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갈이 싫어" 대 "솔선수범""여야 30~40% 현역 물갈이 이뤄질 것"
  • 현재 여의도 내 최대 화두는 내년 4월 치러지는 19대 총선이다. 특히 각 당의 간판주자 선정을 놓고 벌이는 공천 경쟁은 무릇 현역 의원이 아니더라도 정치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궁금할 법하다.

    여야는 올해 말이나 돼야 공천 밑그림을 그릴 예정이다. 그러나 이를 기다리는 의원들의 속은 갈수록 바짝 타들어간다. 물밑 신경전 또한 사뭇 예사롭지 않다.

    여의도 내에서는 현역 의원들을 대상으로 대폭 물갈이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최근 민주당 내 중진 의원들의 ‘탈(脫)호남’ 및 수도권 진출 선언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 이러한 기류를 뒷받침한다. ‘물갈이론’이 민주당 내에서 점차 본격화 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여기에 기인한다.

    이와 맞물려 한나라당에도 ‘영남-강남 물갈이론’이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지난 7.4 전당대회에서는 이미 “20~30%의 현역 의원 교체” 발언이 나왔다.

    여기에 민주당의 탈호남-수도권 출마 선언이 한나라당에 적지 않은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 여야 모두 30~40% 물갈이가 이뤄질 것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지난 13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내년 총선에서는 여야 모두 적어도 30~40% 현역 의원 물갈이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고 박사는 특히 호남을 지역구로 둔 민주당 중진 의원들의 수도권 출마 선언에 대해 “결코 쉬운 선거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정성을 인정해 줘도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역구를 뒤로 한 채 사지로 뛰어드는 민주당 의원들을 한명씩 거론했다.

    그는 당선이 보장된 호남 지역구를 버리고 수도권 출마를 공언한 민주당 정세균 전 대표(4선, 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와 김효석의원(3선, 전남 담양·곡성·구례)의 결정을 높이 샀다. 전북에서 기반을 갖고 있지만 한나라당의 텃밭인 경남에서 출마하겠다고 나선 장영달(4선) 전 의원의 의지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적지나 다름없는 대구와 부산에서 출사표를 던지겠다는 김부겸 의원(경기 군포)과 김영춘 전 의원(서울에서 재선)이 굉장히 어려운 선거구를 택했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도 비슷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대변인 역할을 도맡아오던 이정현 의원은 사실상 불가능한 지역이라고 간주된 광주 서구을에 도전하겠다고 나섰다.

    그런가하면 지난번 6.2 지방선거 당시 광주시장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신 정용화 위원장은 광주 서구 갑에서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고 박사는 여야를 떠나 이들이 사지에서 출사표를 던지는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했다. 바로 후배 인재 양성과 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노력이다.

  • ▲ 좌측부터 한나라당 김형오 이윤성 의원, 박희태 국회의장, 이상득 의원 ⓒ연합뉴스
    ▲ 좌측부터 한나라당 김형오 이윤성 의원, 박희태 국회의장, 이상득 의원 ⓒ연합뉴스

    ■ 與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는 올드보이가 ‘있다, 없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에선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는 듯한 움직임도 보인다. 바로 '올드 보이'들의 잇따른 출마 선언이다.

    전례로 볼 때 ‘물갈이’의 1차 타깃으로 전-현직 국회의장들이 거론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들 '올드 보이'들이 서둘러 방어막을 치고 나섰다는 분석이다.

    출마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내 지역구는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 것은 분명하다.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63·부산 영도) 의원은 지난 7일 부산시의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역에 큰 프로젝트가 많아서 연륜이 어린 분이 하기에는 쉽지 않다”며 출마 의사를 밝혔다.

    그는 “국회의장까지 했는데 또 나오느냐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정치적 욕심 때문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국회의장을 지내면 안 나오는 추세지만 선진국에서는 당연히 나온다”고 주장했다.

