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從北)척결 자유통일, 부패척결 일류(一流)국가
  • 종북(從北)척결 자유통일, 부패척결 일류(一流)국가 
      6.15 반역선언을 폐기하여 종북쓰레기를 청소하고, 저축은행 수사로 부패구조의 심장부를 도려내자
    趙甲濟    
       
      아시아에서 공산주의가 퍼진 가장 큰 이유는 공산당은 깨끗하다는 환상이었다. 아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청렴함을 상징한 인물이 중국의 모택통(毛澤東)과 월남의 호지명(胡志明)이었다. 반면 장개석(蔣介石) 군대는 부패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광요(李光耀)가 싱가포르를 청렴한 나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가장 큰 이유도 여기서 나왔다.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부패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싱가포르의 중국계 젊은이들이 蔣介石(장개석) 정부의 부패에 분노하고 毛澤東(모택동) 군대의 청렴함에 끌려 친(親)공산주의로 넘어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

    1959년에 이광요 일파가 싱가포르 시의회에 진출했을 때 그들은 반(反)부패의 상징으로 하얀 셔츠를 입었다. 공산당 세력은 이광요의 영국 유학 경험, 골프를 치고 부르주아 생활을 하는 것을 비판했으나 그를 부패로 공격할 순 없었다.
     
      싱가포르엔 영국 식민지 행정기구에서 만든 부패조사국(Corrupt Practices Investigation Bureau: CPIB)이 있었다. 이광요는 이 기구에 反부패 척결의 전권(全權)을 맡겼다. 부패혐의자 및 그 가족의 은행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부패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의 범위를 넓혔다. 1960년에 법원은 자신의 월급에 비해서 지나친 호화생활을 하는 것 자체를 부패의 증거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광요는 자신의 친구나 장관들에 대한 수사를 막기는커녕 장려했다.
     
      1986년에 국가개발장관 테칭완이 수뢰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테칭완은 무고하다면서 이광요 수상을 독대하고 싶어했다. 이광요는 수사가 끝날 때까지는 만나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그 며칠 후 테 장관은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유서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명예를 존중하는 동양의 신사로서 나는 나의 잘못에 대하여 가장 비싼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족들은 문상온 이(李) 수상에게 고인(故人)의 명예를 위해서 부검만은 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李 수상은 부검(剖劍)을 하지 않으려면 자연사를 했다는 의사의 사망진단서가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테 장관이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는 소견서를 냈다. 이것이 의회에서 문제가 되어 유족들은 더 곤경에 처했고 결국 싱가포르를 떠나야 했다.
     
      이광요 수상은 고위 공직자들이 기업체 임원들보다도 월급을 적게 받으면 뇌물의 유혹에 노출된다고 판단했다. 그는 공무원들의 월급을 민간 수준까지 올리는 데 힘썼다. 그는 고위공직자들이 명예와 사명감에만 의존한 채 쪼달리는 월급장이 생활을 견디게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인재(人材)가 공무원 사회로 들어오지 않는다.
     
      1995년에 이광요 전 수상의 부인과 아들이 부동산을 5~6% 할인받고 산 것이 문제가 되었다. 부동산 개발업자가 판촉용으로 다른 지인(知人)들에게도 그런 할인율을 적용했음이 정부 조사로 밝혀졌다. 이 개발회사엔 이광요의 동생이 비상임 이사로 등재되어 있어 소문이 나쁘게 돌았다. 이광요 부인은 결백이 증명된 뒤 할인받은 100만 싱가포르 달러를 정부에 기증했다. 정부는 이런 돈을 받을 법적 근거가 없다고 돌려주었다. 부인은 이 돈을 자선단체에 기증했다.
     
      지도자의 결심, 엄벌주의, 공무원 대우 개선, 수사기관의 독립성, 깨끗한 선거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 싱가포르로 하여금 아시아의 부패고리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한편 중국 및 월남 공산주의자들은 결국 부패의 늪에 빠졌다. 중국에선 문화대혁명 때 부패가 악화되었고 월남에선 개방시절부터 공직자들이 썩기 시작했다. 절대권력과 가난은 부패의 온상이다. 淸貧(청빈)은 거짓이고 위선이다.
     
      이광요는 1997년 동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 때 싱가포르가 건재했던 이유를 부패 청산에 돌렸다. 한국, 인도네시아 등 부패한 나라는 위기 대처 능력을 상실했지만 싱가포르는 공직자들이 사심(私心) 없는 객관적 입장에서 정책을 펴오면서 위기를 예견했고, 위기의 소지를 남겨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저축은행 부정 사건은 민주투사들이 정권을 잡으면 더 부패한다는 교훈을 확인시켰다. 이 사건의 핵심인물은 광주지역에서 민주투사로 유명했던 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세력이 전두환, 노태우 세력보다 깨끗하였다는 증거가 없다.
     
      김일성이 호지명(胡志明)처럼 청빈하였더라면 한국은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이승만이 호지명처럼 깨끗하였으므로 체제를 지켰다. 박정희가 김정일처럼 부패하였더라면 한국은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한국의 당면과제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從北(종북)척결 자유통일, 부패척결 一流(일류)국가"
     
      6.15 선언을 반역면허증으로 삼은 종북쓰레기들을 청소해야 자유통일을 하여 북한동포 2300만 명을 구출할 수 있다. 부산저축은행 등 저축은행 사건을 성역(聖域) 없이 수사하여 한국 부패구조의 심장부를 도려내야 일류국가로 갈 수 있다. 6.15 선언 폐기, 저축은행 수사는 자유진영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