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일본 그리고 세력균형 

     일본 경제가 중국 경제에 뒤처졌다고 한다. 일본이 왜 이렇게 됐을까? 오늘 한 언론인, 한 교수 등 두 인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판에 박힌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일본 사람들은 그 틀에 조금만 돌발변수가 발생해도 혼란에 빠지곤 한다” “세미나를 해보면 일본 측은 예정된 발언자가 돌연 결석을 하면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한국 측은 즉석에서 대타(代打)를 내세워 임기응변(臨機應變) 하지만”

      한 마디로 일본은 근대화 시대의 집합적 합리성에서는 이웃 나라들을 앞질렀지만 포스트 모던(post modern) 시대의 유목민적 즉흥성, 기동성, 상상력, 개별성에서는 뒤졌다는 이야기였다. 이 점에서는 한국인들의 역동성이 돋보인다. 중국인들의 ‘엉뚱한(?)’ 상상력도 일본 사람들이 따라가기 어렵다.

      영화를 보아도, 일본 영화는 심심하고 마치 정물화(靜物畵)를 보는 것 같다. 싱겁고, 간(肝)에 기별이 오질 않는다. 중국 영화는 화면의 영상이 화려하고 현란하다. 과장이 있고 뻥도 있지만 상상력이 풍성하다. ‘황후화(皇后花)’ 같은 것을 보면 스토리는 ‘별것’도 아닌데 주윤발과 공리가 보여주는 영상적 긴장과 아름다움이 ‘별것’처럼 다가온다. 일본 영화는 내용은 꽉 찼어도 감동성이 약하다. 너무 ‘이론적(?)’ ‘문학적’이라는 느낌도 준다. 감동은 이론에 있지 않은데.

      한국 중국은 빠른 발전에도 불구하고 내용 구석구석에 취약점이 허다하다. 일본은 최근의 슬럼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200년래의 근대화 인프라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탄탄한 것이 오늘에 와선 오히려 과감한 자기변신을 제약하는 역기능을 드러내고 있는 모양이다. 정치 리더십 퇴화, 행정 효율성 경직(硬直), 그리고 이런 취약점을 잘 알면서도 그것을 우지끈 뚝딱 개혁해 내지 못하는 일본의 권태기.

      우리가 일본을 걱정할 처지는 아닐지 모른다. 우리 코가 석 자이니. 다만 우려하는 것은 중국의 발 빠른 팽창과 일본의 상대적 침체가 불러 올 수 있는 한반도 주변 동아시아 세력균형의 불안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의 패권 추구도 경계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난폭한 중화 패권주의도 경계해야 할 판이다. 이런 필요에서 일본이 지난 세기 식(式) 침략적 리더십과는 다르면서 21세기 탈근대(脫近代)를 담아내는 새로운 리더십과 에토스로 리모델링 될 수 있길 바란다. 동아시아가 어느 한 압도적인 슈퍼 파워의 깔때기 속으로 빨려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