출혈의 형태와 위치로 미뤄 시반으로 형성된 출혈로 보기 힘들다"며 "국과수에서 목눌림에 의한 질식사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법의관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관심을 불러 모았던 서중석 국과수 법의학부장과 폴라넨 박사의 '맞대결'은 재판이 길어지는 바람에 서 부장이 증인석에 서지 못하면서 무산됐다.
서 부장은 재판이 끝난 뒤 "폴라넨 박사 말대로라면 목과 얼굴 등 곳곳에 난 상처는 어떻게 설명하느냐. 법의학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관전평을 내놨다.
이날 공판에서 피고인 백씨는 법정에서 오고간 말들을 차분히 메모하는가 하면 증인으로 출석한 두 나라 법의학자에게 연달아 질문을 던지면서 의학적 지식을 과시하기도 했다.
다음 공판은 8월11일 오후 2시에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