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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걱정하면 ‘反복지’?
'복지’라는 말만 나오면 왜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이느냐“ ”보수도 비정규직 문제 등, 진보쪽 요구를 수용해서 보수민주주의의 지평을 확대해야 하지 않느냐?“고 힐난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보수가 걱정하는 것은 좌파 복지처방의 비합리성이지, 복지의 중요성 자체가 아니다. 좌파 포퓰리즘, 한나라 포퓰리즘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발언과 글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복지를 그렇게 무대뽀(좌파적 방식)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약자를 돕자는 것 자체를 아예 외면하자”는 게 아니라는 걸 금방 간파할 수 있다. 보수면 다 외제차 폭주족(暴走族) 편인가?
보수가 걱정하는 것은 좌파적 무대뽀 복지의 재원을 도대체 어떻게 마련하느냐, 부자 털어서 재원 마련하자는 방식이 과연 지속가능한가, 매사 세금으로 하자는 게 과연 온당한가, 그런 식으로 했다가 후대(後代)에 빚만 잔득 안겨 주는 것 아니냐, 그런 일률적 ‘무상(無償) 시리즈’는 ‘부자를 위한 복지’도 되지 않겠느냐, 곳간 털어먹는 방식 했다간 아르헨티나 꼴 나는 것 아니냐...하는 등등이다.
이런 걱정들은 보수 진보의 문제 이전에, 복지의 방법론 문제다. 그 이면에는 물론 철학의 문제도 가로놓여 있지만, 보수 쪽의 그런 ‘살림 걱정’은 진보라 할지라도 외면할 필요가 없는 보편적인 관심사항이라야 하지 않을까?
“보수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말도, 그 자체는 가위 교과서급(級)이다. 그러나 정작 교과서적 기준에서 막무가내로 일탈하고 있는 장본은 진보를 자임하는 쪽 일각에 칩거한 독단파의 편협성이다. “천안함은 북한 소행이다” “3대 세습은 나쁘다”고 말하면 남 주나? 진보를 자처하는 쪽 일부인지 전부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편협한 지평을 가지고서는 시대를 담아낼 수 없다. 보수 쪽 말도 경청해서 진보의 지평을 넓혀야 할 일이다.
마가레트 대처는 영국에 병(病)을 줬나, 그걸 치유했나? 철밥통 '진보' 귀족노조는 진보인가 부르주아인가? 그리고 진보는 아르헨티나-그리스로 갈까봐 걱정 안 해도 되나?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