    전 국회부의장을 지낸 이윤성(67·인천 남동갑) 의원은 최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물갈이, 세대교체론이 정치를 후퇴시키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초선이 할 일이 있고 중진이 할 일이 있다. 나는 (중진으로서) 19대 총선에 출마할 것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박희태(73·경남 양산) 국회의장은 아직 출마 여부를 확정짓진 않았지만, 지난달 11일 지역구 사무실을 확장 이전했다.

    박 의장은 지난달 취임 1주년을 기념해 부산-울산-경남지역 언론과의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사무실 이전과 총선 출마 연계성에 대해 “연말까지 생각해 보겠는데 다른 일이 없으면 출마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추진해온 한국전지연구원, 아시아디자인연구소 등 지역 현안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이상득 의원(포항남·울릉)도 지난 13일 출마를 시사했다.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열린 한나라당 경북지역 의원 오찬모임이었다. 자신을 "10년이 지나도 깨끗한 차"에 비유했다.

    이는 일부 수도권 소장파 의원들이 쏟아내는 ‘중진 물갈이론’에 맞서 나이와 선수가 문제가 아니라며 내년 총선 출마의지를 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 수도권에 나오든가, 자신 없으면 나오지 말든가

    한나라당 소속 전-현직 국회의장을 비롯해 영남권 중진 의원 19명이 내년 공천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과 관련, 당내에선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8대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 선언을 했던 김용갑 상임고문은 “존재감이 없는 중진 의원들은 스스로 용퇴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회 고위직을 지냈거나 또는 대통령의 친인척 같은 이런 분들은 스스로 후배들에게 길을 터줘야 되지 않느냐”고 했다.

    내년 정권 재창출을 위해 당 중진 의원들부터 솔선수범해야 되지 않느냐는 고언이다.

    현직 의원들의 불만도 상당한 수준이다.

    한 수도권 소장파 의원은 “중진들이 텃밭에 앉아서 쉽게 먹으려 하면 안 된다. 수도권에 나오든가 자신 없으면 불출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의원은 “영남에서 불출마나 수도권 출마선언이 나오지 않으면 총선 승리는 어렵다”고 했다. 이미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원희룡 최고위원도 “도미노 불출마 선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흐름에 따라 결국 한나라당 중진 의원들이 잇따라 ‘탈영남-불출마’ 선언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과거처럼 특정인이 주도하는 인위적 물갈이는 힘들겠지만 총선 승리를 위해 자발적 불출마나 열세지역 출마가 잇따를 수 있다”고 밝혔다.

    내년 4월 총선 결과는 12월 대선 승패로 이어진다. 그러니 친박계가 소장파 못지않게 공천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양상이다. ‘물갈이론’이 큰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는 해석도 이래서 분분하다.

    ■ 이정현 좀 본받아라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이 광주 서구을에 도전하겠다고 밝히자 지도부는 기다렸다는 듯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나섰다.

    김정권 신임 사무총장은 15일 “이정현 의원과 같은 사람이 5~6명만 있어도 총선, 대선도 이길 것”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과반수 의석 확보에 빨간불이 들어온 마당에 의원들이 솔선수범해 취약지에 도전할 것을 독려한 발언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의 키워드는 개혁과 변화가 될 전망이다. 누가 더 참신한 인재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한나라당이 정권을 재창출할지, 민주당이 정권을 탈환할지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의 활발한 움직임과는 달리 정작 물갈이가 절실한 한나라당은 변화가 없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한나라당은 영남에 기반을 둔 3선 이상 국회의원이 수두룩한데도 젊은 피 수혈을 위해 자신의 지역구를 내놓겠다는 의원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자세로는 내년 총선과 대선의 고지를 절대 넘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최근 당내에선 일부 중진들이 어차피 물갈이에 밀릴 것이라는 판단 하에 불출마를 선언해야 할지 다른 지역구를 알아봐야 할지 눈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권자들을 움직이기 위해선 변화의 물꼬를 틀 계기가 필요하다. 그 변화를 중진의원들이 선두에서 이끌면 안되는 것인가.

    무게감에 걸맞은 중진의원들의 과감한 용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당내의 속 깊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