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상 숭배’ 논란

      한기총의 길자연 목사가, 이명박 대통령이 무릎 꿇고 통성기도를 했던 조찬 기도회에서 “반만 년 역사는 우상숭배의 죄 속에 있었다”고 해서 중앙일보의 김진 논설위원이 비판적인 칼럼을 썼다(3/14일자 중앙일보). 비판의 핵심은, 다른 종교들을 모두 ‘우상숭배의 죄’라고 친 것은 문제 있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때의 바티칸 공의회(公議會) 이후에 나온 가톨릭 교회의 지침이 연상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중세기 때 수많은 무고한 부녀자들을 ‘마녀(魔女)’로 규정해 화형(火刑)에 처한 역사를 가진 종교다. 악마(우상)를 숭배했다 해서 성직자라는 사람들이 혹독한 고문(拷問)에 의해 “나는 악마 루시퍼를 만나 계약을 맺었다”는 자백을 받아낸 것이다. 아무 증거도 없이-.

      그렇던 가톨릭 교회가 공의회 이후 “교회 밖에서도(다른 종교에서도) 구원(救援)이 역사(役事)하고 있다”는 식으로 선언한 것이다(정확한 문구는 아님). 이건 엄청난 사건이다. 다른 종교를 우상숭배, 이단(異端)으로 죄악시하던 종교독재, 종교 전체주의, 독점적 진리 해석권에서, 종교 다원주의로 전환했다는 것은 실로 코페루니쿠스적인 혁명 그 자체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法貞) 큰스님이 만나 우호적이고, 서로 존경하는 대화를 나눈 일화를 우리는 기억한다. 그렇다면 김 추기경과 법정 스님은 ‘우상 숭배’의 수괴(首魁)를 만나 서로 ‘악마와의 계약’을 맺은 것인가?

      법정 스님은 “진리의 산꼭대기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이걸 인정하지 못 하고 안 하겠다면 최악의 경우는 레바논이다. 그리고 레바논의 종교 전쟁은 진리일 수가 없다. 신(神)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 어떻게 진리 근처엔들 갈 수 있는가?

      인류 문화재인 아프간니스탄의 바미욘 불상을 대포로 쏘아 부순 탈레반 근본주의자들을 연상하면서 우리 종교계가 성숙한 신앙의 자세를 제시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