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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자유민주 국제연대를
이상(理想)은 언제나 우리를 격동시킨다. 이상은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야말로 우리 인간을 승화 시키고 살맛나게 해주는 그 무엇이다. 우리는 그 동안 그걸 잃어버린 채 살아 온 것은 아니었을지? 돈 열심히 벌어서 휴가 한 철 신나게 보내는 것 이상의 이상(?)이 요즘 사람들에게 있을까? 이상이 무엇 말라 죽은 것이냐는 소리나 들리지 않으면 다행일지 모른다.
보다 아름다운 세계를 추구하는 것을 이상이라 할 때, 그런 이상은 이제 옛 이야기일 뿐일까? 프랑스 혁명, 아메리카 독립 당시의 선진적 인간 예지(叡智)가 추구했던 자유 평등 박애의 꿈을 끝으로 ‘이상의 시대’는 종막을 고한 것일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중동의 자유 민주 혁명을 바라보면서 인류는 21세기에 또 한 번 그런 꿈을 연장 시킬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중세기와 절대왕정을 넘어 이성(理性)이 지배하는 자유 민주 평등 법치 인권 복지의 세상을 이룩하려는 양심적 인류의 투쟁은 한 동안 온갖 종류의 독재, 전체주의, 신판(新版) 신정정치(神政政治), 폐쇄주의, 몽매주의(蒙昧主義)에 의해 ‘서구 제국주의의 퇴폐적인 제도’ 따라서 제3 세계와는 대척점(對蹠点)에 있는 것인 양 낙인(烙印)받았었다. 그러나 그건 엄청난 음모요 미신(迷信)이었다.
대한민국은 헌법제정 당시에 이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포해 불과 반(半) 세기만에 결실을 보았다. 20세기 말에 와서는 소련 동구권의 극좌 독재와 극좌 전체주의 하에서도 “우리 역시 자유와 민주를 원하는 인류 보편의 속성에서 예외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그 미신을 깨뜨렸다. 오늘 이 시점에서는 중동에서도 자유와 민주와 인권이 서구만의 전유물(專有物)이 아니라는 절규가 21세기 최초의 시민혁명으로 번지고 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중국과 미얀마와 북한은 예외인가?
예외라고 막무가내로 우기면서 무바라크처럼, 카다피처럼 뻗댈 것이다. 그러나 문명사의 물결은 예외를 두지 않는다. 천하대세(天下大勢)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게 없었다면 18세기 서유럽의 자유민주 혁명과 미국의 독립, 19세기 중남미의 독립, 20 중엽의 아시아 아프리카 식민지 독립, 20세기 말의 소련권 붕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세는 인간의 의지적인 노력이 함께 동참해야 촉진될 수 있다. 그렇다면 18세기 유럽에서 시작해 21세기 중동에서 되살아난 자유 민주 혁명의 이상을 동아시아 ‘독재 벨트’에 의지적으로 전파시킬 수는 없을까? 그것을 21세기 동아시아인(人)들의 보편적인 이상으로 떠올릴 수는 없을까?
보편적인 이상은 국제주의적 연대를 통해서 전파된다. 그것이 근대사와 근대사상사(思想史)의 경험법칙이자 교훈이었다. 이 점에서 중국의 민주화, 북한의 변혁, 미얀마의 민주화...는 따로 따로 고립적으로 추구할 것이 아니다. 서구 자유민주 혁명도 전체 유럽이 국경을 초월해 계몽사상으로 합류했기에 큰 해일(海溢)로 증폭될 수 있었다.
이런 요청에서 제언(提言)하고 싶다. 북한 민주화 운동을 보다 광역(廣域)적이고 글로벌한 차원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우리를 포함하는 동아시아인들도 자유민주 국제주의 연대를 이룩하면 어떨까? 예컨대 한국의 북한인권 운동, 탈북동포 운동, 중국 민주화 운동, 납북 일본인 구출 활동을 포함하는 일본의 인권운동, 미얀마의 아웅산 수키를 지지하는 민주화 운동, 실종자 구출활동을 포함하는 필리핀 인권운동, 동티모르 인권운동, 신앙 박해에 항의하는 기독교 인권운동, 아시아 지역 여성운동...등을 네트워킹 할 수는 없을까? 좌파에 의해 하이재크 되지 않은 순수한 인권 운동을 골라서.
자유와 민주와 인권과 시장주의는 방어적 수세적 ‘보수’에서 벗어나 공세적, 현상타파적, 도전적, 선제적 변혁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동아시아 주요 독재 권력들을 공동의 타깃으로 삼는 ‘동아시아 자유민주 행동’이라는 국제주의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동아시아 자유 민주 행동’-이것을 오늘의 젊은이들이, 일찍이 헤밍웨이를 격동시켰던 열정 같은 것으로 뜨겁게 껴안을 수는 없을까? 권력 주류에 맞선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대부분은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그것은 용감한 낭만적 이상주의자들만이 감행할 수 있는 ‘인디아나 존스’의 어드벤처다.
‘동아시아 자유 민주 행동’은 중국, 김정일, 미얀마를 향해 인간 기본권 보장, 특권층 부정부패 척결, 족벌주의 척결, 평양 로얄 패밀리 세습왕정 규탄, 요덕수용소 해체, 고문(拷問)과 공개처형 철폐, 탈북자 강제이송 중단, 두만강을 넘나드는 성노예(性奴隸) 구출, 공포-테러-폭력으로부터의 해방, 소수민족 박해 중단, 농민공(農民工) 문제, 가족에 의해 살해당하는 아시아 여성의 인권, 그리고 일부 지역의 어린이 노예노동 철폐를 선포해야 한다.
이상은 항상 있다. 사람들의 나태(懶怠)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동아시아 자유민주 행동’이 그 이상의 뜨거운 열기(熱氣)를 숙성시킬 수 없을까? 자유 민주 인권은 ‘보수’가 아니라 변혁이다. 요덕을 비롯한 동아시아 수용소 군도(群島)를 변혁의 물결로 포위하자.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